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구현모, 임기 3년차 '지주형 회사'로 기업가치 퀀텀점프(종합)
입력 2022.03.31 12:26
수정 2022.03.31 12:31
“아직도 저평가됐다”…지주사 역할로 기업가치 제고
‘쪼개기 후원’ 여파…박종욱 대표 사내이사 자진 사퇴
구현모 KT 대표가 ‘지주형 회사’ 전환 검토를 공식화했다. KT는 구 대표 취임 후 통신회사(텔코)에서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기업)로 변화를 선언하며 기업가치와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구 대표는 KT의 기업가치가 “아직도 저평가됐다”고 보고 있다. 임기 마지막 해인 3년 차를 맞아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또 한 번의 기업가치 퀀텀점프를 노리기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지주사’ 아닌 ‘지주형 회사’…“자회사 가치 인정받겠다”
구현모 KT 대표는 31일 서울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제4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업구조 조정을 통한 지주형 회사로의 전환에 분명히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단, 구 대표는 ‘지주사’가 아닌 ‘지주형 회사’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KT가 단순 지주사로서 헤드쿼터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닌 별도의 사업을 영위하고 지주사의 형태만 빌려와 사업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구 대표는 “아직도 KT의 주가가 저평가되고 있다고 본다”며 “개별 자회사의 가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지주형 회사로 전환되면 앞으로도 주가가 충분히 상승할 여력이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KT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점쳤었다. 하나금융투자는 이달 초 리포트를 통해 “구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아마도 2023년에는 물적분할을 통한 지주사로의 전환이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KT가 물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시가총액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라며 “쇠퇴기에 진입한 사업은 적극적으로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고 미래 성장 산업은 육성해 각각의 개별 사업군에 대한 시장의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구 대표는 KT가 지주형 회사 전환을 위한 준비를 일부 마쳤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콘텐츠는 스튜디오지니로 묶어냈고 금융은 BC카드 중심으로 그 아래 케이뱅크 구조를 갖추는 등 일부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이날 자회사의 기업공개(IPO)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올해 밀리의서재와 케이뱅크 등을 IPO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케이뱅크는 올해 말, 내년 초 정도로 준비하고 있다. BC카드 등도 가능성이 있다”며 “IPO 시 각자 상당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SEC 과태료 질타…노조·주주 항의로 장내외 ‘시끌’
이날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될 예정이었던 박종욱 KT 각자대표(경영기획부문장·안전보건총괄)는 재선임 투표를 앞두고 스스로 사퇴했다. KT는 이에 대해 “일신상의 이유”라고 밝혔으나 국민연금과 일부 단체의 반대 의견 탓에 이뤄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앞서 KT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박 대표 재선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반대 사유는 ‘기업 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자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박 대표가 국회의원에 대한 ‘쪼개기 후원’ 혐의로 약식 기소돼 올해 1월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벌금형이 검찰에 의해 청구된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박 대표는 사내이사 임기가 이날 만료되면서 대표이사 자리에서도 내려오게 됐다. 단, 기존에 맡던 경영기획부문장 자리는 유지한다. 그가 맡던 안전보건총괄(CSO) 자리는 당분간 공석이 된다.
KT의 ‘쪼개기 후원’은 박 대표의 사퇴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주총 내내 언급되면서 장 내외를 소란스럽게 했다. KT는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관련 건으로 총 630만 달러(약 75억원)의 과태료와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이는 국내 기업 중 첫 사례다.
주총장 안팎은 이를 비판하는 노동조합과 주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주총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고성이 거듭 오가면서 의사진행이 잠시 지연되기도 했다. 약 1시간 20분여간 진행된 이날 주총은 재무제표 승인의 건 통과부터 순탄치 않았다.
주총에 참석한 한 주주는 “SEC 과징금 부과는 손실충당부채로 인식됐느냐”며 “해당 건 관련 감사를 실시했는지, 향후 조치는 무엇인지 답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구 대표는 “SEC 과징금은 2021년 재무제표에 합리적 추징금이자 충당 부채로 반영됐다”며 “컴플라이언스 위원회를 설치하고 외부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영입해 문제되는 기부금들에 대해 검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직원 교육을 강화해 중요성과 관련 법률, 해외 규정, 회계처리 등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 대표는 해당 건이 오래전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회사의 평판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주주 배당 ‘기타의 재산’ 추가…현물배당 근거 마련
KT는 이날 주총에서 ▲제40기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임원퇴직금지급규정 개정 등 총 6개 안건을 승인했다.
KT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4조8980억원, 영업이익은 전기 대비 41.2% 증가한 1조6718억원을 기록했다. 제40기 재무제표 승인에 따라 배당금은 전년 대비 41.5% 증가한 주당 1910원으로 확정했으며 오는 4월 27일부터 지급한다.
KT는 정관 일부를 변경해 주주환원 방법을 다양화했다. 기존에는 주주에 대한 배당을 ‘금전’과 ‘주식’으로 한정했지만, ‘기타의 재산’을 추가해 향후 자회사 주식을 현물배당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구 대표는 “최근 물적분할과 관련해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었다”며 “분할을 앞둔 KT클라우드의 구체적인 상장 계획은 없지만 가치가 높아져 몇조원짜리 회사가 되면 필요시 주주들에게 주식을 배당해줄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KT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3명을 선임했다.
사내이사에는 윤경림 사장이 신규 선임됐다. 사외이사에는 현 KT 이사회 의장인 유희열 사외이사가 재선임됐다. 현재 라이나생명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홍 벤자민 사외이사도 선임됐다.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회 위원으로는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지냈던 김용헌 세종대학교 석좌교수가 선임됐다.
이 외에 마이데이터 사업추진을 위해 ‘본인신용정보관리업 및 부수업무’를 목적사업에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