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방송 뷰] 안방극장 장악한 ‘퓨전 사극’의 명과 암
입력 2021.11.21 09:25
수정 2021.11.23 14:48
퓨전 사극 ‘연모’, 일부 무리한 설정 지적
정통 사극 ‘태종 이방원’에 쏠리는 기대감
최근 종영한 SBS ‘홍천기’를 비롯해 KBS2 ‘연모’, tvN ‘어사와 조이’까지. 사극이 안방극장을 장악 중이다. 역사 왜곡, 동북공정 논란으로 잠시 주춤하던 사극이 ‘퓨전’의 옷을 입고 다시금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해 tvN 드라마 ‘철인왕후’와 지난 3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등이 연달아 역사왜곡과 동북공정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두 프로그램 모두 퓨전 사극을 표방하고는 있었지만 일부 인물과 배경은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결정적인 사실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철인왕후’는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 취급하고, 종묘제례악을 술자리 게임 노래로 비하했다며 지적을 받았다. ‘조선구마사’는 태조 이성계의 환시를 본 태종이 백성들을 학살하는 장면과 충녕대군이 기생집에서 사제 일행에게 중국의 전통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 등을 담았고, 결국 비난 끝에 방송 2회 만에 폐지 수순을 밟았다. 제작진을 비롯해 배우들까지 사과를 했었다.
이후 방송가는 배경과 인물, 지명 등을 가상으로 설정하는 퓨전 사극으로 논란을 피하고 있다. SBS가 ‘조선구마사’ 종영 이후 처음 선보이는 사극으로 주목을 받은 ‘홍천기’의 장태유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완전히 새로운 판타지 세계”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원작 소설과 달리, 드라마 배경을 조선이 아닌 가상의 ‘단 왕조’로 설정했다”라고 강조했었다.
결과적으로 ‘홍천기’는 9% 내외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논란 없는 사극으로 마무리를 했다. 신령한 힘을 가진 여화공 홍천기(김유정 분)와 하늘의 별자리를 읽는 붉은 눈의 남자 하람(안효섭 분)의 로맨스를 다룬 이 드라마는 마왕에 맞서 사랑하는 연인과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 등 로맨스, 판타지, 정치극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현재 쌍둥이로 태어나 여아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졌던 아이가 남장을 통해 세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궁중 로맨스 드라마 ‘연모’가 KBS에서 방송되고 있으며, 엉겁결에 어사가 돼버린 도령과 행복을 찾아 돌진하는 조선시대 기별부인의 수사기를 다룬 tvN ‘어사와 조이’도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허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은 실존 인물인 정조 이산과 의빈 성씨의 이야기를 담고는 있지만, 역사 이야기를 진지하게 파고들기보다는 그들의 멜로에 집중하며 젊은층의 관심을 유발 중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최근 사극들의 분위기에 대해 “퓨전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고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이점도 있지만,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지양하려는 분위기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대중들의 니즈를 맞추기 위한 한 방편”이라며 “물론 바탕은 사극이다 보니 여전히 제작비는 높겠지만, 해외 판매로 돌리는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퓨전 사극으로 사극 제작 위축 분위기를 타개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철저한 고증을 거쳐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정통 사극의 무게감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아쉬운 지점이다.
특히 ‘연모’는 퓨전 사극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설정이 지나치다는 일부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비(이일화 분)에게 대놓고 소리를 지르고 협박을 하는 좌의정 한기재(윤제문 분)의 존재는 물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사신이라는 이유로 왕세자 앞에서 칼부림을 벌이고도 무사한 명나라 사신 태감(박기웅 분)의 일화 등 고증이 전혀 되지 않은 설정들이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이에 5년 만에 부활한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의 방송에 기대감이 쏠리고 있다.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던 여말선초(麗末鮮初) 시기, 조선의 건국에 앞장섰던 리더 이방원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드라마로, 12월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앞서 퓨전 사극 열풍 이유에 대해 언급한 관계자는 “퓨전 사극과 정통 사극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역사적 사실을 무게감 있게 다루는 정통 사극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TV가 해줘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라며 “최근에는 시청자들은 정통 사극이 다루는 이야기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