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시작하자마자 눈감은 전두환…20분 만에 "가슴 답답하다" 퇴정
입력 2021.08.09 17:56
수정 2021.08.09 18:56
"발포명령 부인하냐" "광주시민에게 사과하지 않겠나" 취재진 질문 '묵묵부답'
사자명예훼손 항소심 3번째 공판 참석…"전직 대통령이셨죠" 묻자 "네"
현장검증 신청 기각…재판부 "40년전 전일빌딩 상황 동일 재현 불가능"
정웅 31사단장 증인신청 기각…"99세 증인이 증언? 신빙성 회의감"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9일 광주지법 항소심 재판에 출석했다.
광주지법 제1형사부(항소부·재판장 김재근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 201호 법정에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전씨에 대한 항소심 3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 '혼돈의 시대'에서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광주지법 근처에는 전씨 출석 전부터 시민단체 회원들과 광주시민이 다수 집결해 '전두환이 헬기사격 지시한 거 다 안다', '학살 원흉 전두환을 처벌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전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전씨는 오후 12시 43분께 광주지법에 도착해 경호 인력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승용차에서 내렸다.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동석한 부인 이순자씨가 뒤를 따랐다. 전씨는 "광주시민과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겠냐" "발포 명령을 부인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이날 재판은 피고인 본인임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으로 시작됐다. 김 부장판사가 직업을 묻자 전씨는 느릿느릿하게 "현재는 직업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무직이고, 전직 대통령이셨죠"라는 판사의 질문에는 "네"라고 짧게 답했다.
주소와 본적을 묻는 질문에는 스스로 답하기 어려운 듯 이 여사가 옆에서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말하기도 했다.
인정신문이 끝나자 전씨는 자리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판 시작 25분 만에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경호원의 부축을 받고 퇴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호흡이 불편하시냐" 물었고, 이 여사는 "식사를 못 하시고 가슴이 답답하신 것 같다"고 대신 말했다. 재판부는 전씨에게 법정 밖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고, 이를 지켜본 한 방청객은 "기가 막힌다!" "**를 하고있다!"고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다 퇴정 조치됐다.
이날 재판부는 전씨측이 신청한 현장검증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40년 전 전일빌딩에서의 상황을 동일한 조건에서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고 군부대에서 해줄 의무도 없다"며 "실익이 없어 채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증인도 일부만 채택하기로 했다. 특히 정웅 당시 31사단장에 대한 증인 신청에 대해 김 판사는 "연세가 99세 되신 분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증언 듣는 게 어느정도 신빙성 부여할 수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장사복 전 전투교육사령부 참모장 등에 대한 증인 신청에 대해서도 "기존의 다른 증인들과 차별성이 없는 것 같다"며 "명령권자 아닌 중간간부가 최고 명령권자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헬기사격) 명령을 내렸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 광주로 출동했던 506항공대 조종사 중 1심에서 불출석한 증인 4명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하기로 했다. 회고록 편집·출판에 관여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증인 신청도 받아들였다. 전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30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전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씨 측은 1심 선고 이후 '사실오인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형량이 가볍다'며 각각 항소했다.
전씨는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2년 3개월간 진행된 1심에서 3차례 법정에 출석했다. 항소심에 이르러서는 2차례 연기된 기일과 2차례 진행된 공판기일에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출석 없이 재판받는 것을 허용한 만큼 제재 규정에 따라 증거 신청 제한 등의 불이익을 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자 이날 법원에 출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