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민의 '복합쇼핑몰' 욕망…누가 손가락질 하는가 [김하나의 기자수첩]
입력 2022.02.22 07:18
수정 2022.02.22 07:23
민주당,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 재래시장 죽이는 탐욕으로만 바라봐
"광주는 언제까지나 시골 인심 정겨운 5일장만?" 민주당 비꼬는 글 쇄도
도스토예프스키 "인류애 말하는 사람일수록 구체적 인간 사랑하지 못해"
'욕망이 꼭 나쁜 것'이라는 인식, 절박한 사람에겐 폭력이 될 수도
"1000루블만 내면 당신이 하루 동안 걸어 다닌 땅을 전부 가져갈 수 있소. 단, 해가 지기 전에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오지 못하면 돈도 땅도 모두 무효라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땅이 좁게 느껴졌던 농부 바흠은 촌장의 제안을 승낙한다. 바흠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서 되돌아오면 더 많은 땅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걷고 또 걷는다. 해질 무렵 간신히 돌아오지만, 그는 죽고 만다. 결국 그가 차지한 땅은 그가 묻힌 무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키와 같은 2.1m' 뿐이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다 죽음을 맞는 바흠의 욕망은 참 나빠 보인다. 하지만 '욕망이 꼭 나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빈곤이 지긋지긋해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절박하게 노력하는 사람의 땅을 향한 갈망을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바흠은 농장관리인의 횡포로 "땅만 널찍하다면 악마도 무섭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난이 지긋지긋했다. '욕망은 나쁜 것' '지금에 만족하라'와 같은 이야기는 절박한 사람에게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엔 '욕망은 죄'라는 인식이 판친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광주에 복합쇼핑몰 유치 공약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발끈했다. 송갑석 민주당 광주시당위원장은 "전통시장 상인들 앞에서 대기업 복합쇼핑몰 유치를 말하는 몰염치하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 역시 지난 19대 대선 경선 후보이던 2017년 2월 14일 "중소상인들의 밥그릇을 빼앗고 지역 상권을 초토화할 광주 신세계 '복합쇼핑몰' 입점을 반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민주당의 인식을 보면 복합쇼핑몰 유치는 재래시장을 죽이는 탐욕적인 주장이다.
지금까지 광주에 복합쇼핑몰 입점 추진은 수차례 얘기돼 왔지만 그때마다 골목상권 잠식이라는 정치권의 반대 논리로 무산됐다. 이 탓에 광주에는 '스타필드' 같은 복합쇼핑몰이나 프리미엄 아웃렛이 없다.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도 보기 어렵다. 지난 달에야 겨우 '롯데마트 맥스' 한 곳이 출점했다. 금호고속이 광주터미널에서 운영하는 '유스퀘어'가 문화 및 쇼핑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복합쇼핑몰과는 차이가 있다. 이때문에 "민주당이 장기 집권한 호남의 결과가 이것이냐"며 '호남 홀대론'도 나오고 있다.
인류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사람일수록 구체적인 인간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지적처럼 인류애를 말하는 정치인일수록 민심을 모른다. 한 네티즌은 지난 17일 송 의원 블로그에 "아따 그라제~ 타지역 사람들은 코스트코, 트레이더스, 현대 아웃렛, 스타필드에서 쇼핑하고 여가 생활 즐길 때 영세 자영업자들과 상생하며 돕고 사는 민주화의 도시 광주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시골 인심 정겨운 5일장에서 장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막걸리에 파전 하나 딱 찢어먹으며 '이게 사는 맛이여~!' 외치면 되는 것이여"라고 비꼬았다.
'조금만 더' 욕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다. 더 좋은 쾌적한 환경에서 가족들과 나들이하고 싶은 광주 시민들의 욕망을 나쁘다고 평가절하할 수 없다. 이런 욕망을 '광주시민의 민주의식과 그 역사를 대형 쇼핑몰에 파는 명품으로 바꿔보겠다는 것'이라고 명명한 한 나라 정치인의 인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도리어 정치인이 광주 시민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선을 강요하는 고압적인 태도가 광주 시민 개개인의 민의를 제대로 못 읽게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