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품격⑦] 고아성‧이솜‧박혜수가 보여준 뻔하지만 통쾌한 ‘한방’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류지윤 기자
입력 2021.05.28 15:05
수정 2021.05.31 09:38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편집자 주> 명작은 시대가 흘러도 명작입니다. 대중과 첫 만남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한 작품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때론 세세하게 때론 개인적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입사 8년차 동기인 말단 여직원들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모인다. 이유는 하나 토익점수 600점이 넘으며 대리로 승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실무 능력은 뛰어나지만 현실은 커피 타기 달인 이자영(고아성 분), 추리소설 마니아로 돌직구 멘트를 날리는 정유나(이솜 분),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이지만 현재는 가짜 영수증이나 만들어내는 수학왕 심보람(박혜수 분)은 대리가 되면 ‘진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이자영은 우연히 회사 공장에서 검은 폐수가 유출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공장이 위치한 마을이 위험한 상황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자영과 유나, 보람은 회사가 무엇을 감추고자 하는지 찾으려 한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가지 위해 셋은 뭉치고, 여기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모두가 힘을 합친다. (줄거리)


유명준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하 ‘삼진그룹’)이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받은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전 뭔가 의외였는데, 그래도 납득이 간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홍종선 : ‘사회적 메시지 있는 영화라는 점을 중시했다’ ‘작품상에 어긋나는 선택은 아니다’ 작품상 수상작이 대작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라 가능했다는 측면도 있어요.


류지윤 : 저는 솔직히 조금 의외였어요. ‘소리도 없이’나 ‘자산어보’가 유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당시 흥행도 나쁘지 않았고 영화도 즐겁게 봐서 납득이 안가는 수상은 아니었어요. 흥행은 저 두 작품보다 잘 되기도 했고 평도 나쁘지 않았고.


홍종선 : ‘소리도 없이’는 개인적으로 작품상은 안 된다는 입장이에요. 감독상 배우상은 몰라도. 왜냐하면 위험 요소 다분한 소재인데 나름의 방식으로는 풀어서 감독상 어찌어찌 준다 해도 작품상 받을 만하게 익지 않았다. 설익었다 생각해요. 사실 저는 신인감독상 넘어 감독상도 과하다 아니 이르다 생각해요. 유아인 유재명의 연기는 너무 좋았지만 위험 요소를 제거하지 못했다, 제거는커녕 오해 가능한 여지들을 남겨두었기에 작품적으로는 미흡하다 생각해요. 저도 너무 잘 보았지만요.


유명준 : 다른 영화들은 우울했거나 뭔가 거리감이 있는데, ‘삼진그룹’은 그래도 현실적이고 실화 바탕이라 이해가 가죠. 한편으로는 코로나19 때문에 작품 폭이 좁아진 것도 삼진그룹에게는 유리했을 수도요. ‘삼진그룹’을 다시 보는데, 눈에 띄는 인물이 나오더라고요. 요즘 핫(?)한 백현진 배우. ‘모범택시’에서 갑질 대표로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욕 제대로 먹고 있는데, ‘삼진그룹’에서도 비슷한 캐릭터였더라고요.


류지윤 : 얼마 전에 ‘특종:량첸살인기’ 다시 보는데 거기서도 나오시는!


유명준 : 주연배우들 연기는 어떠했는지?


홍종선 : 고아성이라는 배우가 있기에 제작 가능했던 상업영화다 싶어요. ‘오피스’ ‘오빠생각’ ‘항거, 유관순 이야기’ 등 성공 목표인 대중 스타라면 택하지 않을 작품들을 택해요. 덕분에 좀 더 규모가 커지고 좀 더 많은 관객이 보고.


류지윤 : 고아성 배우의 연기야 워낙 믿고 봤기 때문에.


유명준 : 사실 그 부분이 아쉽긴 해요. 스타성 대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지 애매하거든요.


홍종선 : 배우로서 누구나 완벽할 수 없는데 고아성은 자신의 부족함을 ‘선택’으로 채우는 배우예요. 애매할 수 있는데, 그 단점을 알텐데 택하니까 더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류지윤 : 부족한 걸 선택으로 채우면 , 본인이 취약하거나 힘들어하는 걸 작품으로 택해서 스스로 증명하는?


홍종선 : 조금 다른데. 지금 류기자가 말한 방식으로 택한 건 ‘더 킹’ 같은데, 나쁘지 않았지만 제 생각에는 ‘자기가 잘할 것,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걸 택해서 더 잘한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그 결과 자기만의 자리를, 색깔을 구축해 가고 있죠.


유명준 : 사실 그에 비하면 이솜이나 박혜수는 대중성을 진하게 가지고 있죠. 그 때문에 사실 삼진그룹에서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졌어요.


홍종선 : 맞아요. 이솜이나 박해수는 결에 맞는 영화는 아닌 느낌. 그런데 이솜은 그걸 그들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모습으로 간극을 메웠어요. 패션뿐 아니라 성공에 대한 의지와 노력 등 가장 당차죠. 1990년대에 21세기 당찬 여성이 가 있는 느낌. 결과적으론 잘해서 조연상들 받은 것 같고요. 난 이솜 ‘소공녀’ 느낌이 좋아요.


유명준 : 전 이솜이 강렬했던 작품이 ‘마담뺑덕’. 그러나 오히려 이솜은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죠.


홍종선 : ‘마담뺑덕’. 어떻게 정우성한테 신인이 안 밀려. 정우성은 연기 이전에 존재감이 큰 배우인데.


유명준 : 그때 느낌이 정우성에게 밀리고 안 밀린다기보다는 그냥 흡수된 느낌? 그런데 요즘 드라마에서는 자기 존재감 확실히 드러내는 느낌이라. 그래서 영화보다는 드라마.


홍종선 : 드라마가 잘 어울리는 느낌인 건 디테일 연기를 해서인 듯. 그 디테일을 드라마는 다부작이니 천천히 잡아 주고 소공녀 같은 독립영화는 클로즈업해서 잡아주고.


류지윤 : 그런데, 이솜을 보면 도회적이고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이런 이미지가 세서 다른 이미지의 배역연기는 어떨까도 궁금해요.


유명준 : 그렇지. 한 이미지가 굳어지면 다른 역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지. 최근 작품들이 모두 그러한 느낌이었으니.


홍종선 : 오호 이미지 변신이 필요한 때다!


류지윤 : 그게 이솜이 넘어야 할 산일 듯요.


홍종선 : 본인 노력도 중하지만 소속사가 자를 거 잘라 줘야 해요. 감독은 욕심쟁이니까 당연 자신의 작품에 필요한 이미지로 쓰니 스스로 걸러야.


유명준 : 두 배우에 비해 박혜수는. 물론 요즘 학교폭력(학폭) 때문에 난리긴 하지만. 영화에서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느낌이에요.


류지윤 : 선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전 굉장히 호였는데. 박혜수도 귀엽고 어벙한 이미지 연기를 주로 해서 학폭 논란이 더 크게 다가온 것 같아요.


홍종선 : 호였죠, 삼진에서의 연기. ‘연기 차지게 잘하네’라는 느낌. 삼진에서 조연 느낌인 게 아쉬웠어요. 그런데 ‘신인의 한계다’ ‘다음에 더 잘하겠다’ 정도. 그런데 학폭이.


유명준 : 전 중간. 이게 박혜수 때문이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고아성과 이솜이 각각 포지션을 잡고 있다 보니, 시선이 덜 간 느낌이에요. 가만있어도 존재감 풍기는 고아성과 도도하고 튀는 이솜 사이에서 조연 느낌.


홍종선 : 사실 고아성 원톱에 이솜, 박혜수 붙은 건데 이솜이 주연 분위기를 잘 이뤄낸 거지. 진짜 쓰리톱이었으면 박혜수 캐스팅 무리지. 연기력 대문이 아니라 지명도나 티켓파워 등에서.


유명준 : 그렇긴 해요. 그런데 아마 그런 부분이 오히려 박혜수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는 이유일지도요. 기대감이 낮았는데, 딱 나타났으니.


홍종선 : 맞아요. 혜성 느낌이었어.


류지윤 : 둘 사이에 너무 귀여운 존재가 나타난 거죠.


홍종선 : 배우로서 수명이 끝난 건지, 한참 지나서라도 재기 가능한 건지. 캐스팅하는 자와 이를 받아들일 대중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류지윤 : 전 솔직히 재기 가능하다고 보는데, 이러면 또 결론 안 난 사건의 가해자를 지지하는 건가요?


유명준 : 전 오히려 박혜수가 아주 엄청난 인지도 높은 배우가 아니기에 가능한 예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이번에 박혜수를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결론은 안 나고 드라마가 만약 방송되어 호평을 받으면 나쁘지 않은 코스죠. 문제는 결론이 학폭으로 나면, 그건 치명타죠.


홍종선 : 우선 폭로 내용이 너무 셌고, 우리가 그를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하게 배우로서 매력을 각인시키기 전에 터진 거죠.


류지윤 : ‘삼진그룹’에서 인연 맺은 조현철과 독립영화도 촬영하잖아요. 조현철이 한예종 다닐 때 연출을 그렇게 잘했다고 들어서 기대했는데, 아쉬워요.


유명준 : 이야기를 하다보니 ‘삼진그룹’이 작품상을 받긴 했지만, 배우들 이야기만 하네요. 작품이 메시지는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평이해서 그런 거 같아요. 배우들이 살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그래서인지 ‘삼진그룹’이 과연 나중에 한국에서 기억할만한 명작으로 남을지는 미지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류지윤 : 전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가는 게 무엇보다 좋았던 거 같아요. 뭐 큰 설계를 하거나 도전이 아닌.


홍종선 : 재미있는 복고풍 코미디인 줄 알고 봤다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 걸음이 세 상을 바꾼다는 묵직한 메시지에 놀라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더 커졌던 게 사실이에요. ‘세상을 바꾸는 건 영웅이 아니라 우리다’라는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었죠. 1991년 두산전자 페놀 낙동강 방류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요.


유명준 : 선배가 이야기한 부분을 전 잘 못 느꼈는데, 만약 이 영화가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이라면 그 메시지에 놀랐을 거예요. 그런데 이미 어느 정도 그런 류의 메시지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많이 쏟아져서 무뎌진 거 같아요.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는 공감하지만. 이제 속세에 물들어가는 듯요. 영화에서 감동도 못 느끼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보다 액션 영화가 더 먹히는 거 같아요. ‘저 기업이 불법을 저질렀습니다’라고 누가 외쳐도 ‘어 그래? 나쁜 놈들이네’ 끝. 이런 세상이니까요. 메시지와 외침이 많아지는 게 좋은 현상이면서도 너무 사람들을 무뎌지게 만드는 거 같아요.


홍종선 : 영화 제작비 줄이려고 방류 지점을 시골로 하고 싸우는 주체를 방류 회사 내부 직원으로 바꿨는데, 실제로 구미 대구 대도시였고 시민들이 떨쳐 일어나서 세상에 알려지고 두산 회장 사임하고 환경부 장관 내려오고 했는데, 그런 분위기를 좀 가볍게 풀다보니 지금이 된 거네요.


류지윤 :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 90년대 일인데 어제 일어난 일어였다고 해도 이질감이 없어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은>


홍종선 : 여자 배우들을 주연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펼친 영화. 뜨겁지 않은 따뜻함의 미덕, 폭소가 아닌 미소의 행복감을 깨닫게 한다.


류지윤 : 먼지같은 존재가 모여 다이너마이트를! 고아성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신난다. 박혜수의 발견도 즐거웠지만. 어쨌든 뻔한 결말까지 유쾌한 삼진 삼총사.


유명준 : 뻔한 흐름과 결과가 예상되지만, 배우들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영화. 강한 메시지를 주려했지만, 더 강하고 자극적 메시지가 넘치는 세상이라 다소 무덤덤해진 슬픈 상황.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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