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고발 영화의 현재①] 함께 분노하고 아파해…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
입력 2022.05.05 13:30
수정 2022.05.05 12:23
오락성 가미하며 흥행 성공까지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걸 영화가 갈증 해소"
사회의 부조리를 전달하는 뉴스보다 현실을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 한 편이 대중에게 더욱 와닿을 때가 있다. 영화는 재미와 긴장감, 즐거운 추억을 주는 오락적 기능도 있지만, 사회의 아픈 이면을 꼬집거나 전달하는 기능을 하면서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비록 모든 사회 고발 영화가 모두에게 울림을 전하진 못하지만 창작자들은 관객 한 명에게라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닿는다면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작은 물결이 큰 파도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내세워 비판하거나 이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회고발 영화들은 보통 사회적 의식을 자극하거나 부조리를 비난하고 마지막에는 사건과 피해자를 잊지 말야함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청소년 학교 폭력, 정치 결탁, 기업 비리, 빈부 격차, 동성애 등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짚는다. 실화가 바탕이 돼 현실과 더욱 맞닿아 있을 때, 사건의 실체가 충격적일 때, 반성과 비판의식을 양산해 내며 시너지는 배가 된다. 심지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범죄에 대해 더욱 엄격해지면서 소재가 더욱 확장되고 변형되고 있다.
언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직원들이 집단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도가니'(2011), '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다룬 '노리개'(2012),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모티프가 된'돈 크라이 마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간의 기록을 담은 실화 '남영동 1985'(2012), 2009년 철거민과 경찰이 대립한 '용산 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인 동명 소설을 원작 '소수의견'(2013),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에서 일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난 故 황유미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또 하나의 약속'(2013), 아동 성폭행 처벌 강화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영화 '소원'(2013), 2005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배경으로 '제보자'(2015)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에 현실성을 더하기 위해 다큐멘터리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던 사회고발 영화는 촌철살인의 대사와 위트, 해학을 겸비하며 상업적으로 흥행까지 성공하는 변화도 보였다. ‘내부자들’(2015), ‘베테랑’(2015)는 권력자들의 추악한 민낯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면서도 오락성 짙은 장면들을 배치해 사회고발 영화의 효과를 높였다.
이후에도 2003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사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재심'(2016), 칠곡군에서 발생한 '칠곡 아동 학대 사건'을 재구성한 '어린 의뢰인'(2019),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소재로 한 '블랙머니'(2019)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효율성을 위한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코로나19로 접어든 2020년 이후에는 사회 고발성 영화가 다소 주춤했다. '보이스'(2021)을 제외하면 할리우드 히어로, 스릴러물 등이 대부분이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어두운 분위기나 심오한 여운을 남기는 사회고발 영화를 관객들이 반길지 미지수였다. 그러나 '공기살인'과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가 2022년에 개봉하며, 오랜 만에 사회고발 영화가 고개를 들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공기 살인'의 배경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폐 질환 피해자 백만여 명이 속출한 생활용품 중 화학물질 남용으로 인한 세계 최초의 환경 보건 사건으로 기록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다.
4월 27일 개봉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는 일본에서 있었던 이지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쓴 동명의 희곡을 한국의 정서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동안 피해자 입장에서 억울함이나 죄를 폭로했던 시선과 달리 사건을 숨기고 축소시키려는 가해 학생 부모 시선에서 진행된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예나 지금이나 늘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의 잔혹함과 그들의 부모의 비열한 민낯을 폭로한다.
김지훈 감독은 "우리 영화가 소통할 수 있는 작은 창구가 됐다고 생각하면 기쁘고 감사하다. 이 영화가 어떻게 보일지 두려운 마음이다. 작지만 많은 시도들에서 희망이나 해결의 불씨를 느낀다. 작은 영화 한 편이긴 하지만 우리가 공감하고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한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화들이 만들어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사회고발 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지만 투자부터 개봉까지 쉽지는 않다. 민감한 소재일수록 극장이나 투자처에서 영화의 소재가 된 대상들에게서 눈치를 봐야 한다. 용사 참사를 다룬 '소수의견'은 2013년 6월 크랭크업했지만 수차례 개봉일이 연기되며 외압 논란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원작자 손아람 작가는 "CJ가 이 회장 구속 이후 개봉을 1년간 연기해왔던 '소수의견'을 결국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폐기처분하기로 했다는 소식. 정권에 보내는 수십억 원짜리 화해의 메시지인 셈"이라고 SNS에 글을 적었지만, 논란이 일자 부담을 느껴 삭제했다. 결국 ‘소수의견’은 CJ E&M에서 시네마서비스로 배급사를 변경하며 2년 만에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고 장자연 사건을 연상시키는 소재로 제작 단계부터 이목을 끌었던 '노리개'도 외압설 논란이 있었다. 최승호 감독은 "영화 제작 과정 중 특별한 외압은 없었다. 하지만 투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라며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고발 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사회 고발 장르의 영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현실의 문제들을 짚는데 방법적으로 대중적이며 수월하다. 또 부정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을 필요로 하는 한 계속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정치권이나 언론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걸 영화가 대신에 갈증을 해결해 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반긴다. 언론이나 미디어가 사회적인 역할을 잘 하면 사회고발 영화는 잘나오지 않는다. 대체로 장르 영화나, 멜로 등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 현재 이 기능을 언론이 제대로 하지 못하니 영화가 그것을 대신하는 중이다“라고 사회고발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는 이유를 전했다.
이어 "또 감독이나 작가들의 상상력이 확대됐고 수위도 더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이전보다 민감한 사안을 조금 더 수월하게 다룰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완벽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건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자유롭게 소재를 수면 위로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적 재미가 더해졌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