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사찰’ 논란 당시 중앙지법원장, ‘尹비판’ 제안했다 거절
입력 2022.04.05 10:43
수정 2022.04.05 15:14
김명수 측근,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윤석열 비판 입장 내자" 제안
판사들 “민 원장 제안 반대하기 불편했지만, 판사사찰 재판 진행 중이어서 입장 내지 않아"
민중기 “입장 표명 요구 안 해…판사들의 의견 들은 게 전부”
김명수 대법원장의 측근인 민중기(사법연수원 14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2020년 법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들을 불러 이른바 판사사찰 문건 작성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비판하는 취지의 입장을 내자고 제안했다가 판사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사찰 문건 작성 의혹은 주요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의 특징들을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요약한 문건이다.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처분과 징계를 받았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2020년 11월 27일 민중기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김병수 형사수석부장판사와 형사합의부 부장판사 등 약 10명을 원장실로 불러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의혹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전 장관이 판사 성향 분석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 이유로 윤석열 총장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지 사흘 뒤였다.
이 자리에는 민 중앙지법원장, 김 형사수석부장판사 이외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 등을 맡은 김미리 부장판사,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 사건 담당 임정엽·김선희·권성수 부장판사,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담당 윤종섭 부장판사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전 원장이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들을 모아 의견을 수렴한 것은 윤 당선인이 직무정지 처분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집행정지 심문을 앞둔 시점이었다. 법조계에선 민 전 원장이 재판부를 동원해 여권에 힘을 실어주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윤 당선인은 징계와 직무정지를 둘러싼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모두 인용 결정을 받아내 검찰총장 직무에 복귀했지만 이후 징계를 둘러싼 소송 본안 1심에서 패소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부장판사는 “민 전 원장이 검찰을 비판하는 취지의 입장을 내자고 제안했고 김 전 수석도 원장의 의견에 동조했다”고 말했다. 또한 “민 전 원장이 입장 표명을 강제하거나 요구한 것은 아니고 제안하는 정도였다”면서도 “원장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반대하기 불편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민 전 원장의 발언에 동의했던 이는 김 전 수석과 다른 부장판사 한 명 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리에 모였던 대부분의 부장판사들은 문건에 담긴 내용이 심각한 사찰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고, 문건을 둘러싼 재판이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법원이 공식 입장을 내는 데 반대했다. 이후 다수 의견에 따라 입장을 내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여권과의 교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1월 26일 오후 7시에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판사들이 움직여줘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는데, 그 통화 시점은 민 전 원장이 부장판사들을 소집하기 전날이었다.
이에 대해 민 전 원장은 “부장판사들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한 일이 없다”며 “거기(사찰 문건)에 나오는 재판부가 대부분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여서 당사자들인 형사합의부 판사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의견을 들었던 것이 전부”라고 반박했다.
한편 민 전 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학 동기로,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맡았던 진보 성향의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법원 추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