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여정 하명법' 반발에도 대북전단살포금지법 통과
입력 2020.12.15 04:00
수정 2020.12.14 23:29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민주당 단독 강행 처리로 본회의 통과
대북 방송·전단 금지…헌법 기본권 '표현의 자유' 침해 지적
김여정 "쓰레기들 저지 법안 만들어라" 담화 발표 후 졸속 추진
국제사회서도 강력 비판…美 국무부 감시 대상 오를 가능성도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국내 탈북단체들의 대북전단살포를 맹비난한 직후 정부여당이 추진해 온 대북전단살포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국민의힘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14일 범여권 의원들의 단독 강행 처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들은 이날 오후 대북전단살포금지법 표결에 들어가기 앞서 진행되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의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종결 동의안을 188명 투표에 187명 찬성으로 통과시킨 뒤 곧바로 해당 법안 표결에 들어가 재석의원 187명 중 찬성 187표로 가결 처리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 의원들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법안 통과로 인해 앞으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 및 북한 인권 제고를 위한 전단지 살포가 전격 금지된다.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헌법상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한다는 지적이 쏟아졌음에도 끝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에 야당으로부터 '김여정 하명법'을 무리수까지 둬가며 통과시켰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비난을 산 부분은 지난달 6월 4일 김여정 부부장이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해가며 대북전단을 비난하는 담화문을 발표하자 통일부가 즉각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여야의 충분한 토론과 숙의 없이 졸속으로 통과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점이다.
당시 김 부부장은 "남측 당국자들이 쓰레기들(탈북단체)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통일부는 이 같은 내용의 담화문이 발표된지 4시간 여만에 당초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대북전단살포를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초래하는 행위"라며 법률 제정을 예고하는 등, "김여정의 하명에 따라서 하는 것 아닌가"라는 탈북단체의 반발을 자초했다.
문제는 이 법안이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에서도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내용이 북한 내 민주주의 증진을 통한 주민들의 인권 제고를 위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강조하고 있는 북한 인권과 인도주의 문제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의회 내 초당적 국제인권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크리스 스미스 하원 의원은 공개적으로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1일 성명문을 발표하고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가장 잔인한 공산 독재의 한 곳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정신적·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한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이라며 "한국 헌법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상 의무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스미스 의원은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한국의 민주적 가치에 대한 헌신도를 재평가할 것"이라며 "한국을 미국 국무부의 워치 리스트(감시 대상)에 올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말이며, 이는 아주 슬픈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또한 지난 5일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통과하면 한국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도주의와 인권 활동을 형사상 위법으로 만들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부가 김정은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질타의 목소리를 냈다.
인권 침해 요소 인해 국내 넘어 국제문제로 비화 가능성 커
신범철 "美, 北 주민 향한 정보 유입은 인권 향상 노력 판단
우리 정부가 막으니 문제제기 하는 것…부정적 인식 강해"
이처럼 이날 통과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자칫 국제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미국은 북한 주민들을 향해 정보가 유입돼야 한다고 보고 그게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이라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그것을 막는 행동을 하니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고, 국제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며 "인권을 존중하는 다른 나라들도 우리 정부의 행보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신 센터장은 "이 법안은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인한 위헌요소가 분명히 있다. 단, 국가 안보에 미치는 이익과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점에서 마찰소지가 있기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봐야 할 것"이라며 "다만 다른 입법과 달리 공청회 과정이 거의 생략됐다.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도 김여정의 관련 언급 이후 아닌가, 헌법재판소도 대한민국이 현재 지향하는 헌법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구체적으로 가려줘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권도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거세지고 있음에도 백신 확보에 정체를 겪고 있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와중에도, 앞서 처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에 더해 이날 '김여정 하명법'까지 강행 처리한 점을 정면으로 꼬집었다.
국민의힘 "민주당, 대외정책 실패하면 나라 망한다는 김대중 발언 새기길
코로나로 국정낭비할 시간 없다니…우리 이야기 들었으면 백신 구했을 것"
박휘락 교수 "北 요구했다고 토론 과정도 안 거치고 일방 통과…옳지 않아
다수결을 빙자한 독재…민주주의 기본 '소수 의견 존중' 지켜지지 않아"
이날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이 왜 코로나19로 엄중한 이 국면에 대북전단금지법과 국정원법 반대가 중요하다고 하는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을 인용해 설명하겠다"며 "국내정치와 국내정책을 잘못 선택하면 국민이 실패하고 그 정당은 선거에서 실패하더라도 나중에 만회할 기회라도 있지만 대외정책, 안보정책에서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다. 그 때는 나라가 망하고 없기 때문"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꺼냈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조기 종결시키고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처리를 강행하려는 민주당을 향해 최 의원은 "정부여당은 국정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야당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코로나 백신 확보에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백신 상황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거짓보고를 받는 것 같다. 과학을 믿지 않고 정치선동과 편가르기만 하니 정책을 그르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북한이 요구했다고 해서 여야간 충분한 토론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과되는 것은 맞지 않다. 제3자의 입장에선 우리가 마치 북한에 약점이라도 잡혔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라며 "대북전단은 북한 주민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고, 향후 남북협상 과정에서의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를 스스로 포기할 뿐만 아니라 여야의 합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민주당은 그저 법안 통과가 목적인 건지 아니면 오기의 발로인건지, 거대 의석을 통해 필리버스터도 무력화시키는 것은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닌 것 같다"며 "현재로서는 다수결을 빙자한 독재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소수의 의견 존중인데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