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선] '1인 2역 배우'처럼…안철수 나타나자 김종인 또 떠났다
입력 2021.04.03 01:30
수정 2021.04.03 04:06
한 사람이 유세차 오르면 다른 한 사람 사라져
2일 목동서 안철수 나타나자 김종인 현장 떠나
유세차 계단서 맞닥뜨리자 말없이 악수 나눠
마치 '1인 2역 배우'처럼 두 명이 동시에 무대에 오르는 일이 없다. 한 명이 무대 위로 오르면 다른 한 명이 저편으로 사라진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얘기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2일 오후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집중유세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 전 원내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무소속 금태섭 전 의원이 함께 할 것으로 예고돼 주목을 받았다.
안철수 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 금태섭 전 의원은 오세훈 후보와 함께 '야권 단일화 레이스'를 함께 뛴 인사들이다. 김종인 위원장과 이들 모두가 한 자리에 서는 것은 드문 일이라 4·7 재·보궐선거에 임하는 '야권 대통합'의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세훈 후보와 김종인 위원장, 안철수 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 금태섭 전 의원 다섯 명이 모두 함께 유세차 위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는 모습은 연출되지 못했다.
이날 김종인 위원장과 나경원 전 원내대표, 금태섭 전 의원 세 명은 깨비시장 안쪽 서울이다치과의원앞 사거리에서 먼저 유세차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반면 오세훈 후보는 안철수 대표와 함께 시장입구에서부터 시민들과 거리 인사를 하며 유세차로 향했다.
오세훈 후보와 안철수 대표가 유세차에 도착해 오르려 하자, 연설을 마친 김종인 위원장, 나경원 전 원내대표, 금태섭 전 의원은 유세차에서 내려왔다. 유세차 계단에서 맞닥뜨린 김 위원장과 안 대표는 말없이 악수만 나눴다. 뒤이어 오 후보와도 악수를 나눈 김 위원장은 청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며 먼저 현장을 떠났다. 이후 유세는 오세훈 후보와 안철수 대표 둘만 유세차에 오른 채 계속됐다.
그렇다고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가 딱히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두 사람의 최근 유세 현장에서의 메시지는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대단히 흡사하다는 분석이다. '1인 2역 배우'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생각 달라서?…마치 한 사람 쓴 것처럼 '흡사'
김종인 "文 '일자리 상황판'…왜 사라졌느냐"
안철수 "'상황판' 당근마켓에다 판 것 아닌가"
김종인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부동산정책은 실패해서 25번 시책했는데도 한 번 성공을 못 거뒀다"며 "이 와중에 대한민국 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부동산3법 시행 직전에 자신의 주택 전셋값을 14% 올렸단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정부는 자기가 하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정부"라며 "불과 2개월 전에 대통령의 입으로 코로나는 3월말이면 긴 터널을 지나서 끝날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터널 말미의 불빛이 보이느냐"고 성토했다.
아울러 "지금 코로나는 더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년 동안 코로나 확진자가 5만 명인데, 올해 들어 몇 달 사이에 지난해 1년 수치보다도 더 증가하는 실태"라며 "이런 정부에게 우리가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안철수 대표도 이날 연설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임대차3법 시행 이틀 전에 자기 임차인의 전셋값을 대폭 올렸다"며 "청와대 정책실장이 그 전 교수 시절에 '재벌 저격수'라 불렸는데, 이번에 보니까 '재벌 저격수'가 아니라 '임차인 저격수'"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코로나 독립일'로 만들겠다고 했다"며 "대부분의 선진국이 올해 내로 마스크 벗고 장사하고 해외여행 다니게 되는데, 외국에서 조사해보니 우리나라는 내년 여름을 지나 가을~겨울이 돼야 마스크를 벗는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가 다 자유롭게 마스크 벗고 장사하고 여행 다닐 때 우리는 다 마스크를 쓰고 있게 됐다. 이게 모두 다 누구의 잘못이냐"며 "이 정부의 가장 큰 무능은 백신무능"이라고 질타했다.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현 정권의 부동산정책 파탄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내로남불' 행태, 그리고 백신 확보 미비로 인한 지지부진한 접종 현황을 문제삼은 것이다.
결국 노선·이념·성향차 아닌 '사감' 때문 분석
내년 3·9 대선 앞두고 야권 불안요소 될 수도
"개인적 앙금 앞서면 통합·연대 과정서 고비"
이날 연설에는 없었지만 최근 김 위원장과 안 대표는 같은 날 유세에서 똑같이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상황판'을 문제삼기도 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오후 동작구 태평백화점앞 집중유세에서 "이 사람들 '일자리를 만드는 정부'라며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일자리 상황판' 내걸고 선전효과를 노리려 했다"며 "그 상황판이 사라졌다. 왜 사라졌느냐"고 일갈했다.
공교롭게도 같은날 오후 안철수 대표도 마포구 연남파출소앞 유세에서 "이 정부가 처음에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우리는 일자리정부'라며 '일자리 상황판'이라는 것을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해놓고 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 찍었다"며 "그 상황판 어디 갔나. 아마 당근마켓에 판 것 아닌가 싶다. 동네 창피한 일이니까 동네에서 팔지 않았겠나"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메시지 내용이 흡사한데도 굳이 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함께 유세를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결국 딱히 노선이나 이념·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사감(私感)이 원인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평소 내홍을 겪다가도 선거철에는 뭉치는 게 정치의 속성이다. 선거 승리는 정치 세력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철인데도 야권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사감을 이유로 화합과 통합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중장기적인 불안 요소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데일리안에 "아무래도 앞으로도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가 유세차에 함께 올라 나란히 연설하고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는 모습은 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이나 안 대표나 이번 재보선 끝나고 내년 대선까지 야권에서 무거운 행보를 펼칠 비중 있는 정치인들인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번 재보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선을 앞두고서도 야권이 통합하고 연대해야 승리할 수 있다"면서도 "야권의 주요 정치인들 사이의 사감이나 앙금이 앞서게 되면, 향후 통합·연대 과정에서 고비를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