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홍종선의 배우발견⑭-2] 강인해진 티모시 살라메, 이젠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1.12.13 16:16
수정 2024.02.21 10:54

배우 티모시 살라메. 영화 '듄'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홍종선의 배우발견⑭-1] 깨질 것 같은 아름다움, 지켜주고 싶은 티모시 살라메…에 이어서


‘핫 썸머 나이츠’를 통해 마음껏 망가지고 거칠어졌지만, 그래도 ‘소년’이었다. 티모시 살라메에게서 소년의 기운을 털어내고 남자로 각인시킨 영화가 있었으니 ‘더 킹: 헨리 5세’(감독 데이비드 미쇼, 배급 넷플릭스, 2019)이다.


이 영화에서 티모시 살라메는 새로운 왕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흔히 역사고전극에서 왕은 용맹하고 지혜로운 왕이거나 광기 어린 폭군이기 쉬운데, 티모시 살라메가 그려 보인 헨리 5세는 달랐다. 결과가 달랐다기보다는 과정이 다르고, 활동적 액션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를 끌어당겼다.


첫 등장은 곧 부서질 것 같은 모습, 깨질 것 같은 아름다움이 먼저 보이는 특유의 이미지가 재탕된다. 영토 확장, 영국 통합의 열망에 백성을 저버린 부왕 헨리 4세(벤 멘델슨 분)를 보며 고뇌에 빠진 왕자 할, 정치적이고도 인간적인 고뇌를 주색과 방탕으로 드러내는 나약한 장자의 모습으로 첫인상을 안긴다.


영화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할이 변화하고 우리가 그를 다르게 보게 되는 두 번의 계기가 찾아온다. 아버지의 뜻대로 동생 토마스(딘-찰스 채프먼 분)가 영토 전쟁에 나서자 동생을 아껴 전장으로 달려가 충고한다. 내가 적장과 1대1 대결로 전쟁을 마무리하겠다, 병사들의 죽음을 막아보겠다고 말하지만, 왕세자 토마스는 자신의 공을 가로채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형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귀중한 목숨을 걸고 제안한 것인데 그 뜻을 알지 못한다. 적의 왕자가 1대1 대결을 받아들여 할이 승리하고 전면전을 막아낸다. 할의 이름이 잉글랜드에 퍼진다.


두 번째는 헨리 4세가 병사했을 때다. 스스로 저버린 후계자 자리건만, 운명은 할을 놓아주지 않는다. 형의 노력에도 전쟁을 멈추지 않은 동생이 결국 전사했고, 공석이 된 왕좌의 주인으로 임명된다. 왕이 된 할은 아버지의 광기를 잠재우고 가능하면 전쟁을 피하려 하고, 백성의 삶을 살피려 한다. 하지만 대법관(숀 해리스 분)과 대주교(앤드류 하벨 분)는 왕을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내몰고, 뜻에 없는 전쟁이었지만 할은 충복 존(조엘 애저튼 분) 장군의 전략에 힘입어 승리하고 영국을 하나 되게 한다. 그러나 할은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프랑스와의 관계를 이간질한 대법관과 사촌 동생을 단호히 처단한다.


티모시 살라메는 평화를 중시하고 병사의 목숨을 귀히 여기는, 다감한 왕의 소리 없는 처세를 담담하면서도 힘있게 연기했다. 휴전 중이던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다시 일으켜 승리로 이끈, 전쟁을 좋아하는 왕으로 평가받는 헨리 5세의 역사적 공과보다는 독서와 음악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더 강하게 투영된, 정신적으로 강력한 왕의 내면을 깊이 연기했다. 전쟁영웅의 통상적 외형을 하지 않은 티모시 살라메의 가녀린 체격이 고뇌 어린 표현에 한몫했다.


해서, 역사 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역사적 인물 헨리 5세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가 원작임을 감안하면 원작자와 데이비드 미쇼 감독의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덕분에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1944년 영화 ‘헨리 5세’나 캐네스 브래너가 1989년 연출과 주연을 맡은 동명의 작품에서의 왕과는 다른 색깔의 헨리 5세가 나왔다. 여담이지만, 프랑스의 어리석은 왕세자 루이로 등장한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도 2019년 작의 재미를 더했다. 프랑스인이지만 영어를 쓰기 좋아하는 루이, 잰 체하고 위압적이지만 실속 없는 화려함을 지닌 인물을 잘 표현했다.


‘더 킹: 헨리 5세’로 연기력의 우물도 더 깊이 파고, 힘과 무게감도 키운 티모시 살라메는 영화 ‘듄’(감독 드니 빌뇌브,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2021)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2,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제작비로 좌초되던 영화가 활력을 얻었다.


101세기, 10,191년의 머나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티모시가 살라메가 맡은 역할은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후계자 폴이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우주 황제의 권력 아래 놓인 여러 별 중 하나를 다스리는 왕족이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덕치가 우주 신민들의 신망을 부르자 황제는 모래언덕(듄)이라 불리는 별 아라키스로 아트레이데스 일가를 파견한다.


아라키스는 사막뿐인 별이지만 ‘스파이스’라고 하는 신성한 물질, 에너지의 원천이 모래알 사이사이에 섞여 있다. 스파이스를 채취하려는 열강들의 전쟁으로 점유국만 바뀔 뿐 계속해서 식민지의 운명이 계속되고 있는 슬픈 별이다. 사막 속을 기어 다니는 거대한 모래벌레 ‘샤이 훌루드’도 아라키스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폴의 아버지 레토 왕(오스카 아이삭 분)은 진압군이 아니라 협력자의 모습으로 아라키스와 관계 맺고자 하지만, 황제가 정치적으로 파놓은 시샘과 파멸의 함정일 뿐이다.


아트레이데스의 왕자 폴에서 전 인류를 구원할 퀴사츠 헤더락으로의 성장. 영화 '듄'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아라키스에는 구원 설화가 전해온다. 자신들을 구하러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예언은 수백 년을 거듭해 내려왔다. 그리고 폴은 그 메시아로 키워지고 운명지어진 인물이다. 베네게세리트 단원인 어머니에 의해 초능력을 훈련받고, 베네게세리트가 오랜 세월 종교의 이름으로 세뇌해 온 덕에 폴은 점령국의 왕자지만 메시아로 지목되고 인증을 요구받는다. 폴은 점차 또렷이 미래를 보기도 하고 신체적 초능력도 안정시켜 가는데, 온전히 ‘퀴사츠 헤더락’(구세주)으로 각성하기 전에 황제의 군대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폴과 아라키스가 동일한 적을 둔 한 편이 되는 상황에서 ‘듄’의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난다.


인상적인 것은 이번에도 ‘더 킹: 헨리 5세’와 마찬가지로 폴의 내면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정말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싶게 여리게 생겼지만, 압도적 강인함이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고 시공을 초월한 육체와 정신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준다. 또 그 여린 외모가 미래를 보는 것이 축복인지 고통인지 단정 지을 수 없게 하고, 메시아인 것이 진정 만들어진 허상인 건지 예정된 운명인지 헷갈리게 하면서 스토리를 심화시킨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부터 ‘핫 썸머 나이츠’와 ‘더 킹: 헨리 5세’를 거쳐 영화 ‘듄’에 이르면, 마치 티모시 살라메는 나약함으로 시작해 강인함으로 완성되는 캐릭터에 제격인 배우로 보인다. 실제로 제격이다. 각각의 영화에서도 유약하게 시작해 힘 있게 끝나지만, 작품을 거듭할수록 그 힘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처음엔 백설 공주의 환생 같은 희고 고운 얼굴, 젓가락 같은 체형의 외모부터 보이지만 이내 내면의 뜨겁고 강한 에너지가 보인다. 그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를 섣불리 폭발시키지 않고 다스리는 조절력도 갖췄기에 호흡이 긴 인물이나 작품도 소화 가능하다.

'더 킹: 헨리 5세'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환히 웃는 티모시 살라메 ⓒ넷플릭스 제공

추신(P.S)이라고 해야 할까. 여자와 남자, 그 어느 쪽으로도 성을 구분 짓는 폭력적 특성이 없는 것도 21세기 생존력을 키우는 티모시 살라메의 매력이다. 아니, 틀린 말이다. 성을 가르는 게 무의미한, 중층적 매력을 지닌 게 그의 매력이다. 티모시 살라메는 잘생겼다는 말도, 예쁘다는 말도 어울리는 배우다. 스스로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여자 옷도 남자 옷도 입는 일상이 그런 중성적 혹은 복합적 매력에 일조한다.


경계를 허무는 모습은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밝히는 대목에서도 읽힌다. 티모시 살라메는 자신을 셋째는 연기자, 둘째는 예술가, 첫째는 팬이라고 말한다. 팬을 첫째로 둔 것에서는 영화 등의 작품과 연기를 얼마나 좋아서 하는지가 보인다. 연기자라는 협의의 직업보다 예술가라는 광의의 개념을 우선에 놓는 것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존중과 자존감이 보인다. 자기가 선 자리가 연기자임을 정확히 알고, 지향하는 바가 예술임을 정확히 아는데 그 일이 즐거운 배우, 그런 티모시 살라메의 내일이 기대된다. ‘듄2’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