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현대차 캐스퍼, '뻔'한 경차? '펀'한 SUV!
입력 2021.09.29 11:30
수정 2021.09.29 13:16
깜찍하면서도 다부진 외관, 심플하고 다재다능한 실내공간
1.0 터보 모델 가속감 기대 이상…단단한 하체로 '펀카' 역할 충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하차감(차에서 내리며 느끼는 주위 시선)’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경차 시장의 확장이 한계를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 실용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모델로는 하차감이 바닥권인 경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차는 지난 2002년 아토스 단종 이후 19년 만에 경차 시장에 재진입하면서 ‘그냥 경차’가 아닌 ‘경형 SUV’ 캐스퍼를 택했다. 과연 캐스퍼는 내릴 때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한 애마가 될 수 있을까.
지난 27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마련된 쇼룸 ‘캐스퍼 스튜디오’에서 캐스퍼를 시승해봤다. 시승 코스는 경부고속도로로 평택제천고속도로, 지방도 등이 포함된 55.8km 구간이었다.
그동안 생애 첫 차로 경차를 고려하지 않던 소비자들을 캐스퍼로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이 있다면 그건 디자인일 것이다.
캐스퍼는 확실히 튀는 외모를 지녔다. 현대차는 ‘당당함과 강인함’을 강조하지만, 그보다는 ‘깜찍함’에 가깝다.
물론, SUV답게 기존 경차들보다 높은 지상고와 날카로운 눈매(헤드램프), 크게 벌린 입(라디에이터 그릴)으로 강인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한 것은 느껴지지만 아무래도 사이즈의 한계는 극복할 수 없는지라 마초적 이미지보다는 귀여움으로 어필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마치 털이 몽실몽실한 소형견이 주인을 지켜주겠답시고 낯선 이를 향해 왈왈대는 모습처럼 미소를 자아낸다.
어쨌건 이 차의 수요층이 팰리세이드나 모하비 수준의 터프함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깜찍함은 결코 약점이 아니다.
‘당당함과 강인함’까진 아니더라도 다부져 보이는 디자인 요소들도 있다. 경차 사이즈 제한선(전장 3595mm, 전폭 1595mm) 내에서도 일부 공간을 디자인으로 할애해 앞뒤 휠 하우스를 불룩하게 돌출시켜 나름 근육질 몸매를 만들었고, 앞뒤 도어 사이(B필러)를 이음새 없이 연결해 시각적으로 더 튼튼해 보인다.
지붕 위에는 브리지타입 루프랙을 설치해 언제든 무거운 짐을 얹고 달릴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캐스퍼 스튜디오에 전시된 루프박스를 얹은 캐스퍼를 보니 제법 안정감 있어 보인다.
적어도 기존 경차들이 보여줬던, 어울리지도 않는 루프박스를 아슬아슬하게 얹고 다니는 안쓰러운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캐스퍼 루프랙에는 75kg까지 적재가 가능하다고 한다.
실내 구성은 매우 심플하다. 공조장치와 오디오, 기어봉과 주행모드 변환 버튼, 심지어 온열시트와 통풍시트 버튼까지 모두 앞으로 경사지게 돌출된 센터페시아에 몰아놓았고, 나머지 부분은 깔끔하게 비워놓아 시각적으로 한결 넓어 보인다.
공간의 한계상 컵홀더 두 개가 전부인 센터콘솔은 아예 운전석에 붙여 놓았다. 운전석을 밀고 당기면 센터콘솔도 같이 움직인다. 그 위에 접이식 암레스트가 위치한다. 좁은 공간에 별도의 센터콘솔을 꼬깃꼬깃 집어넣느니 이런 방식이 오히려 심플해 보인다.
홀로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고, 손가방 등 이런저런 짐이 많은 운전자라면 동승석을 앞으로 젖혀 시트백을 짐을 놓아둘 테이블로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예 그런 용도로 쓰도록 동승석을 접으면 수평이 잘 맞춰지게 만들어 놓았다. 이 ‘테이블’에서 식사를 해도 된단다.
뒷좌석은 차체 크기의 한계상 넉넉하진 않다. 다만 모듈식 시트로 다양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 놨다. 바닥 레일로 앞뒤로 움직일 수도 있고, 리클라이닝도 가능하다.
물론 성인 4명이 탄 채로 2열 뒤쪽에 짐까지 실어야 한다면 꼼짝 없이 불편한 자세로 탑승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뒷좌석 승객도 제법 편안한 자세로 탑승할 수 있다.
좌석 4개를 모두 평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캐스퍼가 내세우는 장점이다. 운전석의 경우 스티어링 휠에 부딪치지 않고 앞으로 접으려면 헤드레스트를 뽑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것만 감수하면 두 명이 누울 차박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달리기 성능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고배기량 차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시승차는 1.0 가솔린 터보 옵션을 장착한 모델로, 최고출력 100마력, 최대토크는 17.5kgf‧m를 낸다. 무게 1t 언저리의 차체를 굴리기에는 충분한 힘이다. 기존 SUV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날렵한 맛이 있다.
드라이브 모드를 노멀에서 스포트로 바꾸면 가속반응이 확연히 좋아진다. 정지상태에서의 순발력도 뛰어나고, 고속도로에서 앞차를 추월하는 것도 가뿐하다. ‘경차에 추월당하면 굴욕’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다.
회사측은 캐스퍼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고강성 경량 차체 구조’를 언급했는데, 차체 강성은 안전성 외에 퍼포먼스에도 큰 영향을 준다. 거추장스런 꽁무니가 없는 간결한 차체에 강성까지 뒷받침해주니 제대로 된 ‘펀카(Fun car)’ 느낌이 난다.
시승 일정상 테스트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레저용 차량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험로주행모드(스노우, 머드, 샌드)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경차로서의 한계도 있다. 소음진동(MVH)에 많은 비용을 투입할 수 없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노면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에선 통통 튀는 느낌이고, 신호대기 등으로 공회전을 할 때도 엔진 진동이 다소 거슬린다.
시승을 마친 후 연비는 9.3km/ℓ가 나왔다. 1.0 가솔린 터보 모델의 복합연비인 12.8km/ℓ에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저배기량 차일수록 무리한 움직임을 요구하면 연료 소모가 많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 같다.
하차감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합격점이다. 시승 도중 볼일이 있어 동탄의 한 음식점 주차장에 멈춰섰더니 금세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이것저것 물어본다. 주로 젊은층이 관심이 많았다.
물론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신차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정도 반영됐을 테니 캐스퍼의 진정한 하차감은 정식 출시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캐스퍼 판매가격은 스마트 1385만원, 모던 1590만원, 인스퍼레이션이 1870만원이며, 1.0 가솔린 터보 엔진과 차별화된 디자인 요소가 적용되는 ‘캐스터 액티브’를 선택하면 하위 두 개 트림은 95만원, 최상위 트림은 90만원이 추가된다.
시승 모델은 인스퍼레이션 트림(1870만원)에 터보엔진 및 외장 패키지가 포함된 캐스퍼액티브II(90만원), 선루프(40만원), 동승석시트 백보드와 러기지볼팅이 조합된 스토리지(7만원) 등을 추가해 2007만원짜리 구성이다.
▲타깃 :
- 경차같이 생긴 경차는 싫다! 뚱뚱한 SUV도 싫다!
- 옆좌석, 뒷좌석 다 필요 없어. 나만 편하면 돼.
▲주의할 점 :
- 컵홀더에 놓고 마실 커피는 작은 사이즈로 주문할 것. 컵 높이가 너무 높으면 팔걸이를 젖힌 채로 운전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