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리와인드⑥] ‘악마판사’ 판사 출신 문유석 작가가 꿈꾸는 사회
입력 2021.07.06 15:13
수정 2021.07.06 15:13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tvN, JTBC
문유석 작가는 판사 출신이다. 지난 2018년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집필할 때만 해도 판사로 재직 중이었다. 원작이 된 동명의 소설 역시 문 작가의 작품이며, ‘미스 함무라비’ 외에도 ‘판사유감’, ‘쾌락독서’, ‘개인주의자 선언’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법에 대한 시선을 녹인 에세이를 비롯해 소설과 드라마 대본에 이르기까지. 경계 없는 활동이 눈에 띈다.
특히 ‘미스 함무라비’를 통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살린 현실적인 법정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에피소드의 디테일함은 물론, 드라마적인 재미도 충분한 작품이었다. 법정물 특유의 쫄깃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법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디테일하게 녹여내며 현실감을 놓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었다.
지난 2020년 법복을 벗고 본격적인 글쓰기 여정을 시작한 문 작가는 현재 방송 중인 tvN 드라마 ‘악마판사’를 통해서는 장르물에 도전했다.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와 함께 등장한 악마판사 강요한(지성 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 ‘미스 함무라비’와 달리 다소 묵직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지난 1, 2회 모두 5%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 문유석 작가의 판사 이야기, 누구도 못 따라올 디테일
전작인 ‘미스 함무라비’의 장점은 단연 디테일이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세 명의 재판부가 펼치는 이야기를 담은 ‘미스 함무라비’는 먼저 캐릭터들의 묘사부터 남달랐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법원을 꿈꾸는 이상주의 초임 판사 박차오름(고아라 분)부터 섣부른 선의보다 원리원칙이 최우선인 엘리트 판사 임바른(김명수 분), 세상의 무게를 아는 현실주의 부장 판사 한세상(성동일 분)까지. 누구 한 명의 시각이 옳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법에 대한 시선의 차이와 이에 대한 토론 과정에 집중하며 판사 출신이 아니었다면 보여주지 못했을 깊이를 보여줬다.
굵직한 사건에 집중해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회사 내 성추행과 의료 비리, 비행 청소년에 대한 재판 등 우리 주변에서 자주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양하게 다뤄내며 시청자들을 공감도 자아냈다. 특히 이를 접하는 초임 판사 박차오름의 시선이 시청자들을 자연스럽게 대변했으며, 이를 중재하는 부장 판사 한세상과 임바른의 현실적인 면모는 자칫 이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전개를 잡아줬다.
이 외에도 알파고급 능력을 갖춘 속기 실무관 이도연(이엘리야 분)과 판사 정보왕(류덕환 분)의 로맨스를 비롯해 젊은 판사들의 갈등과 연대를 담는 등 법정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도 디테일했다. 현실감을 높이는 동시에 따뜻하면서도 소소한 전개를 보여준 ‘미스 함무라비’의 분위기와도 맞물렸다.
‘악마판사’를 통해 가상의 세계를 다루며 장르물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문 작가지만 악마판사 강요한이 주인공으로 나선 만큼, 이번에는 어떤 디테일한 현실을 바탕으로 탄탄한 전개를 펼쳐낼지가 기대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 ‘악마판사’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 어떤 고민 녹여낼까
‘악마판사’가 다루는 가상의 대한민국은 정의가 무너진 디스토피아적 사회로 그려지고 있다. 권력을 앞세워 사법부를 장악한 기득권과 이에 불만을 가진 국민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타난 강요한까지. 초반의 ‘악마판사’는 드라마가 구축하려는 세계를 묘사하는 데 집중했었다.
일부 시청자들은 ‘미스 함무라비’의 따뜻함과 비교하며 현직일 때와 퇴사 이후 온도 차이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스 함무라비’에서도 정의로운 마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을 통해 법의 한계 혹은 딜레마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 문 작가였다. 그가 쓴 첫 책 ‘판사유감’에서도 사법제도와 법조문화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담았으며, 이후 발간한 ‘개인주의자 선언’을 통해서는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친 자신만의 생각을 펼치기도 했다.
‘악마판사’가 다루는 사회는 가상이지만, 이를 통해 이상을 반영하거나 혹은 또 다른 딜레마를 통해 올바른 ‘정의’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작품보다도 문 작가의 시선이 뚜렷하게 담기는 드라마가 될 수 있다. ‘악마판사’가 이번에는 또 어떤 고민으로 시청자들에게 의미를 남길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