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 '양아들'…팬덤정치가 우려되는 이유 [정계성의 여정]
입력 2022.05.16 07:00
수정 2022.05.16 05:5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이른바 '개딸·양아들' 현상에 대해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형태"라고 규정했다. 촛불혁명이 결정적 시기 단기적으로 나타난 집단적 행동이었다면, '개딸' 현상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대중의 집단적 행동이라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개딸 현상은 지난 3월 10일 이 위원장의 대선 패배 후 시작됐다.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의 일부 2030 여성 지지자들이 "아빠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이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일종의 밈(meme)이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양아들 등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팬덤을 늘려나갔다. 개딸은 '개혁의 딸', 양아들은 '양심의 아들'이라고 한다.
대선 막판 친여성 행보가 현상의 원동력이 됐다. "박지현을 영입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변화 가능성을 봤다"는 한 후배 기자의 말로 이유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여성 문제에 고민하고 성의를 보였다는 의미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SNS를 살피며 끊임없이 소통하는 이 위원장 특유의 '팬 관리'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인지도와 지지율이 깡패인 정치판에서 '팬덤'의 등장은 축복과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에는 정치인 팬덤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노사모'가 있었고,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팬덤의 힘으로 수많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했다. 노 전 대통령에서 이어지는 정통성과 팬덤을 상속하지 못한 이 위원장 입장에서 개딸 현상은 무엇보다 각별할 수밖에 없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호불호는 당연하고, 지지자들 스스로 개딸을 자처하며 '덕질'로 팬심을 표현하는 것을 비판할 이유도 없다. 남녀를 불문하고 2030 청년들이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촛불혁명 이상의 세계사적 의미"라는 이 위원장의 평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팬덤 현상과 별개로 '팬덤정치'의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년 문재인 정권 동안 무수히 많은 폐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비판적 제식구 감싸기와 이로 인한 진영 대립 강화는 정치퇴행을 불러왔고, 온라인 좌표 찍기, 문자 폭탄 등 적극성이 폭력성으로 변질된 사례도 적지 않다. 사상 최초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구나 팬을 넘어 이제는 '가족'을 자처하고 있으니,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걱정을 그저 기우라고 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꼽았다.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에 대해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진영 논리에 근거한 확증편향 또는 팬덤 정치라고도 규정할 수 있다. '누가 더 반지성주의냐'는 물음에는 논란이 있겠지만, '반지성주의가 문제'라는 전제에는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