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윤재근 감독 “연출? 배우들 잘했다는 게 제일 좋은 칭찬”
입력 2021.11.24 15:21
수정 2021.11.24 14:21
영화 ‘유체이탈자’(감독 윤재근,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사람엔터테인먼트,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의 장점은 크게 3가지다. 3개월 이상 액션스쿨에서 훈련을 받은 배우들이 촬영 직전까지 숨 쉬듯 합을 맞추며 노력한 결과 타격감 넘치는 액션이 완성된 것이 으뜸이다.
둘째는 더 이상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허용할 수 없을 만큼 배우 윤계상이 온전히 원톱 주연으로 자리매김하고, 박용우가 연기 공백을 무색하게 하는 빌런(악당)으로 복귀하고, 깊은 눈빛이 잘 활용되고 표현되어 임지연이 스크린에 안착하고, 개성 넘치는 조연이었던 박지환이 어조와 표정의 톤과 강도를 변화시켜 순조로이 주연으로 데뷔한 것. 윤계상이 연기한 강이안의 유체이탈 과정을 통해 몸을 나누는 배우들 유승목, 이성욱, 홍기준, 서현우, 이운산이 윤계상과 쌍방향 빙의한 듯 서로를 묻혀낸 연기를 선보인다는 것.
즉, 배우들이 ‘한 팀’이 되어 액션도 감정연기도 물 흐르듯 합을 맞춰 연기한 결과 한 명 한 명의 배우들이 돋보였다는 게 ‘유체이탈자’의 가장 큰 미덕이다.
셋째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 바탕, 윤재근 감독의 유연한 연출 태도다. 윤재근 감독은 23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배우들 칭찬해 주시는 게 영화에 대한 호평이라고 생각한다. 감독, 연출 얘기는 없어도 좋다”면서 “누구든지 주연상, 조연상 받으면, 배우들이 상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그게 감독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현장의 주인 자리를 배우들에게 내주고, 끊임없이 영화에 관해 대화하고 배우의 고민을 함께 나누기는 하되 마지막 표현은 배우에게 맡긴다는 것, 말처럼 쉽지 않다. 감독 윤재근은 그것을 실행했다.
다음은 윤재근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보통은 축약해 정리하는데, 누수 없이 전달하고픈 마음에 최대한 윤 감독의 말을 살렸다.
1.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언급하신, 관객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주제 의식은 무엇인가요?
“내용을 보면 주인공이 자신을 잃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유체이탈자’예요. 자신을 찾는다는 게 뭘까. 주인공이 자신의 몸, 육체를 찾고 기억을 찾고 그래도 끝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몸속에 있는 이안을 느낀 진아(임지연 분)가 ‘이안 씨~’ 불러 줄 때 나를 찾는 과정이 끝나는 게 아닐까요. 나란 무엇일까의 문제, SF프에서 많이 다뤄지는 주제인데. 저는 김춘수의 시 ‘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어요. ‘네가 나를 불러 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나를 불러 주는 호명이 나를 나이게 하는 거죠. 물론 장르영화니까 전적으로 드러내 강요하지 않았어요, 관객분들께서 발견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2. 두 명의 강이안, 장면들의 합이 딱딱 맞습니다. 설사 동일 시퀀스를 두 번 찍어 편집한 것이라 해도 배우의 액션과 연기가 미세하게라도 다른데 어떻게 합을 맞췄나요. 촬영할 때부터 편집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장면의 합을 맞춘 비법과 고충이 궁금합니다.
“그거는 배우들이 촬영하기 몇 달 전부터 액션교실을 빌려서 수개월 간 연습을 많이 한 결과입니다. 또, 윤계상이 어떤 표정, 어떤 몸짓을 하는지 보고 이안의 영혼이 들어간 배우들이 맞춰 연기를 했고 반대로 윤계상 배우도 내 영혼이 들어간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을 관찰해서 표현했고요. 예를 들어 윤계상 배우가 다른 배우에게 ‘이때 너는 어떤 마음일 것 같아?’라고 물으면 그 배우가 표정을 보여주는 거죠, 그 반대로도 하고요. 서로를 보고, 연구하고, 교감하며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덕분에 유 대리는 다리를 절고, 이 부장은 허리가 굽은 것에 윤계상이 맞춰 가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배우들이 윤계상의 특징적 표현에 맞춰 가기도 하고, 서로 소통이 잘된 영화입니다. 100%, 모든 배우들이 어찌 보면 배우의 특성일 수 있는 ‘나를 돋보이게 하는 걸’ 하지 않고 상대 배우에게 맞춰 준 현장이었습니다, 정말 100%로요.”
“말씀하신 대로 윤계상 찍고 다른 배우 찍고 이렇게 진행이 됐는데. 윤계상이 조금 보이고 다른 배우 많이 보이게 편집할 수도 있는데, 그럼 스토리 전달이 잘 안 되고 관객분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어서 윤계상 배우가 많이 보이게 편집했어요.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 상업영화인 만큼 주연배우가 많이 등장하게 한 측면도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를 현실에 투영했을 때 그대로, 리얼 그대로 유체이탈해 영혼이 들어간 그 사람이 내내 이안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기도 했어요. 그렇게 가도 매력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는데, 어렵거나 난해한 영화이고싶지는 않았던 저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배우들이 좀 더 많이 나오는 버전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정말 전부 다 잘하셨고, 편집될 것임에도 제 몫을 다해 연기해 주셨거든요. 영화가 잘돼야 논의해 볼 수 있는 일이겠지만요. ”
3. 윤계상과 박용우의 화장실 거울 장면. 거울 없이 마주 선 걸로 보였습니다. 맞다면, 어떠한 디지털 기술보다 아날로그 아이디어가 낫다는 일례가 될 듯한데. 현장 상황을 얘기해 주세요.
“그 장면에서는 CG 들어간 게 없고, 세트를 그렇게 꾸며서 서로 마주 보며 촬영했어요. 마치 거울 속 나를 서로 보는 느낌으로, 상대의 고개가 돌아가고 눈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연기한 거죠. 물론 촬영 전에 이 또한 두 배우가 연습을 많이 했고요.”
4. (배우들이 서로 교감한 뒤 촬영해선지) 실제로 윤계상 배우가 타인을 연기할 때 표정이나 분위기를 모사한 듯한 느낌이 있고, 해서 ‘몸과 다른’ 영혼이 더 실감 났던 것 같은데. 감독님 디렉팅인가요?
“어찌 보면 이 영화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고 관건인데. 관객들이 계속해서 몸이 변하는 과정을 어떻게 따라가느냐가 가장 고민거리였어요. 그래서, 원칙을 정해놓은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유승목 등 다른 배우들과의 협연에서) 거울 볼 때 윤계상이 보는 장면 찍고, 한 번 더 반대 버전 거울 속 모습을 찍자. 촬영 분량 전체는 아니지만 80%는 두 번씩을 다 찍고 커트를 확보해 뒀어요. 지금 누구한테 들어가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 보여 줘야 하고, 그렇다고 그게 억지로 시간과 커트를 할애해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영화 템포에 따라 흘러가면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요. 너무 복잡하지도 과하지도 않아야 했고요. 편집하면서 이렇게 갔다가 저렇게 갔다가, 여러 방법을 시도하며 관객이 이해하기 좋게 끊어지지 않게 편집하는 데 힘을 썼습니다. 영화적 욕심과 관객의 이해, 최적의 접점을 찾은 것이 현재의 버전입니다.”
5. 윤계상은 어떤 배우인가요. 어떤 미덕을 크게 보고 캐스팅하셨나요. 실제로 작업해 본 지금 달라진 평가가 있을까요.
“저는 사실은 윤계상 배우에게 크게 관심 있거나 팬은 아니었어요. 다만 윤 배우에게 가지고 있던 생각은 반듯한 사람이다, 잘생긴 성인 남자랄까 어른 남자의 기본형이다. 외계인이 어른 남자를 그린다면 이 얼굴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 지점이 우리 영화에 맞다고 판단했어요. 영화에 강이안이 처음 등장하면 악역인지 선한 사람인지, 싸움 잘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느끼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윤 배우에게 출연을 제안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는 굉장히 깜짝 놀랐어요. 먼저 인격적으로 놀랐어요. 아이돌이었잖아요, 오래 가수를 한 분들에게서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예전부터 스타’라는 의식이 없더라고요. 인터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훌륭한 삶이라는 느낌을 정말로 받았어요. 같이 작업하는 영화인임을 떠나서도 인간으로서 겸손하고 배려심 많고, 제가 나이가 몇 살 많은데도 배울게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쟁심을 느낄 정도로요(웃음).”
“배우로서도 윤계상보다 더 열심히, 치열하게 하는 배우는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감독이 배우에게 격려하고 푸시(push, 압박)하고 열심히 하자 하기 마련인데, 제가 말려야 했어요. ‘그만해, 된 것 같아, 다쳐’ 하는데도 ‘아니다, 내가 한 번 더 하겠다’고 해서 힘들 정도였어요.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선입견이 있었다면 반성을 할 만큼 좋은 분입니다.”
6. 박용우 배우는 빌런을 마음에 품고 연기했다고 하는데 중독 사실이 드러난 후의 급변에 어울리는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심신 상태가 정상은 아닌 걸로 보이길 바라셨나요, 아니면 센 캐릭터의 상사로 보이길 바라셨나요?
“박 실장의 기본 설정은 어디서 힌트를 얻었냐면 마약을 한다고 해서 다 폐인이 아니고 루저가(실패자) 아니다, 월스트리트에 있는 사람들도 마약을 많이 한다고 하던데 그런 정도로 즐기는 사람으로 설정했어요. 자기 생활을 유지하면서 스트레스를 마약으로 이겨내는, 영화 속 사건이 벌어지면서 약의 악영향이 극대화가 되어가는 인물.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절대 악으로 등장해 끝까지 밀고 가기보다 어디서 본 듯한 인물에서 차츰 악역으로 치닫는 변화의 폭을 보여 주자, 싶었죠. 그 변화를 잘 표현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7. 박용우 배우의 연기 공백을 감독님이 잘 메워 주셨다 싶은데. 현장에서 박용우는 어떤 배우였나요.
“박용우, 활동한 지 오래된 배우이고 공백도 있었죠. 저나 다른 스태프도 좀 어려워했던 게 사실이에요. 일단 잘 모르니까요, 한때 스타였고. 현장에서 주변을 어렵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는데 실제로 함께해 보니 굉장히 장난꾸러기예요, 기분이 ‘업’(UP) 되어 있고. 예를 들어 윤계상과 박지환 배우는 자기 연기 해야 하니까 시나리오 읽고 자기들끼리 회의하는 와중에도, 박용우 배우는 계속 장난치고 농담하고 스태프와 수다 떨더라고요. 배우에 따라서는 현장에 오면 촬영할 분량의 감정에 빠져서, 우울한 날이면 처음부터 우울한 모드를 가져오는 배우도 있는데. 박 배우는 장난치다가 슛 들어가면 바로 몰입하고, 컷 하면 바로 빠져나오고, 대단하더라고요. 처음엔 어려워하다가 점차 편해지고 만만해지고(웃음). 유쾌한 캐릭터예요, 촬영이 끝난 지금도 자주 만날 만큼요.”
“그것(유쾌한 캐릭터)도 의외였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연기하기 싫어서 공백 가졌던 게 아니더라 인생사에 본의 아니게 쉬었던 거라 연기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크더라고요. 연기 안에 그 사람의 캐릭터가 보이지요, 연기 내공이랄까 그것이 발전했다고 감히 제가 말하기는 그렇고, 바뀌었어요. 이전과 연기 방식이 바뀐 건 분명해요. 본인도 이전의 연기를 부끄러워하더라고요, ‘이제 바뀌었다, (연기가 뭔지) 알 것 같다’고 얘기하시곤 하는데. 다음이 더 대단할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8. 사실은 한 팀이지만 모두 다른 직업인 것처럼 보이게, 직업을 완전히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게 혹은 다른 직업으로 착각하게 하는 설정입니다. 사건의 비밀을 감추기 위한 설정인데요.
때문에, 대다수 주연급 배우가 실제의 나, 위장한 나, 강이안이 들어왔을 때라는 세 가지 상태를 연기해야 했습니다. 어떤 디렉팅을 주셨는지, 어떤 배우가 가장 디테일을 잘 살렸다고 보시나요.
“강이안이 들어간 인물을 다양하게 하고 싶었던 거, 맞죠. 두 인물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모습으로 보였으면, 궁금증 같은 거 안 생기고 처음부터 딱 알게. 동시에 뻔하지 않게, 누군지 예상 못 하게 하고 싶었어요. 윤계상 배우가 연기하기 까다로웠을 거예요. 여러 몸에 들어간 강이안이 동일한 패턴의 사람이 아니게 보이길 바랐어요, 택배 회사 사람 같기도 하고 몸 아파 누워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강이안 영혼이 들어간 배우들도 마찬가지였고요(택배 회사 사람 같기도 하고 강이안 같기도 하고 원래 신분의 사람이기도 하고). 말씀드린 것처럼 제 디렉팅보다는 배우들끼리 연습 많이 한 결과예요. 윤계상 배우가 이성욱 배우와 앉아서 ‘너 같으면 어떤 마음, 어떤 표정일 것 같냐’ 서로 말하고.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배우들과 윤 계상 배우가 얘기를 나누더라고요, 어떤 심리상태, 어떤 버릇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9. 개인적으로 박지환 배우의 연기 톤이 좋았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이고, 이야기를 연결하는 중요 역할이면서도 이 역이 조연일 때와 주연급일 때의 연기 톤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관객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지배적 인상이 영화에 누가 될 수 있음을 알고 까불대는 모습을 지웠습니다. 연기뿐 아니라 시사회 후 간담회에서의 발언 톤도 조절이 보였고요. 박지환 배우의 순조로운 주연 데뷔에 감독님이 큰 힘을 보태셨는데. 노숙자 왕초 같은 느낌의 역을 두고 배우와 어떠한 얘기를 나누셨나요.
“사실 노숙자 역할이 어떻게 보면 뻔한 역할일 수 있잖아요.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 기능적으로 쓰일 수 있는 인물이죠. 자칫하면 기능적으로 보이고, 공식처럼 진지한 영화에 웃음 포인트로 배치한 걸로 비출 수 있는데 최대한 그렇게 보이면 안 되는 역이죠. 박지환 배우도 같은 고민을 했어요. 영화에 들어와서 기능적으로 쓰이거나 뻔한 역할 하고 빠지는 건 아닐까, 고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깠었어요(출연 거절). 박지환이 제격이다 싶어서 기분 나빴지만 한 번 더 만나서 얘기했죠. 쓰고 버리는 역할로 쓸 생각이 없다, 노숙자 자체의 매력이 있게 만들거다, 설득했어요. 제가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박지환 배우의 매력을 보여 주면 자연스레 ‘너무 소모적으로 쓰일 거’라는 걱정은 없을 거라고 믿었기에 재차 청했던 거죠.”
“박지환 배우의 지난 작품을 보면 뻔한 역할도 뻔하지 않게 하는 재능이 있더라고요. 시나리오상에서는 어쩌면 뻔하고 기능적 캐릭터였을 건데 박 배우가 하니 영화에서 도드라져 보였듯이 이 영화에서도 캐릭터에 살아있는 느낌을 줄 것이다, 믿고 작업했습니다. 박 배우 역시 그 부분을 경계하며 작업하더라고요, 뻔하고 맨날 봤던 캐릭턴데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박지환 배우 보면 모든 게 애드리브로 보여 주는 느낌인데, 그렇지 않아요. 되게 계획한 대로, 준비한 대로, 감독과 얘기한 대로, 디렉션대로 연기하는 배우예요. 그 준비된 것을 애드리브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배우인 거죠, 그 점이 존경스럽습니다. 너무 멋대로 하면 어쩌지 걱정할 수 있는데, 그 누구보다 디렉션 잘 받아주고 디렉션대로 해주고, 그런데 그걸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서 애드리브처럼 연기하는 그 지점이 놀라워요. 많은 걸 배웠고 감사한 배우입니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다, 이런 얘기 듣는 게 제일 좋아요. 배우들이 잘 보였다는 평이 ‘연출이 어떻다’보다 좋아요. 상 준다면 배우상(주연상), 조연상 받으면 그게 제일 좋겠다, 그게 영화가 칭찬을 받는 거니까요.”
10. 임지연 배우의 포지션이 중층적입니다. 노숙자는 강이안과 개인적으로 연결돼 있고, 이 부장 이하 6인은 조직적으로 연결돼 있는데. 문진아는 두 가지가 중첩돼 있고, 해서 영화 전개상 분절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눈빛이 좋던데, 그런 심리 연기를 어떻게 디렉팅하셨고, 임지연 배우는 어느 정도 표현해냈다고 생각하시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문)진아라는 역할은 영화상에 많이 보이지 않지만 영화가 따라가 주지 않고 대사도 많지 않지만, 그러함에도 존재감은 있어야 하고 어느 순간엔 이안과의 관계가 어렴풋이 드러나야 해요. 그래서 이 인물에겐 눈빛과 표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임지연 배우의 눈빛이 좋다고 생각했고, (문진아 역을) 해 주면 좋겠다 싶었지요. 배우에게 얘기한 부분도 대사를 말하거나 상황을 만들어 연기하는 것보다 표정이나 눈빛으로 연기해 보자 얘기했고요. 배우 자신도 표정과 눈빛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임지연 배우 캐스팅이) 주효했다고 생각하는데, 임지연 배우는 느낌이 달라요, 연기 톤도 다르고요. 보통 A라는 방식으로 연기를 공부하고 표현한다면, 임지연은 B라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돋보이는 배우죠. 색깔과 결이 다른 배우예요. 저는 B를 끄집어내려 노력했어요, 눈빛도 몸짓도요.”
“본인도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일테면 액션 찍을 때요. 여리여리한 게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인데. 액션 장면 찍을 때 1에서 10단계가 있다면 5정도로 하면 되겠지 했나 보요, 그런데 현장 와 보니 장난이 아닌 거죠. 다른 배우들, 선배들 하는 것 보며 7, 8, 9로 계속 기준을 높이는 게 보였어요. 몸이 약한 친구임에도 고생 많이 했을 거예요, 몸이 아파도 아픈 게 보여지는데도 말도 못 하고 했을 거예요. 영화상에 진아가 힘들어서 숨 내뱉고 한숨 푹푹 쉬고 하는데 그게 진짜예요, 꾸민 게 아니라(웃음). 본인도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 영화라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11. 유체이탈이 12시간마다 일어나는 이유는 약의 특성을 통해 설명돼 있습니다. 그런데 유체이탈 과정에 대해선 없습니다. 확인된 심령현상이 아니기도 하고, 익숙한 좀비라 해도 작품마다 발생과정이 달라 설명되곤 합니다. 유체이탈의 간격뿐 아니라 발생 메커니즘 자체에 대한 언급이 짧게라도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추측으로 ‘강이안이 지금 이 몸 저 몸 떠다니는 거 아냐’ 식이 아니라, 제목이기도 한 만큼 이 작품이 설정한 유체이탈 방식이 설명됐으면 좋았겠다는 의견입니다. 영화의 내적 타당도 측면에서의 아쉬움인데, 굳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신 걸까요.
“시나리오 쓰면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영화에 설명된 12시간 간격의 발생과정도 현실적으론 사실 말이 안 되죠.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는 상황까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던 게 있어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드러나면 좋겠지만, 제가 생각했던 거는 이렇습니다. 지하실에 이안과 진아와 유 대리 등이 잡혀 있는 상황, 약까지 강제 투입돼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죽을 위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진아를 빨리 구해야 한다는 마음에 ‘초인적 힘으로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서라도’, 그런 기적이 가능하지 않을까. 영화 안에서 충분히 표현이 되게 할 것인가, 관객이 과정을 찾는 재미를 남겨둘 것인가, 이 또한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명하느라 시간 할애하는 것이 옳은가, 그 시간에 다른 걸 해서 극적 재미를 키우는 게 옳은 것인가. 설명하는 게 구구절절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어떤 관객은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다 싶기도 했고요. 일테면 영혼이 빠져나왔다 들어가는 장면, 취향이랄까 제 개인적 관점에 맞지 않았고 영화의 ‘톤 앤 매너’(Tone&Manner,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의 방법론)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헸습니다.”
사실 17개의 질문을 준비했고, 10번까지는 순서대로 하다가 인터뷰 종료 시간이 되어 급하게 하나를 골라 물은 거였다. 영화 ‘유체이탈자’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도 있고, 윤재근 감독의 연출론이나 지향성과 같은 일반론도 나누고 싶었는데, 못다 한 질문은 다음을 기약했다. 분명 차기작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게 ‘유체이탈자’가 완성됐기 때문인데, 그 확실한 실현은 관객이 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해 주시는가에 달렸다. 바로 오늘, 24일부터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