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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국 못믿어서 대화 못나오나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1.07.16 04:30
수정 2021.07.16 09:25

"美, 싱가포르·하노이 실무案 번복"

"北 '탑다운' 고집, 트라우마와 연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 웃는 모습(자료사진) ⓒ인스타그램

미국이 북한의 대화 복귀를 촉구하며 '공은 북한에 있다'고 못 박았지만, 북한은 좀처럼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싱가포르 선언' 추인 △북한 공식 국호(DPRK) 사용 등 상징적 대북 유화 메시지를 대거 발신한 상황이지만, 북한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실효적인 유인책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워싱턴 조야에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인식이 만연한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선제적 양보'로 비칠 수 있는 제재완화 등을 제안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불신하는 만큼, 북한 역시 미국을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말하는 '대화'의 성격이 실무급 대화일 수밖에 없어,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실무합의 번복'을 겪은 북한이 대화재개를 주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5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주관한 웨비나에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내용을 토대로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실무회담 초안이 두 번이나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며 "북한의 불신을 미국이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바로 전날 미국 측은 소위 '6pm 텍스트'라는 초안을 북한과 합의했다고 볼턴 회고록이 적고 있다"며 "합의문 초안에는 종전선언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볼턴이 합의를 뒤집을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북미 최종 합의문은 '6pm 텍스트'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4개의 기둥으로 된 짧은 싱가포르 합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가 언급한 불턴 회고록 내용에 따르면,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출된 실무합의 내용 역시 미국 측에 의해 수정됐다.


볼턴 전 보좌관은 하노이행 비행기 안에서 스티븐 비건 당시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마련한 실무합의안을 보고 분노했다고 한다. 그는 해당 합의안을 '북한이 마련한 초안'으로 혹평하며,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북한에 너무 유리한 합의안이니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비건 전 대표를 비판했다고 밝혀 사실상 자신의 주장이 관철됐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볼턴은 자기 자랑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북한은 북미 간 실무협상 내용들이 뒤집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결국 북한 입장에선 실무진에서 논의된 내용이 두 번 모두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뒤집어지는 상황을 경험하게 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이 '탑다운'을 고집하는 이유가 잘 안 알려져 있는 북한의 '트라우마'와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며 "북미회담을 재개하려면 이런 프로세스 문제를 잘 검토해야 한다. 미국 측이 실무회담 결과를 두 번 뒤집었던 것을 평가해야만 북한과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북미 간 상호불신이 뚜렷한 상황에서 신뢰 회복을 꾀하려면 '예측 가능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높은 수준의 신뢰를 내세우지 말고 '예측 가능성'을 신뢰의 첫 단계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밝혔다.


북한이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하고, 미국은 북한을 주요 위협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선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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