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③]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작가, 조은별입니다”
입력 2022.03.25 14:01
수정 2022.03.25 08:31
‘별똥별이 내게 온다면’ 저자 인터뷰
"이야기그림 보며 행복 느끼는 사람 많아지길"
지난 2020년, 이웃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작품들을 내건 온라인 전시가 열렸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서로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그림’으로 남겨달라는 DM을 보내온다. 스스로의 타이틀을 ‘이야기그림작가’로 정의한 조은별 작가의 이야기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다.
ⓒ조은별 작가 제공
“제가 말하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야기, 제가 관심을 갖고 더 알고 싶은 이야기를 의미하죠. 특히 저는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이야기그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서 사회의 이야기가 되고 사회의 이야기가 모여서 국가의 이야기가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개인의 사소하면서도 작은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조은별 작가는 누군가에겐 특별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사연들을 꼽아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 ‘별똥별이 내게 온다면’ 역시 같은 방식으로 탄생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그림이 쌓이고, 이를 엮어 만든 책이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비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행동을 담은 ‘별똥별이 내게 온다면’이라는 제목은 이 책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저는 유난히 옛날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이솝우화나 전래동화뿐만 아니라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죠. 그래서 제가 ‘이야기’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보네요(웃음). 특히 대학에서 ‘art history’를 전공으로 선택하면서 그림과 이야기에 대해 관심이 더욱 깊어진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개인과 사회, 국가의 이야기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거대한 역사도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이 저를 이야기그림 작가로 이끌었습니다.”
조은별 작가는 이야기와 그림을 모두 직접 만들어 낸다. 대부분의 동화에서 글과 그림을 한 사람이 모두 작업하는 건 드문 일이다. 조은별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직접 인터뷰를 하고, 그 인터뷰에서 강렬했던 부분을 그림으로 구상하고 전체적인 콘셉트를 만들어낸다. 보통 그림은 한 인물 당 10컷 이내로 작업하는데, 이 짧은 컷들만 봐도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조은별 작가의 이야기그림에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각자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인 셈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옛날 추억들을 떠올린다는 평이 많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나의 부모님,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일 수도 있죠. 거창한 것보단 일상의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일수록 보는 분들이 더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내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오히려 울림이 더 크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이야기그림을 그릴 때 이야기의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림의 색감에 대한 고민이 큰 편이에요. 아무래도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다 보니 따뜻한 느낌을 내기 위한 색조합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또 인터뷰를 할 때나 그림이나 글을 구성할 때는 낯선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분이 나의 할머니나 할아버지, 엄마 아빠, 혹은 내 동생, 오빠라면’이라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져서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죠. 이것 역시 온기가 담긴 이야기그림을 그리기 위한 아주 작은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최근 몇 년간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주목을 받는 데에는 팬데믹의 영향도 컸다. 조은별 작가의 ‘별똥별이 내게 온다면’ 역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 위안을 주고 있다. 동시에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 주인공들 역시 자신들의 삶을 그려놓은 이야기그림으로 다시금 위로를 받기도 한다.
“2020년에 ‘기억의 기록’이라고, 코로나 시대를 기억하는 예술인들의 작업을 함께 하고 서울시민청에서 전시도 했는데, 저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12분의 어른들을 인터뷰하고 이야기그림을 그려 전시했죠. 서울과 목포의 어른들의 이야기였는데 전시회에 오신 분들이 12분의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전해왔습니다. 팬데믹으로 힘든 시기에도 서로 공감하고 위로받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더라고요.”
ⓒ조은별 작가 제공
조은별 작가가 이야기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건 “사소한 이야기도 특별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추억”이라는 그의 말처럼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그림이라는 틀 속에 소중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보관하고 싶다는 조은별 작가의 마음이 사소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다.
“‘선구마을 다이어리’ 전시회를 할 때 이야기그림의 주인공인 어르신이 오셨는데, 본인 그림을 보고 나서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지금껏 보잘것없는 일만 했고 그래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 그림을 보니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요. 그분은 선구거리에서 그물 판매만 50년 가까이 하신 분이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거리에 앉아서 그물을 꿰매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춥거나 더워도 늘 같은 자리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성실함이 감동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선구거리의 어르신들이 수십 년 째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계셔서 목포가 항구도시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분들이 모두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선구마을 다이어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날은 그분들이 주인공이 됐고요. 아마도 그날의 그물가게 사장님의 이야기가 저를 이야기그림 작가로 만든 것 같네요(웃음).”
‘별똥별이 내게 온다면’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지만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공의 이야기를 하는 보통 동화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이 때문에 공감의 폭은 더 커지고,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감정을 보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동화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해서인지 교육적인 내용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읽었던 많은 동화책은 교훈적인 내용이 많았죠. 하지만 ‘별똥별이 내게 온다면’은 교훈적이거나 교육적이지 않아요. 공감하여 감동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린이용 동화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러스트를 주로 그리는데 제가 그리는 ‘어른을 위한 동화’는 상상보다는 실제를 바탕으로 하죠. 실제 일어난 이야기를 눈앞에 펼쳐진 듯 그려내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독자분이 이런 리뷰를 보내주셨어요. ‘사는 게 지치고 팍팍할 때 잠시 짬을 내서 읽으면 위로가 되는 책’이라고요. ‘별똥별이 내게 온다면’이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미소를 짓게 만든다면 그 소임을 다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인터뷰를 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고요. 아직도 동화는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야기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던 저의 시간들을 제 책을 통해 함께 느껴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조은별 작가는 ‘선구마을 다이어리’ 프로젝트를 비롯해 서울에서 두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지난해부터 ‘건어물 거리-기억의 기록’(가제)이라는 주제로 다시 목포의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포의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은 건어물 거리와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그림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세월이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로컬을 중심으로 이야기그림 작업을 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범위를 차츰 넓혀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조은별 작가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그림으로 남길 예정이다. 자신과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엄마의 레시피를 훔치다’라는 제목으로 저작권 등록도 마친 상태다.
“특별히 고집하는 것은 없지만, 앞으로도 저만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 스스로를 이야기그림 작가라고 명명한 것처럼 처음에 SNS로 온라인 전시를 하기 위해 열 컷 이내의 그림을 계속 그릴 생각이에요. 또 저는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행복한 오늘이 모여, 일주일이 행복해지고, 한 달이, 또 일 년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이런 저의 가치관이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를 담는 이야기그림과 잘 맞기도 하고요(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제 그림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