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학회,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한계 공감…‘도박’ 취급엔 우려
입력 2021.03.17 17:37
수정 2021.03.17 17:38
위정현 회장 “2016년 자정안 내놨어야…입법 논의 불가피”
업계 “아직 자율규제 해결 여지 남아…이용자와 소통해야”
게임업계가 최근 논란이 된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더이상 게임사의 ‘자율규제’로 맡겨둘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모든 게임을 ‘도박’ 취급하는 등 과도한 입법 규제로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서울 서초구 코지모임공간에서 열린 ‘게임 확률형 아이템, 원인 분석과 대안을 고민한다’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2010년도부터 게임사 자율규제에 맡겨왔으나, 게임사와 이용자 간에 차별적인 정보와 부정적 행위로 거의 한계 상황까지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실질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산업 발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입법 과정에서 정치권에서 업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확률형 아이템 논란과 관련해 국회·학회·이용자·정부 간 토론이 진행됐다. 학계에서는 해묵은 논란에도 게임사들이 자체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입법 논의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게임업계 3N이 2016년 문제가 터졌을 당시 알아서 자정안을 내놓았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확률에 대한 이용자 불신이 너무도 커져서 이제 입법 논의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엔씨소프트의 게임 ‘리니지’가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지난 5년간 게임 장르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위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확률형 아이템이 다른 게임사들의 주요 비즈니스모델(BM)로 자리 잡으면서 이용자들의 피로도가 극대화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많은 게임사가 ‘뽑기’ 형태로 지정된 상품 중 일부를 획득하는 확률형 아이템을 주력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에는 확률형 아이템 세부 구성정보와 등장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이 없다. 소비자는 기대효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용자 대표로 참석한 이재원 넥슨 ‘마비노기’ 총대도 게임사들의 확률형 아이템 운영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랜덤 아이템을 사면 1·2·3등 외에는 대부분 거래가 불가능한 기간 제한 소모성 아이템으로 채워지는데, 이용자들이 아이템을 많이 구매하면 할수록 계속 게임 내에 누적돼 가치가 점점 낮아지게 된다”며 “돈을 쓸수록 내 아이템의 가치가 낮아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팔고 있는 건지 게임사들에 묻고 싶다”고 분개했다.
다만, “게임이 도박으로 규정돼서 많은 사람이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것은 막고 싶다”며 “개선을 바라는 것이지 (게임을) 사회악으로 보는 시선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입법 논의보다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게임사들의 자율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회장은 “이용자가 만약 1만원을 들여 투자했다고 하면 그만큼의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랜덤에 대한 의미에 이용자와 게임사와 간극이 많이 벌어져 있어 이제 기업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게임산업은 그동안 한 번도 주류 시장 내에서 경쟁해본 적이 없다”며 “지금이야말로 제대로된 인프라를 조성해 정면 승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정부에서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이용자들이 즐기는 게임 정보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입법되는 과정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업계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에만 의존한 BM을 넘어 더 다양한 모델이 출시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당부다.
박승범 문화체육관광부 과장은 “자율규제에 문제점이 명확하게 드러난 만큼, 법령으로 확률표시 의무 등을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며 “해외 게임사와 역차별 문제가 없도록 시행령에 위임해서 현실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게임 3N이 이날 토론회에 불참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위 회장은 “이날 3N 모두 행사에 불참을 선언했는데 이건 옳지 않다”며 “여론의 비판을 받더라도 직접 나와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규 한국모바일게임협회 부회장도 “이 자리에 와야 할 사람들은 중소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내가 아닌 3N”이라며 “확률형 아이템으로 돈을 벌어서 직원들 연봉 올려주고 이런 자리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