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백신 확보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1.04.26 09:00
수정 2021.04.26 07:42

접종률 4%가 우리의 방역 현실

권덕철 복지부 장관 활약상 자랑까지

정부, 백신 사고 확실히 책임져야

세계적 백신 빈국이라던 우리나라가 갑자기 백신 부국이 됐다는 언론 보도다.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1일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산 스푸트니크V 도입 가능성을 점검하라고 지시할 만큼 정부는 백신 확보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3일 후 갑자기 보건복지부는 화이자 백신 4000만 회분(2000만 명분)을 추가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국민이 두 번 접종할 수 있을 만큼의 물량(1억 9200만 회분으로, 총 9900만 명분)이 확보됐다는 수치를 덧붙였다. 요술 방망이를 휘두른 것일까, 아니면 어느 날 짠하고 발표하려고 일부러 모자라는 시늉을 했던 것일까?


접종률 4%가 우리의 방역 현실


반갑기는 한데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백신 빈국’ 공격에 대해 반격을 시작했다는 언론보도에 입맛이 싹 가신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25일 국민의힘을 겨냥해서 “국민을 너무 불안하게 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이득이나 누리려는 무책임한 행태”라고 연합뉴스를 통해 비난했다. 그는 “이런 가운데에도 정부가 화이자 백신을 추가 확보하지 않았느냐. 야당이 정부를 얼마나 과도하게 비난해 왔는지 역으로 방증한다”라고 기세를 올렸다.


같은 당 김성주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은 영국과 한국의 방역 상황을 비교한 글을 SNS에 올리며 “한국은 전체 인구의 4% 수준에 불과한 백신 접종률에도 하루 확진자는 600∼700명대를 오가고, 사망자는 하루 1~2명 발생하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사람들 백신 아무리 많이 맞으면 뭘 해,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우리보다 훨씬 많은데”라는 말인 듯하다.


이미 K-방역의 우수성이라는 것은, 문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 여당 인사들이 충분히 선전했다. 그러니 새삼 정부 측이 자랑할 일은 못 된다. 중요한 것은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상태 도달이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적어 그렇다 하고 우리보다 훨씬 인구가 많은 미국 영국 등의 접종률이 50%에 육박했거나 그 선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들 국가가 이처럼 빠른 접종률을 보이는 데 반해 우리는 겨우 4%대에 이르렀다. 그 이유야 뻔하다. 시작이 늦었고 물량확보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잘하고 있다”라며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대한 반박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지혜나 노력이 거기에 머물렀던 데 대한 반성이 앞서야 하는 것 아닌가? 백신의 중요성을 평가 절하한(그것도 지속해서) 기모란이라는 사람을 청와대 방역기획관으로 기용한 것만 보더라도 정권 측의 감각이 얼마나 무디고 책임 의식이 결여된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관련 논란에 대해 문 대통령은 “나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기 기획관이 방역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진 사람이든, 문 대통령 자기 인사에 오류가 있을 리 없다는 말로 들린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 활약상 자랑까지


화이자 백신을 추가로 확보했다는 기사에 이어서 권덕철 복지부 장관(범정부 백신 도입 TF 팀장)의 활약상이 소개됐다. 해당 언론사 기자가 취재해서 썼다기보다는 복지부 측의 자랑을 옮겨 놓은 기사라는 인상이 짙다. 이 기사에 따르면 권 장관은 범정부 TF가 출범한 이후 백신에 매달렸다. 9일에 이어 23일에 화이자의 아태 담당 최고경영자(CEO)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간절하게 설득·호소했다. 화이자 백신의 우수성과 신뢰성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당초 “우리는 과학 하는 사람들이지 외교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난색을 보이던 화이자 측은 마침내 우리와 백신 추가공급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대충 이런 스토리다.


일 잘한 사람 두고 이런저런 말을 하기가 좀 뭣하지만 의아한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화이자가 7월부터 우리에게 백신을 추가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면 우리가 그처럼 간절히 호소해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는데 유수의 제약사가 사람 봐가면서 주고 말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 TF팀장 띄우기, 아니면 정부 업적 선전용 감동 스토리라니! 이런 느낌을 털어내기 어렵다.


우리만 특별히 계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야 권 장관의 역할이 컸다는 찬사를 아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고 할 경우 이는 도덕적으로 반길 수 없는 일이 된다. 남의 몫을 중간에 가로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화이자의 생산력이 갈수록 향상되고 주문량은 상대적으로 안정돼 우리의 주문도 수용될 수 있었다고 한다면 특별히 내세워 공치사할 일은 못 된다고 하겠다.


궁금증은 이에서 멈추지 않는다. 7월부터 추가 계약분이 들어온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2000만 명분이라는 것이 언제까지 다 들어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하겠다고 한다. 백신과 관련해서는 국제적으로 비밀유지조항이 있어서 구체적인 도입 시기, 가격 등은 밝히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권 장관이 이유를 설명했다. 설마 “언제까지든 들여오면 될 것 아냐?”라고는 않겠지만 아주 미덥지는 않은 것 또한 숨길 수 없다.


물론 백신을 부족하지 않게 확보했고 11월 집단면역 달성의 목표에 변함이 없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런데 영 거슬리는 말도 있다.


“백신 물량에 대한 우려는 이제 충분히 해소됐다. 이제는 미래 백신 수급이 차질을 빚을 것인지, 아닐 것인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은 중단하고 현재에 집중할 때이다”(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


정부, 백신 사고 확실히 책임져야


국민이나 언론이 괜히 백신 걱정을 한 게 아니다. 여전히 접종률이 4%대에 머물고, 정부가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에 이어 중국산 시노팜Vero에까지 관심을 보인다는 뉴스에 국민이 어떻게 반응하기를 바란다는 건가. 그걸 ‘소모적 논쟁’ 운운하는 것은 전문가적인 여유인가 자기합리화를 위한 궤변인가.


게다가 백신이 우리 손에 들어오고 나서야 ‘우려의 충분한 해소’를 말할 수 있다. 일부 국가의 예이지만 남들은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게 되었다는 데도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유지에 더해 특별방역관리주간을 설정하는 상황이다. 이러면서 걱정하고 비판하는 측만 나무라는 정부‧여당의 태도가 어이없다.


또 한 가지, 백신의 위험성 문제다. 권덕철 장관은 지난 8일 기자 간담회에서 아스트라제네카의 위험성과 관련, 혈전 형성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면서도 맞는 이익이 훨씬 크다며 접종을 권장했다.


“나도 맞은 뒤 일상적인 면역 반응 외 별문제 없었다.”


권 장관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도 정세균 전 총리도 맞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니 안심해도 될까?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는 물론 이려니와 화이자 접종을 한 사람 가운데서도, 인과관계가 확인된 건 아니지만 목숨을 잃은 경우가 있다. ‘안심’을 요구할 수는 없다. 물론 통계적, 사회적으로 접종이 더 큰 이익을 주는 건 맞다. 그렇더라도 믿을 수 있는 좀 더 과학적이고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백신 사고가 발생할 경우의 대책에 대해서도 명확한 대응 방안을 마련, 적용해야 한다. 인과 관계가 확인되는 경우야 말할 것도 없고,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는 경우에도 정부가 책임을 지는 쪽으로 입장과 인식을 정리하는 게 옳다. 문 대통령이 이미 지난달 2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약속했다.


“어떤 백신이든 백신의 안전성을 정부가 책임집니다.”


그걸 지키면 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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