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시대③] 역대 고유가 때마다…韓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했다
입력 2021.03.11 07:00
수정 2021.03.11 09:30
가계 소비·산업체 실적뿐만 아니라
물가·경상수지 등 거시경제도 영향
역대 고유가때 성장률 조정 불가피
우리나라가 역대 고유가 국면 때마다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이 불가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 상승이 가계 소비·산업체 실적뿐만 아니라 물가·경상수지 등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에서다.
최근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고 하반기 80달러까지 오른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만에 2.8%에서 3.3%로 올린 것을 과대 해석하는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배럴당 142달러 돌파…이명박 정부 '747 공약' 발목
10일 석유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오른 국제유가는 2008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업계에선 일시적 현상으로 관망했지만 천정부지로 올라 그해 7월 배럴당 142달러까지 치솟았다. 가장 유가가 높았던 1980년 2차 석유위기 때 11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사상 초유의 유가 상승에는 복합적 이유가 겹쳤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우선 세계 석유 수요가 증가한 데다가 골드먼삭스 등 투자은행(Investment bank)들이 원유를 매수 해놓고 유가가 오를 것이란 보고서를 써냈다"며 "이에 투기 세력들이 달려들어 원유를 사놓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OECD는 유가 급등에 따라 한국 경제성장률을 4.3%로 하향 조정했다. 전년 전망과 비교하면 0.9%포인트 낮춘 것이다. 다른 국내외 기관들과 비교해서 매우 큰 폭으로 하향 조정한 수치다. 외국계 기관들은 골드만삭스가 5%에서 4.8%로 낮췄고, 리먼브러더스는 4.6%에서 4.3%로 조정했다.
고공행진한 유가는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 달성의 발목을 잡았다.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747 공약은 연평균 7% 성장, 소득 4만달러 달성, 선진 7개국 진입이라는 목표를 담고 있다.
가계 소비도 얼어붙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유가가 최고치에 오르자 물가상승률은 6%에 육박했다. 공급 측면에서도 관련 산업을 위축시켰다. 특히 자동차업계, 항공업계에 직격탄이 됐고 운수업자들 파업을 일으켰다. 치솟은 경유가격에 비해 운송료가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곡물가격 또한 끌어올렸다. 화학비료 생산, 기계영농에 원유가 필수적이어서다. 높은 가격 원유에 대한 대체로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많은 양의 곡물이 쓰이니 당연히 곡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2013년 110불대 고유가 회복세…경상수지·성장률 동반 하락
2008년 최정점을 찍은 국제유가는 하반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리먼 브라더스)가 터지며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해 7월 배럴당 142달러를 찍었던 유가는 연말 30달러대까지 폭락했다.
이후 2009년 60달러대, 2010년 90달러대를 거쳐 2011~2013년 110불대까지 다시 고유가 회복세를 보였다. 조상범 팀장은 "석유수요가 꾸준히 증가했고, 지나치게 떨어졌던 원유가격이 원래 가격으로 회복한 것"이라며 "당시 에너지 전문가들도 100달러 시대가 구조화되고 장기화 될 것이라 예측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2011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에 달했다. 유가는 정점을 찍었던 2008년에 비해 25% 낮은 수준이었지만 시장에 미친 불안 심리는 훨씬 더 컸던 것이다.
2008년엔 정책금리를 3.25%포인트나 낮출 정도로 조정 속도가 빨라 물가와 유가 상승이 시장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엔 미국 정책금리와 시장금리 격차가 3%포인트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즉 유가 상승이 금리 인상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 때문에 2008년에 비해 유가가 낮지만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110달러대 유가는 기업 경영 변수로 작용했다. 대한항공은 국제유가 1달러 상승 시 평균 3000만 달러(연간) 손해를 입었다. 제조업체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올라갈 때마다 원가부담이 t당 13달러 상승했다. 여기에 물류비 상승까지 더하면 유가 상승은 영업이익율 5% 내외 중소제조업체 경영에 큰 부담이 됐다.
이를 고려하면 유가 등락은 개별 산업체뿐만 아니라 물가와 경상수지, 성장률 등 거시경제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외 증권사 및 연구원 검토 결과를 종합해보면 2011년 고공행진한 국제유가는 한국경제에 ▲소비자물가 0.3~0.4%포인트 상승 ▲경상수지 40억 달러 감소 ▲경제성장률 0.3%포인트 하락 등 영향을 미쳤다.
올 하반기 80달러 조짐…"성장률 지나친 낙관론 금물"
최근에도 국제유가 상승곡선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4월 20달러선까지 폭락한 국제유가는 최근 세계적 수요 회복과 주요 산유국 생산량 동결 등으로 꾸준히 오르더니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다. 하반기엔 코로나 회복에 따른 수요 증대로 8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복수 기관 관측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최근 OECD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만에 2.8%에서 3.3%로 올린 것 두고 "코로나19 피해와 빠른 회복세에 힘입어 다른 나라에 비해 경기 진폭을 최소화했다"고 해석하는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OECD가 올해 코로나19 이전 수준 경제회복이 예상되는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지목한 것에 대해 "지표 하나에 일희일비할 상황이 결코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실을 직시한 뒤 고무적인 해석을 내놨다는 평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래 지난해 12월 소비를 중심으로 경기가 개선될 것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지만 코로나 대유행 완화가 더디면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여기에 국제유가가 오르며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를 악화시킬 조짐이 있는 데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차질을 빚고 있는 현재 상황이 반영되면 3%대 성장률 목표 달성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