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이슈] 개그와 비하 사이…‘공개 코미디’에 필요한 변화
입력 2021.12.03 13:47
수정 2021.12.03 10:48
‘개승자’·‘코빅’, ‘비하’ 둘러싸고 연이어 논란
일부 코너들 신선함 인정받으며 관심
시청자들의 높아지는 인권감수성은 방송가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 흔히 쓰였던 단어, 표현들도 지금은 ‘논란’이 되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창작자들의 유연한 자세가 필요해진 것이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를 외치던 코미디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강한 웃음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개그 소재, 내용에도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 여성 또는 노인 등 공격하기 쉬운 약자를 소재로 삼는 경우에는 어김없이 비난이 쏟아지곤 한다.
지상파 유일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KBS2 ‘개그콘서트’의 폐지 역시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의 강세 속 콩트 개그의 매력이 감소한 가운데, 식상한 개그와 비하, 조롱 논란을 반복하다 결국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린 것이다.
이에 약 1년 만에 부활한 ‘개승자’는 코미디 부활의 가능성을 가늠케 할 중요한 프로그램이 되고 있다. 개그맨들 또한 남다른 각오를 보였으며, ‘서바이벌’ 형식을 도입해 느슨하던 분위기에 긴장감을 만들고자 했다. 다만 그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일부 개그맨들의 구시대적 발상이 기대감을 낮췄다.
지난달 첫 방송 이후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는 김준호, 변기수 등 개그맨들이 코미디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이 과정에서 김준호가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진 이유로 ‘심의 기준’을 문제 삼아 지적을 받았다. 그는 “KBS가 유독 (심의 기준이) 더 빡빡하다”며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은 개그를 다 비하로 본다”고 토로했고, 변기수가 “저희에게 조금만 자유를 주시면 좋겠다. 오나미 씨한테 직설적으로 1차원적인 개그를 해야 하는데 하면 난리가 난다”고 말을 보탰다. 영상에는 일차원적인 개그를 원하는 그들이야말로 ‘아직도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비판들이 이어졌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잠시 멈췄던 방청객 초대를 다시 시작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린 tvN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는 방청객을 향해 외모 비하 개그를 선보여 빈축을 샀다. 지난달 방송된 ‘두분사망토론’ 코너에서 박영진이 자신의 여자친구가 예쁘다는 한 남성 관객에게 “그건 네 생각이고”라고 받아쳤고, 만류하는 이상준에게도 “네 얼굴 놀리면 벌 받는 게 아니라 벌 받은 얼굴이라 놀리는 것”이라고 했다.
야심 차게 나선 개그맨들조차도 공개 코미디가 지속돼야 할 이유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다행인 점은 ‘개승자’의 서바이벌 방식이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구시대적 개그를 선보인 이들은 탈락이 되고, 남은 팀들 중 두각을 드러내는 팀들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이 어떤 코미디를 원하고 있는지가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회차에서 방송된 1라운드에서는 다른 팀들에 비해 주목도가 덜했던 팀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김원효 팀은 ‘압수수색’ 코너에서 검사에 대한 낮은 신뢰도를 반영한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풍자를 보여줘 주목을 받았으며, 신인들로 구성된 신인팀은 코로나19 시대에 일상화된 비대면 화상회의를 소재로 삼은 ‘회의 줌 하자’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이들은 화상 회의에 익숙하지 않은 상사와 쫓기는 상황에서도 회의에 접속하려는 사원의 모습을 담으며 참신하면서도 공감 가는 웃음을 유발했다. 이 외에도 이승윤 팀이 준비한 ‘신비한 알고리즘의 세계’ 또한 유튜브 알고리즘의 단골 소재들을 코너 속에 재치 있게 녹여내며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시대상을 적절하게 녹여내고, 짜임새 있는 전개를 통해 공감이 뒷받침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관객들과의 즉각적인 ‘소통’이 매력인 공개 코미디의 의미를 보여주는 길이 아닐까. 시대에 발을 맞추기 위한 개그맨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