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거래소, 실명계좌 ‘고군분투’ 헛수고 되나…“답 안보인다”
입력 2021.07.28 06:00
수정 2021.07.27 17:04
금융리스크 책임 기준 모호…은행 위험부담↑
금융당국 전향적 태도 변화 필요…줄폐업 우려
고팍스를 비롯한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인증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중이지만 불확실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 2개월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도 은행과 금융당국 모두 신규 실명계좌 인증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대 거래소 외에는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인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의 중소 거래소가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만 받아놓은 상태로 오는 9월 24일 시행 예정인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서 규정하는 가상자산 사업자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특금법 시행 이후에는 4대 거래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가 줄폐업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특금법 신고 요건에는 ISMS 인증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개설 확인 등이 포함된다.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확보 의무의 예외 사유로 '가상자산과 금전의 교환 행위가 없는 가상자산 사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특금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도 중소 거래소들의 실명 계좌 발급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은행들이 금융사고에 대한 부담을 느끼며 선 뜻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 거래소들이 신고 절차를 위해 다방면으로 준비해도 실명계좌 인증이 쉽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실제 4대 거래소 외 실명계좌 발급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거래소로 예상된 고팍스도 지난달 BNK부산은행과의 제휴에 실패했다. BNK부산은행 역시 이익보다 위험부담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소 거래소 관계자는 “실명계좌 인증을 위해 물밑에서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미 대다수의 거래소들이 특금법과 사업자 등록을 위한 준비를 마친 만큼 은행과 금융당국의 빠른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중소거래소들 사이에선 금융당국의 방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상화폐 주무부처로 나섰으면서 명확한 기준은 제시하지 않은 채 모든 검증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는 주장이다. 시장에 혼란만 초래한 채 충분한 여력이 있는 업체들의 기회도 박탈하고 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다른 중소거래소 관계자는 “정부가 그 동안 가상화폐 시장을 방치한 채 내버려두다 이제야 자기들 입맛대로 통제하려 하고 있다”며 “그러면서 구조조정에 대한 피해와 혼란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은 안하무인적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태도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은행들이 섣불리 실명계좌 인증에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라임사태와 같은 금융리스크에 대한 책임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는 “은행들은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자금세탁이 아닌 라임세탁과 같은 금융 리스크를 더욱 경계하고 있다”며 “금융당국이 금융 리스크에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의 위험부담 역시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암호화폐와 거래소를 보는 금융당국의 시각이 바뀌지 않고서는 실명계좌 신규 발급은 물론 4대 거래소의 연장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