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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미혼·판사·부부… 모두 '차별적 법령용어' 입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입력 2021.09.17 04:55
수정 2021.09.16 17:18

한국법제연구원 '법률 속 차별언어 개정을 위한 과제' 보고서…대체 개선용어 제시

"법령용어 여전히 보수적 문화 반영…남녀차별, 귀천 높낮이, 봉건적 관점 내재"

"언어 변화가 사회변화 이끌어…법률 속 차별언어 개선이 사회적 차별 극복 첫걸음"

법률. ⓒ게티이미지뱅크

사회 각계각층이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차별적 용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 법령에도 차별적 의미를 내포한 용어들이 상당수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최근 '법률 속 차별언어 개정을 위한 과제' 보고서를 펴내 법령에서 흔하게 쓰이는 차별적 용어들로 ▲수치심 ▲부부 ▲미혼 ▲청소년 ▲수도권 ▲고용 ▲변호사·판사 등을 지목하고,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개선 용어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수치심'은 원래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단어인 만큼 성범죄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여성에게 부정적·수동적 이미지를 부여할 수도 있어 보다 중립적인 감정 표현인 '성적 불쾌감'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부부(夫婦)'는 상호 간 평등적 관계를 서술한 용어로 보기 어렵고, 봉건적·가부장적 성격이 내재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부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는 남녀의 서열을 내재하지 않고 중립적인 '배우자' 혹은 '짝'이 제시됐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전경.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미혼'의 사전적 개념은 '아직 결혼하지 않음, 또는 그런 사람'으로 혼인을 정상적인 상태로 보고, 혼인하지 않은 상태를 비정상으로 보는 차별적 의식이 반영됐다는 비판이다.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용어로는 '아직'이라는 관점을 배제하고 '혼인하지 않음'이 주관적 의사 표현임을 강조한 '비혼'을 제시했다.


'청소년'은 남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고는 있지만, 인식 상 남성 중심적인 차별적 용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청소년 대신 '젊고 어린 사람'을 통칭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젊은이' 혹은 '젊린이' 등이 있지만, 사회적으로 즉시 수용되기는 어려워 보이는 만큼 중장기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은 사전적으로는 특정 지역의 구분을 위한 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특권적 지역'으로서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고서는 "이 용어는 지역적 관점의 차별성과 내부적 관점의 차별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며 "수도권 명칭을 전면적으로 삭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지만, 규제 지역으로서의 수도권 개념을 대체할 수 있는 용어에는 오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의 사전적 정의는 '삯을 주고 사람을 부림'으로 사업자와 근로자 간의 계약관계를 봉건적 상하관계로 의식하는 차별적 용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따라서 사업자와 근로자가 계약을 통해 평등한 근로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한 '근로계약'으로 개선하는 것이 올바른 개선용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뉴시스

변호사·회계사·공인중개사 등 직업명에서 '사(士)'를 쓰는 것은 특정 직업의 사명감을 높여 부르기 위한 표현이지만, 평등성보다는 계급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슷한 이유로 판사·검사·형사에 쓰이는 `사(事)`도 평등성에 어긋나며, 운전자·사업자·과학자·기자 등에 사용되는 '자(者)'는 본래 남성만을 지칭하는 성차별적 용어라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들은 회계인(회계사), 판단인(판사), 검사인(검사), 수사인(형사), 운전인(운전사) 등 '인(人)'으로 대체해 호칭의 중립성 및 객관성을 바로잡을 수 있다. 다만 변호인(변호사), 기인(기자) 등 다른 용어들과 혼선을 빚거나 어울리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별도의 개선용어를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현철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법령용어는 여전히 보수적 문화를 반영하고, 권위성이 있어 차별적 언어에 대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둔감한 것이 현실"이라며 "법령 속 직업 용어는 수많은 귀천 높낮이를 담고 있고, 가족관계 관련 용어는 여전히 봉건적 가족관계와 상하관계의 관점이 내재돼 있다"고 비판했다.


강 연구위원은 이어 "불필요한 권위적 용어에 대해 현대적인 관계 용어로 적극적으로 전환하고 순우리말 용어를 결합한 신조어의 활용도 추진해야 한다"며 "언어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끌어낸다는 측면에서, 법률 속 차별 언어를 개선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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