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동거생활 ②] "가족인데, 가족이 아니라고 합니다"
입력 2021.09.27 05:50
수정 2021.09.26 17:25
부부로서의 삶은 법률혼과 다르지 않지만…법과 제도권 밖에서 불합리하게 살아가
전문가 "자녀가 있는 동거 부부 큰 어려움…육아휴직·출산휴가 없고 사회적 낙인까지"
비혼동거인 인정은 하지만…법의 테두리·제도권 혜택으로 품는 데는 사회적 거부감 여전히 강해
동거 ⓒ게티이미지뱅크
비혼동거인은 경제적으로 상호 부양하고 서로를 돌본다는 점에서 법률혼을 한 부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가족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고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정상적인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를 이용할 수도 없고, 자녀가 있어도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같은 당연한 권리조차 요구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비혼동거인의 수가 늘고 있지만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정상적인 가족 형태로 보지 않은 사회적 인식이 여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혼동거인들은 법률혼을 한 부부와 동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로 배우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 뿐만 아니라 동거인의 부모상을 비롯한 경조사 휴가 등 일반적으로 가족의 범위에서 제공되는 당연한 혜택들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녀가 있는 동거 부부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비혼동거인들은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쓰기 어렵고, 자녀들에겐 사회적 낙인 또는 편견이 발생해 성장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혼동거인은 연령층에 따라 느끼는 어려움도 달랐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젊은 연령층의 경우 주거지원 등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동거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부모님과 주변인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어려움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이어 "중년 이상의 연령층은 병원, 수술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 보호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불합리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비혼동거인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법적인 우산 밑에 있어야만 정상적인 가족으로 보고 대우해주는 사회 인식이 견고하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비혼동거인으로서 가족 형태를 이루고 사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인정해준다 하더라도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수용해 국민건강보험이나 사회보장혜택 등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보수적인 시각과 거부감이 우리 사회에 곳곳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박 박사는 이어"우리나라는 중간 단계 없이 혼인 또는 비혼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기 때문에 비혼동거인이 아이를 갖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제도적 제약때문에 본인의 자율적인 의사가 충분히 관철되지 못한 사례"라고 말했다.
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옛부터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만 정당성을 부여하는 문화가 강해 다른 형태의 가족을 봤을 때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가족의 범위를 확장하고 수정해나가는 노력을 우리 사회 전체가 실질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