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제네시스 G80 전기차 '멀리 가거나', '미친 듯 달리거나'
입력 2021.07.09 08:00
수정 2021.07.08 18:21
에코-스포츠 주행모드 차이 '확연'…전·후륜 독립 전기모터 효과
내연기관 G80의 고급감 그대로…정숙성은 업그레이드
과거 전기차는 무조건 한 번 충전해 최대한 멀리 주행할 수 있는 게 최고의 경쟁력이었다. 충전이 불편하다는 핸디캡을 가진 상태에서 기껏해야 100~200km 달리면 배터리가 바닥나니 조금이라도 더 거리를 늘리는 게 경쟁에서 유리했다. 그러다 보니 전기차는 작고 가벼운 소형 해치백 일색이었다.
하지만 배터리 기술 발달로 1회 충전 주행거리 400km를 우습게 넘기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자동차 회사들은 대형 럭셔리 세단이나 고성능차를 타는 사람들도 지구 살리기에 동참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호화로운 뒷좌석을 가진 럭셔리 세단이자 뛰어난 달리기 성능을 갖춘 고성능 세단 제네시스 G80이 전기차로 탄생했다. 제네시스의 첫 전기차이자 국산 최초의 전기 대형 세단인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을 7일 시승해봤다.
시승코스는 경기도 하남시 스타필드 하남에서 가평군 마이다스 호텔까지 왕복 약 70km로, 국도와 고속도로가 적절히 섞였다.
얼핏 보기에 G80 전기차의 실물은 기존 내연기관차 버전의 G80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전기차에는 필요 없는 라디에이터 그릴조차 기존 G80의 대형 크레스트 그릴의 그물 패턴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그물 사이를 막아놨을 뿐이다. 그릴 상단에는 전기차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충전구가 있지만 그릴의 일부처럼 보이게 잘 숨겨놓았다.
전면 범퍼 하단부 디자인도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다. 공력성능 개선을 위해 휠 에어 커튼을 적용한 탓이다. 그렇다고 그게 차의 인상을 크게 달라보이게 하진 않는다.
고급스러우면서도 하이테크한 이미지의 운전석이나 넓고 편안한 뒷좌석도 내연기관 버전 G80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다. 개별 디스플레이 등 고급 편의사양들도 빠짐없이 넣어놨다.
전체적으로 G80을 원하는 이들이 전기차를 선택해야 할 때 아무 고민이 없도록 이질감을 최소화시킨 느낌이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면, 아니 전원을 켜면 그제야 이 차가 전기차라는 게 실감난다. 클러스터에 표시되는 파워-차지(전기모터 출력과 회생제동을 보여주는) 계기와 에너지 흐름도부터그 그렇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소리 없이 부드럽게 굴러간다. 컴포트, 에코, 스포츠 등 3개 주행모드가 있는데 컴포트와 에코 모드에서는 딱 이 큰 덩치를 무리 없이 움직일 만큼만 힘을 준다.
고급 세단 특유의 정숙함과 편안한 승차감도 그대로다. 특히 고속에서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게 놀랍다.
사실 전기차일수록 소음을 잡기가 더 어렵다. 내연기관차는 멋들어진 엔진 소리로 웬만한 풍절음이나 노면소음 따위는 묻어버릴 수 있지만, 엔진 대신 전기모터가 조용히 돌아가는 전기차는 조금이라도 외부 소음이 있으면 바로 탄로나버린다.
비싼 차니 흡차음재 등을 많이 사용해 나름 소음 차단에 노력했겠지만 그보다 능동형 소음 제어 기술 ANC-R(Active Noise Control-Road)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센서와 마이크로 노면소음을 실시간 측정, 분석해 스피커로 반대 위상의 소리를 내는 기술이다. 눈속임에 필적하는 귀속임(?)에 당한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조용하니 됐다.
고속도로로 들어섬과 동시에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전환했다. 헐거웠던 시트가 옆구리를 단단하게 받쳐주며 마치 버킷시트와 같이 바뀐다.
앞차와의 거리가 충분한 것을 확인하고 가속페달을 밟으니 즉각 뒤통수에 충격이 온다. 몸이 뒤로 젖혀지며 헤드레스트에 부딪친 것이다. 그만큼 가속 반응이 확연히 다르다.
추월을 위해 차선을 옮기거나 곡선 구간에서의 핸들링도 컴포트 모드와는 전혀 딴판이다. 브레이크 반응도 즉각적이다.
다양한 주행모드를 제공하는 것은 요즘 나오는 자동차들에겐 기본이지만 G80 전기차처럼 확연히 색깔이 바뀌는 경우는 처음이다. 마치 전혀 다른 차를 탄 느낌이다.
클러스터의 에너지 흐름도가 궁금증을 해소해줬다. 컴포트·에코 모드에서는 후륜으로만 공급되던 전원이 스포츠 모드에서는 네 바퀴 모두에 공급된다.
G80 전기차에는 최고출력 136kW, 최대 토크 350Nm짜리 전기모터가 두 개 들어간다. 전륜과 후륜에 각각의 엔진이 달린 셈이다.
평시에는 하나만 구동되던 모터가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거나 경사를 오르느라 많은 힘이 필요할 때, 혹은 미끄러운 길에서는 두 개 모두 구동된다. 모터 두 개가 모두 구동될 때의 합산 최고출력은 272kW(약 370마력), 합산 최대토크 700Nm(71.4kgf·m)에 달한다.
185마력짜리 차가 한순간에 370마력짜리로 바뀌니 주행모드별로 차이가 확연한 게 당연하다.
G80 전기차의 동력성능은 G80 내연기관 모델 중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3.5 가솔린 모델(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54.0kgf·m)과 비교해 최고출력은 거의 대등하고 최대토크는 훨씬 높다.
시승 당일 오전 G80 전기차 출시 발표와 함께 제원이 공개됐을 때 ‘어떻게 저 정도 동력성능을 내면서 한 번 충전에 427km를 주행할 수 있나’ 의문이 들었는데 그 비밀이 여기에 있었다.
효율 위주 주행 때는 후륜 전기모터만 사용하고, 퍼포먼스 주행 때는 두 개를 모두 사용하는 방식으로 1회 충전 주행거리나 달리는 재미 모두 충족시킨 것이다.
물론, 스포츠모드로만 주행한다면 한 번 충전에 427km 주행은 어림도 없다. 에코 모드에서 303km가 남았던 주행가능거리는 스포츠모드로 바꾸니 곧바로 282km로 떨어졌다.
전기차로 길이 5m에 달하는 고급 대형 세단을 택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때때로 고성능 스포츠 세단처럼 몰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은 더욱 끌린다.
G80은 ‘오너드리븐(직접 운전하는 차)’ 세단임과 동시에 ‘쇼퍼드리븐(주인이 뒷좌석에 앉는 차)’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 ‘높으신 분’들도 전기차 전환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듯하다.
G80 전동화 모델은 단일 트림으로 운영되며 가격은 8281만원이다. 가격이 6000만원을 넘는 만큼 보조금 전액 지원 대상은 아니며, 50%만 지원받을 수 있다.
▲타깃 :
- “아이오닉 5에 운전기사를 두고 탈 수는 없잖아.”
- 기름 먹는 하마로 불리는 대형 세단을 타며 환경운동 하시는 분
▲주의할 점 :
- 스포츠모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충전소 위치를 확인할 것.
- 솔라루프 옵션을 선택하기 전에 연간 2~3회 충전 용량(약 1150km 주행가능거리)의 전기를 공짜로 얻기 위해 140만원을 내는 게 적절한지 고민해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