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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부하 여군 성폭행’ 소령 무죄·대령 유죄…피해자 "또한번 죽었다"

이수일 기자 (mayshia@dailian.co.kr)
입력 2022.03.31 13:33
수정 2022.03.31 17:28

함장에게 직속상관 성폭력 피해 보고하자…함장도 지위 악용 성폭행, 군검찰 기소

1심에선 두 사람 다 유죄 받았으나 2심에선 무죄 “강간죄 성립될 수 없어”

대법 "피해자 진술 신빙성, 대령은 유죄…합리적 의심 없이 혐의 입증 못해 소령은 무죄"

여성·인권단체 "군대를 성평등 상식의 공간으로 바꾸고자 한 피해자 용기 무력화시킨 오판"

대법원 모습.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부하 여성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장교에게 군사법원이 내린 무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받으면서, 2심 재판이 다시 열리게 됐다. 그러나 가해자인 대령에 앞서 같은 피해자를 여러 차례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직속상관(소령)은 무죄를 확정받아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31일 군인 등 강간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해군 A 대령(범행 당시 중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해 장교의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는 일부 사정만으로 진술 전부를 배척한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B 소령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피해자의 진술에는 신빙성이 부족한 정황이 있고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사실심 법원(1심과 2심)은 인접한 시기에 같은 피해자를 상대로 저질러진 동종 범죄에 대해서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나 그 신빙성 유무를 기초로 한 범죄 성립 여부를 달리 판단할 수 있다"며 "이것이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 보장이라는 형사소송의 이념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당시 중위)는 2010년 사건이 벌어진 근무지에 배치됐고, 직속상관인 함선 포술장 B 소령으로부터 수차례 강제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성폭행 피해로 임신이 됐음을 알게 된 피해자는 당시 함장이던 A 대령에게 피해 내용을 보고했다. A 대령은 성폭력 피해와 임신중지수술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을 빌미로 지위를 악용해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는 사건 이후에도 계속 복무했으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2017년 근무지를 이탈했고, 이어 군 수사기관에 피해를 신고하는 한편 A 대령과 B 소령을 고소했다. 이듬해 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B 소령에게 징역 10년을, A 대령에게 징역 8년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2018년 11월 두 사람이 무죄라고 선고했다. 당시 고등군사법원 재판부는 “피해자가 의도적으로 허위 진술을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기억이 변형 혹은 과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강간죄 구성요건인 폭행협박이 동반되지 않아 강간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2심 판결에 불복한 군검찰이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무죄 판결 뒤 B 소령과 A 대령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으로 작성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1개월 사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여성·인권단체들은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구성해 피해자를 대리해왔다. 공대위는 대법원이 B 소령의 무죄를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 사건 피해자는 물론이고 군대를 성평등한 상식의 공간으로 바꾸고자 한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발걸음을 무력화시킨 오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부하 여군과 해군 상관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강고한 위계질서, 해군 함정의 특수성, 성소수자라는 피해자의 위치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협소하게 해석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는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가 대독한 입장문에서 "그날의 고통들을, 그 수많은 날들의 기억을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저는 이해할 수 없다"며 "파기환송과 기각이 공존하는 판결로 오늘의 저는 또 한 번 죽었다"고 했다.

이수일 기자 (mayshi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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