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보복운전과 분노사회의 그림자
입력 2021.10.07 15:16
수정 2021.10.07 15:16
영화 ‘언힌지드’
최근 뉴스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20대 남성이 경비실에 자신이 찾는 택배가 없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70대의 경비원을 마구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또 다른 사건은 젊은 남성이 자신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20여 분간 노인을 폭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CCTV를 확인한 결과 폭행할 만한 근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른바 무동기 폭행의 전형이다. 묻지마 폭행이나 보복운전은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타인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분노조절장애의 일종이다. 이러한 장애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정신적인 고통이나 충격을 받아 생긴 스트레스로 코로나도 한몫을 담당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언힌지드’가 최근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분노사회에서 일어나는 보복운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등교가 늦게 된 아들을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는 레이첼(카렌 피스토리우스 분)은 꽉 막힌 도로에서 가지 않고 멈춰있는 자동차를 향해 경적을 울린다. 레이첼의 행동에 화가 난 낯선 남성 운전자(러셀 크로우 분)는 사과를 요구하지만 레이첼은 이를 무시한다. 그러자, 분노가 폭발한 남자는 레이첼의 가족과 친지들을 위협하게 된다.
영화는 현대 사회구성원들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불안정하여 혼미스러운, 정신이상이 되게 만드는’을 뜻하는 영화 제목 ‘언힌지드’(Unhinged)와 같이 현대인들의 심리상태는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불안정해져 있다.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레이첼은 월요일 아침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중요한 고객이 자신을 해고했고 이혼한 남편은 아들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게다가 교통체증으로 아들은 지각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의 자동차가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가지 않자 경적을 울리고 상대방에게 사과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각종 스트레스로 불안정해져 있는 현대인의 심리를 영화는 지적하고 있다.
분노사회를 우회적으로 그리고 있다. 열심히 일했지만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각종 부패로 사회는 공정하지도 않다. 불만을 표시할 특정한 대상을 찾기도 어렵다. 운 나쁘게 걸리는 불특정대상이나 특정 직군에 속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다. 남자는 젊음을 바쳐 다니던 회사에서 연금 혜택을 받기 전에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아내와의 이혼으로 가족관계도 붕괴되었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남자는 자기가 속한 사회에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다. 운전 중 경적을 울린 레이첼에게 과도하게 분노를 표출하고 레이첼 친구인 이혼전문 변호사 앤디를 만나 자신도 이혼 때문에 몸도 마음도 돈도 그리고 인생 전부를 잃었다고 말하며 살해한다. 영화는 성명 미상의 남자를 통해 분노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하고 있다.
가족관계 붕괴의 위험성도 경고한다. 비록 현대인이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되더라도 가족은 분노를 억제케 하는 마지막 보루다. 이런 가족관계가 붕괴될 때 분노는 조절되기 어려우며 묻지마 폭행이나 충동적 범죄로 폭발할 수 있다. 레이첼이나 가해자인 남자 모두 이혼상태이며 가족관계에 문제가 있다. 가족관계가 원활했다면 영화 속 남자도 분노를 억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인 가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지금 영화는 가족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면서 공정사회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열심히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우리사회는 분노사회로 가고 있다. 영화 ‘언힌지드’는 보복운전을 통해 분노사회의 그림자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