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업계 6년의 자정 기회 날렸다…"이젠 소비자보호"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0.10.13 06:00
수정 2020.10.12 10:27

2013년부터 중기적합업종 보호…후진적 시장구조 여전

거래 투명화 위한 제도 마련도 중고차 업계 반대로 무산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허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중고차 업계는 영세 사업자 보호를 위해 계속해서 대기업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시장의 신뢰성과 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리도록 유도하는 차원에서 대기업의 진출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진행 중인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에서 중고차 판매업이 제외될 경우 이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룹 내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나 기아차가 직접 중고차 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현대글로비스 등 다른 계열사에서 두 브랜드를 통합해 운영하는 방식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캐피탈과 공동으로 중고차 경매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중고차 판매업까지 통합하는 게 효율적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연간 224만대(지난해 기준)에 달하는 중고차 시장은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일 수 있다. 신차 시장(178만대)의 1.3배에 달하는 데다, 중고차 대당 평균매매가격이 1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연간 시장규모는 약 2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한국GM과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내 중견 완성차 3사의 매출액 총합인 16조7578억원보다 무려 5조원이 많은 규모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등 수입차 럭셔리 브랜드들이 자사 차량을 대상으로 인증중고차 사업을 영위하며 신차 브랜드가치까지 높이고 있는 데 반해 국산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는 발이 묶였었다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중고차 시장 진출이 절박하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 특히 국내 완성차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기존 중고차 업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대기업과 영세 사업자의 마케팅 역량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현대차그룹이 ‘인증중고차’의 개념을 도입해 현대차와 기아차, 제네시스 브랜드의 중고차 매물을 싹쓸이해버릴 경우 기존 중고차 매매업자들은 거래를 할 물건 자체가 사라진다는 게 중고차 업계의 주장이다.


그 경우 중고차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5만명 이상의 영세업자들이 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단순히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들과의 대결 구도로만 본다면 정부가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는 게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여론이 기존 중고차 업계의 편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4%가 ‘국내 중고차시장은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9.4%)가 부정적 인식의 주요 원인으로 ‘차량상태 불신’을 꼽았고, 허위·미끼 매물을 꼽은 응답자도 25.3%에 달했다.


중고차시장에 대기업 신규 진입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1.6%가 ‘긍정적’이라고 답해 ‘부정적’으로 답변한 응답자(23.1%)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번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이슈와 관련해서도 여론은 ‘허용’ 쪽으로 기운다. 현대차에 대해 우호적이라기보다 기존 중고차 업계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는 반응이다. 관련 기사 댓글마다 허위매물이나 강매 등으로 피해를 봤다며 중고차 업계를 비난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같은 소비자 불신은 중고차 업계 스스로 초래했다. 자정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중고차 시장은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 불가능했다.


기존 중고차 매매업자들에겐 6년간 보호받으면서 시장 구조를 개선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전혀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소비자들은 중고차를 구매하려면 성능조작이나 침수차, 허위매물에 속을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중고차 시장 정화와 거래 투명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중고차 업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원유철 전 자유한국당 위원은 지난 2018년 부정한 중고차 성능점검자의 처벌을 명확히 하는 ‘자동차 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2년 동안 국회 상임위(국토교통위)에 계류돼 있다가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중고차 업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보호받던 6년여의 기간 동안 선제적인 자정노력으로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거나,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가 확립되기만 했더라도 대기업의 시장 진입에 대한 여론이 달라졌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스스로 자정노력도 없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 도입은 거부하면서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아달라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계속해서 불법적이고 후진적인 시장구조 하에서 중고차를 구매하는 어려움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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