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믿을맨' 김오수…박범계엔 '반항맨'인 까닭은?
입력 2022.03.29 05:35
수정 2022.03.28 22:35
'허수아비 총장' 논란에 리더십·신망 흔들려…검란(檢亂) 가능성 까지 '솔솔'
법조계 "김오수, 檢내부 불만 모른척 어려운 처지…박범계도 입장 알았을 듯"
수사지휘권 폐지 놓고 완전한 '남남'…인수위 업무보고, 대검 '통과'·법무부 '퇴짜'
업무보고로 존재감 표출하고 신망·리더십 회복…'수사권 박탈' 압박 방어가 과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문제를 놓고 김오수 검찰총장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정반대 행보를 보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힘빼기'에 주력하던 정부와, 이에 반발하는 검찰 내부 여론 사이에 끼어 진땀을 빼던 김 총장이 새 정권의 검찰 권한 확대 기조에 맞춰 내부 여론을 다독이고 리더십 회복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 적임자'로 지목된 김 총장은 취임 전부터 친정권 인사 논란에 시달려왔다. 지난해 5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그에 대해 "정권의 눈치만 보고, 절대로 칼을 대지 않을 '믿을맨'이라는 평가가 있다"며 맹비난을 하기도 했다.
야당 동의 없이 김 총장 임명이 강행되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권 약화가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특히 김 총장 취임 직후 이뤄진 첫 대검 간부급 인사에서는 논란의 친정권 인사들이 대거 전진 배치되면서 김 총장의 신망과 리더십은 더욱 흔들렸고 사실상 '허수아비 총장'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잇따랐다.
하지만 이들 우려와는 반대로 김 총장은 박 장관의 '검찰 힘빼기'에 종종 제동을 걸었다. 일례로 김 총장은 박 장관이 추진하는 검찰 직제개편안에 대해 대검 부장 회의를 주재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놨다. 박 장관은 예상외의 반발에 당황한 듯 "상당히 세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고, 김 총장과 심야 긴급 회동을 갖기도 했다.
같은 달 박 장관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대검 차장으로 임명하려고 했지만, 김 총장의 강한 반대로 서울고검장에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윤 고검장은 '조국사태' 국면에서 노골적으로 정권을 편들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견제하던 대표적인 친정권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박 장관은 지난 1월 중대재해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외부 전문가를 대검 검사급 검사(검사장)로 신규 임용하겠다며 모집 공고를 냈다. 이에 김 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침해, 검찰 내부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사기 저하 초래 등을 이유로 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결국 박 장관은 인사 계획을 철회했다.
이처럼 '친정권 성향' 꼬리표를 달고 취임한 김 총장이 박 장관에 거듭 반기를 든 배경에는 검찰 내부의 불만이 임계점에 다다랐고, 본인의 리더십도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의 발로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사평론가인 서정욱 변호사는 "아무리 김 총장이 친정권 인사라도 검찰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고, 본인의 임기 절반은 차기 정권과 일해야 한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일선 검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는 '검란(檢亂)' 사태 가능성까지 거론된 만큼, 박 장관도 김 총장이 내부 불만을 모른 척 할 수만 없는 입장임을 알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미묘한 대립관계를 유지해온 박 장관과 김 총장은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완전히 갈라서게 됐다. 그동안 김 총장은 검찰 권한 문제에 대해 입장이 정반대인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 끼여 난감한 처지였지만, 검찰 권한 확대를 지지하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내부의 요구를 적극 관철하고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변화된 정국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업무보고 과정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윤 당선인이 검찰의 독립성 강화를 취지로 한 '법무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자 박 장관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반면, 김 총장은 법무부에 수사지휘권 폐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또다시 박 장관과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결국 인수위는 법무부와 대검의 업무보고를 분리해서 진행한다는 사상초유의 결단을 내렸다. 이어 법무부는 지난 24일 오전 예정돼있던 업무보고가 당일에 전격 취소 당하는 '퇴짜사태'를 맞았지만, 김 총장의 대검은 "윤 당선인의 공약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 업무보고를 마쳤다. 정부조직법상 검찰총장의 상급자인 박 장관으로서는 입맛이 쓴 대목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총장이 인수위 업무보고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 정권에 발맞춰 검찰 권한 확대 노선을 분명히 해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수습하고, 위기론이 끊이지 않았던 리더십 회복에도 주력한다는 것이다.
특히 김 총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며 정치권의 사퇴 요구까지 일축한 상황이다. 내년 5월까지 원활하게 임기를 만료하려면 정권의 국정철학에 발맞출 의지가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김 총장은 임명 단계부터 신망이 두텁지 않았고, 대장동 사태 등 정권 비리 뭉개기 의혹도 있어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었다"며 "박 장관이 검찰총장까지 겸임한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해 검찰 내부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의 압박에서 벗어난 김 총장은 검찰 정상화를 촉구하는 내부 여론을 대변하고, 당위성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며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압박을 잘 방어하는 것도 임기 동안 주어진 주요한 과제"라고 부연했다.
서정욱 변호사는 "애초 김 총장도 검사 출신인 만큼 검찰 권한 정상화와 검찰 독립에 찬성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며 "윤 당선인은 출혈을 감수하며 무리하게 김 총장을 쫓아내기보단, 협치를 통해 검찰권 정상화 공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