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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매장보다 배달이 문제"…일회용품 제한에 현장은 '아수라장'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2.04.02 07:00
수정 2022.04.01 20:35

정부, 식당·카페 일회용품 다시 규제

제도 시행 첫날 현장에선 실랑이도

취지 공감하지만 방법·효과는 ‘의문’

“매장 사용은 소량…심각한 건 배달”

정부가 1일부터 카페와 식당 내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제한하자 경남 양산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이에 대한 안내문을 붙여놓고 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하는 건 우리도 공감하는데 방향은 좀 잘못된 거 아닌가 싶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 일회용품 사용마저 제한되면 주방에 부하가 엄청나다. 점심 때 쓰는 물컵만 해도 최소 200개는 넘을 텐데….”-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박기찬(48) 씨.


1일부터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제한하자 일선 식당과 카페에서는 작은 실랑이들이 이어졌다. 주로 손님과 점주, 직원들 사이 테이크아웃 용도 플라스틱 컵 사용을 두고 생긴 갈등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과연 환경 보호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66㎡ 규모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강희숙(52) 씨는 이날 오전 첫 손님부터 테이크아웃 컵 사용을 놓고 실랑이를 해야 했다. 테이크아웃 컵에 음료를 받아 간 손님이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마신 것이다. 이를 본 강 씨가 제재하자 손님은 “일행이 곧 도착할 예정이고, 그때 바로 나가겠다”고 버텼다.


강 씨는 “오늘부터 정부 규제가 시작돼 매장 내에서는 테이크아웃 컵을 사용할 수 없다. 필요하면 머그잔에 담아 드리겠다”고 했지만 손님은 “잠시도 안 되냐”고 불만을 토로한 뒤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음료를 들고 카페에서 나갔다.


이날 취재진이 찾아간 카페 주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사례를 경험했다. 경남 양산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박연희(43) 씨는 “점심을 먹고 온 직장인들이 카페에서 잠시 앉았다가 나갈 거라면서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가 설명하고 머그잔에 담아 드리면 정말 5분쯤 앉아서 마시다가 결국 (남은 음료를)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 나가신다”고 했다.


박 씨는 “결국 어차피 금방 나갈 분들인데 우리는 (테이크아웃) 컵값은 컵값대로 들고 설거지는 설거지대로 늘어나게 된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식당은 물 마시는 컵 사용이 가장 문제였다. 취재진이 방문한 한 추어탕집과 냉면집에서는 그동안 손님이 마시는 물잔 대신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했는데, 이번 규제로 각각 스테인리스 컵과 다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바꿨다.


추어탕집 직원은 “그동안 종이컵을 쓰다가 스테인리스 컵으로 바꿨는데 설거지가 가장 걱정”이라며 “많을 때는 점심때만 150개 이상 쓰는데 주방이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냉면집 주인 한호일(60) 씨는 “지금은 그나마 괜찮은데 더워지면 걱정”이라며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수저도 하나씩 전부 종이 포장했는데 이것도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정부가 1일부터 카페와 식당 내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제한한 가운데 경남 양산의 한 대형 커피전문점에서 다회용 플라스틱 컵을 준비해둔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업주들이 사용 가능한 일회용품과 그렇지 않은 물품을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회용품 규제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서울 양천구에서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박기찬(48) 씨는 다른 식당들처럼 그동안 물컵으로 제공하던 일회용 종이컵을 이날 모두 치웠다. 대신 그 자리를 비용이 저렴하고 보관이 편한 다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채웠다.


박 씨는 “웬만하면 다른 컵으로 하려 했는데 보관하기가 아무래도 (다회용) 플라스틱 컵이 가장 좋겠다 싶었다. 가격도 싼 편이라 선택했다”며 “그동안 (일회용) 종이컵을 썼는데 이제 못 쓰게 되니 설거지가 가장 많이 부담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 씨가 치운 종이컵은 아직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등은 11월 24일부터 규제 품목으로 추가돼 그전까지 사용할 수 있다.


환경부가 이번에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한 품목은 일회용 컵과 접시, 용기, 포크, 수저, 나이프, 나무젓가락, 이쑤시개, 비닐 식탁보 등 18개다. 일회용 봉투와 쇼핑백 무상 제공도 금지다. 종이 재질이나 가루 발생 등을 이유로 별도 보관이 필요한 제품을 담기 위한 합성수지 재질 봉투는 예외다.


박 씨는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안 된다길래 당연히 (일회용) 종이컵도 안 되는 줄 알았다”며 “(다회용) 컵을 샀으니까 일단 써보고 불편하면 종이컵을 다시 쓰던가 해야겠다”고 말했다.


몇몇 식당과 커피전문점을 둘러본 결과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보다 배달용 물품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매장과 배달을 겸하고 있는 커피전문점 주인 장 아무개(45) 씨는 “미래세대를 생각했을 때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하는 건 당연하고, 우리 매장에서도 정부 정책을 당연히 따라갈 것”이라면서 “다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배달인데, 정부가 이 문제는 어떻게 접근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1일부터 카페와 식당 내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제한한 가운데 경남 양산의 한 소규모 커피전문점에서 배달용 커피를 일회용 봉투에 담은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장 씨는 “커피 두 잔 (배달) 보내는 데 들어가는 일회용품만 해도 테이크아웃 컵과 빨대, 비닐 캐리어, 배달 봉투, 컵홀더까지 최소 5종류”라며 “장사하는 입장에서 배달 물품에 친환경 용품을 쓰는 건 사실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11월 24일 이후 빨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라고 지적했다. 장 씨는 “뜨거운 음료는 상관없지만 아이스(ice) 음료는 빨대 없이 마시는 건 정말 불편하다”고 말했다. 종이 빨대 등 대체품에 대해서도 “종이 빨대는 비용도 플라스틱의 몇 배나 되고, 무엇보다 손님들이 싫어한다”며 “빨대 규제는 정말 (정부가) 다시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식당과 커피전문점을 찾은 시민은 대체로 환경 보호를 위한 일회용품 규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달았다. 일부는 코로나19 감염 걱정을 하기도 했다.


냉면집에서 만난 한 손님은 “예전에 종이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다시 쓰게 한 것으로 아는데 아직 코로나19가 안 끝난 상황에서 다시 못쓰게 하는 건 좀 이상하다”며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는 (규제를) 좀 늦춰도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만난 이지수(24) 씨는 “매장에서 일회용품을 못 쓰게 하는 건 괜찮은데 플라스틱(테이크아웃) 컵을 더 효과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면 더 좋을 것”이라며 “가끔 공원이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씨와 함께 차를 마시던 양 아무개(24) 씨도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쓰는 일회용품보다는 테이크아웃으로 버려지는 게 훨씬 많을 텐데 그런 부분을 먼저 고쳐야 할 것”이라며 “좀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1일부터 카페와 식당 내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제한한 가운데 경남 양산의 한 대형 커피전문점에서 테이크아웃 컵을 쌓아둔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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