이창용 “인플레 이후 저성장 배제 못해...확장적 통화정책 의문”
입력 2022.06.02 09:04
수정 2022.06.02 10:58
2일 BOK 국제컨퍼런스 개회사
“중앙은행 디지털・기후변화 대응 불가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높은 물가 상승 이후 한국을 포함한 일부 신흥국에서의 저물가・저성장 도래 가능성을 우려했다. 구조적 저성장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또 다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팬데믹 때와는 달리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일 'BOK국제컨퍼런스‘ 개회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2005년부터 개최된 BOK국제컨퍼런스는 국내외 학계와 정책 부문 저명인사들이 모여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올해는 비대면으로 이날부터 오는 3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이창용 총재는 컨퍼런스 주제인 ‘변화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최근 높은 물가위기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중앙은행이 단순히 물가 안정이라는 기본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제언이다. 특히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진정됐을 때 코로나 위기 이전과 같은 저성장 및 저물가 기조가 다시 올 것인지, 온다면 지금의 10여년간 사용한 통화정책을 사용하면 되는지 아니면 이를 보완하거나 새로 개발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전에 활용했던 정책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면서도 “선진국을 위시해 한국, 태국, 그리고 어쩌면 중국 등 인구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부 신흥국에게 있어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폴 크루그먼 교수가 선진국 중앙은행에게 조언한 것처럼, 한국이나 여타 신흥국들도 “무책임할 정도로 확실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약속(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G7 국가의 중앙은행 자산 규모는 2007년~2020년 중 GDP 대비 3.8%에서 3.10%로 크게 늘어난 반면, 신흥국은 4.0%에서 6.2%로 제한적으로 증가했다. 선진국과의 자산 차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경기부진 등으로 신흥국은 통화정책에 있어서 선진국보다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해야만 했다는 분석이다.
신흥국 역시 인플레이션에 직면하자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시행했는데,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선진국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자산매입에 나서면서 환율절하나 자본 유출 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총재는 “대규모의 글로벌 유동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 과정에서 비슷한 수준의 확장적 정책이 다시 이뤄진다면, 환율과 자본 흐름 및 인플레 기대에 미치는 함의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저물가·저성장 국면에 대비한 신흥국만의 효과적인 비전통적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답을 찾기 쉽지 않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며 “오늘 이 자리가 양적완화가 기간프리미엄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신흥국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외환시장 개입이나 자본통제 등의 다른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 활용이 가능할지 논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그는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도 “디지털 혁신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사회적 책임 또한 그 요구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