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검찰 수뇌부, "검수완박" 한 목소리…법조계 "사전 입법영향평가 필요"
입력 2022.05.26 05:23
수정 2022.05.26 20:52
김후곤 "문제 있는 급박한 법률 개정"…송경호 "국민 눈물 닦아줄 기회마저 사라질 상황"
법조계 "입법 권한 남용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 필요…입법 전에 평가 미리 받아보는 게 바람직"
"국회 모든 법안 대상으로 사전 입법영향평가?…행정력 낭비 및 막대한 비용 소모, 신중해야"
"검수완박 등 첨예한 쟁점 법안 한해 사전평가 필요…입법자 예상 못한 부작용 사전에 수정돼야"
윤석열 정부의 검찰 수뇌부가 취임하면서 일성으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법안은 내용은 물론이고 입법이 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인데,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수완박 입법을 계기로 국회의원들의 졸속 입법을 막기 위해 '사전 입법 영향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후곤 신임 서울고검장을 비롯한 윤 정부의 검찰 수뇌부들은 지난 23일 정식 취임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취임사에서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김 고검장은 "지난해 있었던 형사사법 체계 변화에 국민들께서 적응하시기도 전에, 최근 한 달 사이 입법 절차나 내용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평가되는 급박한 법률 개정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취임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도 검수완박에 대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은 박탈되고, 송치 사건 보완수사 범위도 축소돼 억울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질 상황에 처해 있다”고 비난했다.
검수완박 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 또는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인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뜻한다. 지난달 15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 172명의 이름으로 발의 됐고, 지난 9일 정식 공포돼 4개월 간의 유예 기간을 거친 뒤 오는 9월 1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날부터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가 6대 중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2대 중대범죄(부패·경제)로 축소된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국회의원들의 '입법 폭주'에 제동을 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것이 '사전 입법영향평가' 제도다. 법안이 통과되면 어떤 영향이 생길지 사전에 평가해보는 제도인데, 우리나라는 정부 입법안에 대해서만 이를 채택하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상 현재 입법부(국회)의 권한이 너무 크기 때문에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사전 입법영향평가 등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도 적절해 보인다"며 "검수완박 법안처럼 다수당이 폭주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런 걸 방지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입법 전에 평가를 미리 받아보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다만, 평가하는 법안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국회에서 나오는 모든 법안을 대상으로 사전 입법영향평가를 한다면 행정력 낭비가 될 수 있고 막대한 비용도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사전 입법영향평가를 시행 중인 미국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여러 가지 기준을 세워 평가할 법안을 나누고 있는데, 그 기준 중 하나가 '새로운 법적 또는 정치적 이슈가 제기되는 법안'이다. 검수완박처럼 정치적 이슈가 되거나 법리적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큰 법안을 위주로 입법 영향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장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이번 검수완박 법안이나 임대차 3법 같은 쟁점이 첨예한 법안들에 대해서는 사전 평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과거에도 법안 통과된 뒤에 문제가 되는 일이 많았는데, 그 전에 전문가들이 사전 입법영향평가를 해보고 입법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오면 법률을 수정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회 입법 건수와 정부의 입법 건수에 막대한 차이가 나는 부분도 사전 입법영향평가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2016년 6월~2020년 5월)에서 의원발의 법안 수는 2만3047건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정부 입법안은 1094건에 그쳤다.
가결률에도 차이가 크다. 20대 국회 의원입법안은 2만3047건의 12.5%인 2890건이 가결되는 데 그쳤다. 정부 입법안은 1094건 중 27.9%인 305건이 가결됐다. 가결률도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