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주 앞으로…여전히 정의·조항 모호하다
입력 2022.01.17 05:42
수정 2022.01.18 10:40
법조계 "경영책임자 의미와 범위 모호, 누가 처벌받는지 불분명…바지사장 희생양 만들 수도"
"원·하청 문제 발생 시 책임 범위도 애매…하청 준 대기업에 형사처벌은 문제 소지"
벌써부터 법 개정 필요성 대두…시행 이후에는 헌법소원 제기 및 위헌 문제 봇물 이룰 것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각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이 법은 종사자의 안전권 보장이라는 긍정적인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일각에서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불분명한 정의, 사고 발생 시 책임 범위 등 모호한 규정 탓에 시행되기 전에 현장에서 적잖은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중대재해처벌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의 의미와 범위가 모호해 여러 법 해석이 난립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9항을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형사 처벌에 관한 법률은 기본적으로 누가 처벌받는지가 명확해야 하는데 경영책임자를 A 또는 B라고 규정하다보니 누가 처벌받는건지 불분명하다"며 "A와 B 둘 다 처벌받는 건지 또는 B가 있으면 A는 처벌받지 않는 것인지 등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경영책임자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여러 가지 법 해석이 나올 수 있다"며 "과실 범위를 따져야 하는데 기준이 불분명하다 보니 책임 대표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소위 '바지사장'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도 "경영책임자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짚어야 한다"며 "또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사업장이라고 하면 그 장소적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구체화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모호한 법 조항때문에 원·하청 관계에서 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어떤 안전 법률을 따라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야기된다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 재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법인데, 원칙적으로 책임 원칙은 행위자의 책임을 의미한다"며 "도급이나 하도급을 줬을 때 실제로 행한 사람은 도급을 받은 측이지만 사고가 나면 하청을 준 대기업에게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이어 "종사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포괄적인 의무 내용도 굉장히 불명확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를 하면 위험 방지가 되는 것인지 기업 입장에서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필요한 비용, 적절한 조치 등의 구체적이지 않은 표현도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김상민 변호사는 "기업은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 사항을 이행해야 하는데, 안전보건 관계법령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도 현재로선 불분명하다"며 "회사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사업을 하다 보니 법도 그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어떤 법을 지키라는 것인지 회사 스스로 알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벌써부터 법 개정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김상민 변호사는 "법 자체가 모호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해석론에 맡겨져 있는 책임의 주체 부분부터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 부분 등까지 모호한 사항들을 명확하게 짚고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미 통과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법률이니만큼 법 전체를 재검토해서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며 "시행 이후부터 고쳐나가면 늦을 뿐만 아니라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위헌에 대한 문제가 생길 것이기때문에 지금부터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지적하는 부분들을 바로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