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청문회, ‘함량 미달’ 국회의원 개그 콘서트
입력 2022.05.10 02:02
수정 2022.05.23 08:44
외국 대학 진학 목표 국제학교 교육을 한국 잣대로 재단
‘논문’은 석사, 박사들만 쓴다고 생각하는 게 코미디
언론도 ‘기레기’ 말 듣지 않으려면 우물 안에서 나와야
한동훈 딸 의혹 기사는 야비하고 무지한 우리 사회 모습
‘이거슨 무식한거야. 에세이 제출할 때는 첨삭 지도 받는 게 필수다. 영문과 교수조차도 예외는 아니야. 그리고 공짜 좋아하는 너희들은 무형의 지적 능력 우습게 알아서 첨삭은 공짜로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니? 유료가 지극히 정상인거야.’
서울의 어느 대학 여교수가 법무부장관 후보 한동훈 자녀 의혹 관련 기사에 대해 무식하다고 일갈한 페이스북 글이다.
한동훈 딸은 외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국제학교 2학년이다. 아직 입시를 치르기 전이니 의혹 도마 위에 오른 글 ‘스펙’들이 사용되지도 않은 건 물론이다.
게다가 미국 일류대를 지망할 예정인 경우 표절(剽竊)이나 대필(代筆)은 이 대학들 입학 사정 당국에 의해 금방 들통 나 불합격되므로 아예 생각조차 않는 게 상식이다. 다만, 전문가로부터 첨삭(添削) 지도 받는 건 필수이며 유료 또한 상식이다.
저 기사를 쓴 기자야 사실상 잘못이 없다. 왜? 기자들뿐 아니고 한국 사회 거의 모든 일반인들은 물론 조국, 진중권 같은 대다수 지식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고 한국의 수준이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단독] “입시컨설팅 안 받았다”는 한동훈 장녀…미국 대입 전문 컨설턴트로부터 유료로 영문 소논문 첨삭 지도받아
그 교수가 지적한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서구 사회에서 에세이(심지어 이력서도 마찬가지다) 등 글로 쓴 문장은 직업인의 코치를 받는 게 당연하고 그 대가는 반드시 돈으로 지불한다는 것이다. 수업료와 똑같다.
한국 사람들은 무료는 아름답고 유료는 불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농공상 의식 수준의 대단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대충 밥 한 끼나 하찮은 선물로 그 ‘지적 능력’에 대한 값을 치르곤 한다.
수년 동안 학교와 직업 환경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어디 식사 대접으로 때울 수 있는 것인가? 지적인 신세 말고 육체적, 기술적인 도움을 받았을 때도 반드시 현금으로 그 수고료를 지불하는 의식과 문화 정착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는 벌어져야만 한다.
대입 전문 컨설턴트로부터 지도 받는 건 ‘커닝’이나 마찬가지고, 더구나 유료로 받았으니 부정행위라는 시각은 한국식 잣대에 의한 재단(裁斷)이다. 공짜가 선이고 돈 주고 사면 악이라는 후진적 고정관념이다.
[단독] 한동훈 딸, 고1때 두 달간 논문 5개, 전자책 4개 썼다
또 하나의 ‘단독 오보’ 기사 제목이다. 이걸 보고 혀를 차지 않은 독자가 있을까? 고1, 두 달, 논문, 전자책……. 이런 용어와 수사(數詞)로 전혀 불가능한 일이 거짓으로 일어난 일인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윤석열 정부 법무부장관 후보 한동훈 측은 제목이 풍기는 것과 같이, 어린 학생이 논문과 전자책 다수를 단기간에 ‘집필’한 게 아니고 그동안 연습 작성한 에세이 수준의 글들을 한꺼번에 업로드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해당 기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서구에서 논문이라고 우리말로 번역되는 글은 석사나 박사들만 쓰는 걸 이르지 않는다. 중고등학생이 쓰는 작문(에세이)이나 학교 숙제(보고서)도 아티클(Article, 신문 잡지 출판물 속 한 편의 글) 또는 페이퍼(Paper, 특정 주제에 관한 전문가의 글이나 학생들의 소분량 글)라 한다.
양은 몇 페이지에 불과하다. 이걸 ‘논문’(論文)이라고 하면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이 쓰는 작은 책 한 권 분량의 글이라는 이미지가 전달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저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아티클의 단어 뜻들 가운데 기사 작성 의도에 맞는 가장 큰 개념, 즉 논문을 골랐을 것이다. 이 기자는 이런 글들을 게재한다는 뜻의 퍼블리시(Publish)도 ‘출판’이라고 번역할지 모른다. 한국 기자들은 구글(Google)을 원어로 사용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시시한 인터넷 게시글도 올릴 때는 퍼블리시한다고 돼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 기자들과 국회의원들은 한 로스쿨 남자 교수가 차녀를 필리핀 국제학교에 보낸 경험을 적은 페이스북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한동훈 딸 의혹은) 교육 내용이 괜찮은 국제학교나 영미권 고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제기하는 의문임을 알 수 있다. 작은 딸이 필리핀의 International School Manila에서 받은 교육을 보면서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8학년(14세)에 이미 ‘논문’ 작성법, 특히 문헌 인용의 원칙들을 철저히 가르친다. 한국에서는 대학에서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는 것이니 명색이 대학 교수인 사람이 그걸 보고 민망하지 않았다면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딸이 12세 때 받아온 툰황에서 카슈가르까지 여행객을 인솔한다고 가정하고 여행안내서를 작성하라는 숙제, 여론조사 후 정치 성향에 따라 그룹을 짜 정당을 만들고 장관 후보들을 정해 정견 발표를 하라는 과제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조국, 윤석열, 이준석 등을 시험 문제에 등장시키는, 정치 편향 교사들이 판치는 한국 중고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교육이다.
우물 안 한국 기자들과 무식한 한국 국회의원들이 한국의 일반 교육 눈높이로 벌이는, 낙마를 전제로 한 의혹 제기가 어지럽고 피곤하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오명을 탈피하려면 진보, 보수 언론 공히 우물 밖으로 나와 글로벌 의식과 수준에 자기를 맞춰야 한다. 이번 의혹 제기는 야비하고 무지한, 깜깜한 속에 갇혀 있는 우리 사회 모습 그대로다.
‘한OO’라고 익명 처리된 ‘한국3M’ 법인명을 한동훈의 딸 이름이라고 우기는가 하면, 논문 공저자 ‘이모(某) 교수’를 ‘이모’로 착각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 국회의원이 있었다. 또 한 여성 의원은 ‘새겨 듣겠다’는 답변에 “비꼬는 거냐”고 소리를 지르는 자격지심도 보였다. 인사 청문회가 한 편의 개그 콘서트였다.
이들 국회의원, 지식인들은 그러면서도 자기 자식은 국내 외고나 국제학교, 선진국 대학으로 유학 보내고 싶어 하고, 실제로 많이 보낸다. 원조 진보연(然)하는 인사들일수록 더 그렇다.
자식들이 대학 진학 후 그렇게 될 것이듯이 이들에게 그 선진국 의식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