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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물 ⑥] "성추행 당했다" 일단 지르고 봐!…무고죄, 이대로 괜찮나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입력 2021.09.18 06:20 수정 2021.09.17 09:47

"남자가 왜 임산부 배려석 앉나"…장애인男 성추행했다며 악의적 허위신고

무고죄 허위사실·고의성 입증 쉽지 않아…실제 법정 형량도 1년 안팎 징역형

법조계 "악의적 의도 입증 못하면 무고죄 인정되지 않아…사람인생 180도 흔드는 중범죄"

"유독 성범죄만 피해자의 진술만을 토대로 유죄 단정…무혐의 입증돼도 무고 처벌말자?"

임산부의 날인 10일 서울 도시철도 7호선 지하철 안에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과 승객이 앉은 임산부 배려석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뉴시스 임산부의 날인 10일 서울 도시철도 7호선 지하철 안에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과 승객이 앉은 임산부 배려석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뉴시스

성추행 피해 사실이 없는 사람이 상대에게 피해를 줄 목적으로 허위 고소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무고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엄단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은 무고죄 입증이 특히 까다롭고 처벌 수위 또한 약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에 따르면 뇌하수체 종양으로 저혈압과 부정맥이 있는 남성 A씨는 지난 4월 서울시 한 지하철에서 일반석에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 이 모습을 본 여성 B씨는 갑자기 A씨 앞으로 다가와 "아이 씨. 여기 아저씨가 앉는 자리 아니다"고 말했다.


B씨는 급기야 A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A씨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카메라 영상녹화 기능을 켜 렌즈를 막고 녹취를 했다. 그럼에도 B씨는 출동한 경찰에 "A씨가 도촬(불법 촬영)까지 하고 있으며, 오른쪽 팔꿈치를 잡아 추행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목격자는 A씨와 B씨 사이에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조사 결과 승강장 폐쇄회로(CC)TV에도 추행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증거가 불충분으로 A씨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또 다른 남성 C씨는 2017년 11월 한 식당에서 여성 D씨 옆을 지나가면서 손으로 D씨의 우측 엉덩이 부위를 움켜잡은 혐의로 징역 6개월,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이수 40시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3년간 취업제한 등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D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있다는 이유로 C씨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C씨의 아내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남편은 죄가 없다. 성적인 문제에 남자가 너무나도 불리하다. 우리 법에 제 신랑이 제발 악용되지 않게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에 올라온 글.ⓒ페이스북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에 올라온 글.ⓒ페이스북

이같은 사연들이 전해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무고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만, 법조계는 피고소인이 무혐의 처분 및 무죄 선고를 받더라도 고소인이 무고죄로 처벌받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무고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신고 내용이 허위사실이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형사처벌을 받게 하려는 '고의성'을 입증해야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실제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무고 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1만219명이지만, 이들 가운데 기소된 건수는 전체의 18%인 1848건에 불과하다.


설령 무고죄가 인정되더라도 실제 법정 형량은 높지 않다. 현행법상 무고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년 안팎의 징역형이 대부분이고 초범인 경우엔 집행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대검은 지난 5월 11일 성폭력 사건 수사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용의자가 무고죄로 맞고소를 했더라도 무고 수사를 진행하지 않도록 하는 '대검찰청 성폭력 수사매뉴얼'을 배포하기도 했다.


검사 출신 임무영 변호사는 "무고죄는 사법정의를 저해하고 피해자에게 부당한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중대한 범죄"라면서도 "법원에서는 다른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형사처벌을 받게 할 정도로 악의적 의도를 입증하지 못하면 무고죄로 인정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독 성범죄만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보다 피해자의 진술만을 토대로 유죄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정작 성폭력 사건이 무혐의로 입증돼도 상대방을 무고로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손혁준 변호사(손혁준 법률사무소)는 "무고죄는 억울하게 성범죄 가해자로 몰린 사람의 인생을 180도로 흔드는 중범죄"라면서도 "완전히 허위사실에 기초해 신고가 들어가지 않은 이상 제3자들이 허위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아 무고죄 처벌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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