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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실적 겨냥한 현대차‧기아…관건은 '노조 리스크'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2.02.03 07:00
수정 2022.02.03 09:54

양사 노조, 나란히 강성 집행부 출범…'역대급 요구' 가능성

반도체 수급난 해소되는 3분기, 노조 파업 리스크 본격화

경쟁사 호황 누릴 때 노조 파업에 발 묶일 수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현대차 노조)가 지난 7월 5일 오후 울산 북구 현대차 문화회관에서 노동쟁의 발생 결의를 위한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없어서 못 판다.”


상업이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행복한 고민’이라 할 만한 소리다. 살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동나 못 파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팔리지 않아 물건이 남아도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지난 25일과 26일 연이어 2021년도 실적을 발표한 현대차와 기아는 “반도체 수급 이슈만 아니었으면...” 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아는 사상 최대, 현대차는 7년 만에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고도 그런 앓는 소리를 했다.


한창 불티나게 잘 팔리는 상황인데 반도체 수급난으로 생산이 원활치 못해 팔 차가 없으니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이런 안타까운 상황은 곧 해결된다. 현대차와 기아, 그리고 아마도 그들이 참고했을 시장조사기관들은 올 3분기부터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난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사고 싶어도 없어서 못 샀던, 심지어 남이 엉덩이라도 한 번 걸쳤을 중고차를 웃돈까지 얹어서 사야 하나 고민했던 소비자들이 줄을 서있는 만큼, 생산만 정상화되면 신나게 팔 일만 남았다.


반도체 공급 정상화로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는 것은 경쟁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동안 쌓인 수요가 있으니 당분간은 호황이 이어질 것을 기대해도 좋을 상황이다.


해외 딜러들이 서로 물량을 달라고 아우성이니 그동안 눈치 보여 못 올렸던 가격도 올릴 수 있다. 인센티브 따윈 꿈도 꾸지 말라고 면박을 줄 수도 있다. 잘 팔고 많이 남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장및빛 전망을 배경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사상 최대인 8조7000억원과 6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해 사업목표로 제시했다. 둘이 합쳐 무려 15조원을 넘는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현대차와 기아에게는, 나아가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고질적인 리스크가 있다. 바로 강성노조의 존재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는 지난해 나란히 강성 성향의 지부장을 선출했다. 조합원들이 강성 집행부를 택했다는 건 그만큼 원하는 게 많기 때문일 것이고, 집행부는 그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사측과의 관계에서 더 날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미 양사 노조 집행부는 지난해 말 사측이 사무‧연구직 책임매니저들 중 성과가 좋은 직원 10%를 선발해 500만원의 특별 보상금을 지급한 것을 놓고 “전체 근로자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라”며 사측과 대립하고 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에 걸맞게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도 ‘역대급 요구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과거 회사의 실적 부진에도 큰 폭의 임금인상과 거액의 성과급을 요구하던 이들이니 호실적을 낸 이번엔 얼마나 큰 것을 요구하겠는가.


순이익의 30%(현대차 노조), 영업이익의 30%(기아 노조)를 성과급으로 내놓으라는 것은 현대차‧기아 노조의 임단협 요구안 단골 메뉴다. 강성 집행부들이 올해 교섭에서 이걸 제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대차는 지난해 5조693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기아는 5조65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30%씩 계산하면 각각 1조7000억원, 1조5000억원이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2020년 미래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로보틱스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들인 돈이 1조원을 넘지 않는다. 이런 회사 3개를 사고도 남을 돈을 성과급으로 내놓으란 요구가 올해 교섭 테이블에 올라올 수도 있다.


요구안에 어떤 내용이 담기건 노조는 그걸 관철하기 위해 파업을 지렛대로 삼는다. 상견례 이후 몇 차례 교섭을 진행한 뒤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해 합법적 파업권을 확보하는 것은 우리나라 노조의 오랜 관행이다. 그리고 노조 집행부가 강성인 경우 파업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현대차와 기아 노사는 지난해 10년 만에 나란히 무분규 교섭 타결을 이뤘다. 자랑할 일이 아니다. 앞선 9년간 줄파업이 이어졌단 의미니 말이다. 지난해 무분규로 교섭을 타결한 두 회사 노조 집행부는 밀려났다.


2021년 5월 26일 진행된 현대자동차 노사 임단협 상견례 모습. ⓒ현대자동차

현대차‧기아 노조는 통상 5~6월 교섭 시작 이후 7~8월 쟁의조정 신청 및 조합원 찬반투표로 파업권을 확보하는 루틴을 보여 왔다.


사측으로서는 불행하게도 마침 반도체 수급난이 해소되고 본격적으로 생산라인을 풀가동할 시기다. 잘못하면 경쟁자들은 신나게 만들어 팔 타이밍에 현대차‧기아만 노조 파업으로 발이 묶이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그동안 해외 생산기지를 다수 구축했으나 여전히 국내 생산 비중이 높다. 현대차는 30% 이상, 기아는 40% 이상을 국내에서 생산해 내수용으로 판매하거나 해외 시장에 수출한다. ‘물 들어와 노 저어야 할’ 시기에 국내 노조의 파업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창 생산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에 설마 파업을 할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유감스럽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과거에도 강성 성향의 노조 집행부는 회사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시점을 파업의 최적기로 삼아왔다. 그래야 요구안 수용을 압박할 수 있는 무기로서의 효용가치가 높아질 테니.


현대차와 기아 생산직 근로자들은 과거 회사의 고속성장을 이끈 주역이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강력한 추진력도 생산 현장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회사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으니 씁쓸한 일이다.


가뜩이나 전기차 위주의 산업 패러다임 전환으로 생산직 근로자들이 부담스런 존재로 취급받는 세상이다. 이런 시기에 ‘노조 = 리스크’의 공식을 사회적인 정설로 만들어가는 상황이 스스로의 생존에 도움이 될지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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