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⑥] '가·붕·개와 천룡인' 新 계급사회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입력 2020.10.11 04:00 수정 2020.10.11 05:31

추·국·향 거치며 등장한 20대의 풍자 코드

모든 규범 위에 군림하는 新 특권계층 의미

'개·돼지' '가·붕·개'와는 혈통 다른 종족

수저계급 보다 더 퇴행한 계급사회 반영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박근혜 정부에서 등장한 시대적 문제는 대물림 현상이었다. '수저계급론'으로 표현되며 단순한 부의 대물림을 넘어 사회적 지위까지 세습되는 현상에 대한 경종이 울렸다. '공정'에 대한 요구로 분출돼 수많은 시민들이 기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그리고 '특권과 반칙없는 사회'를 외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기존 계층을 대체하는 또다른 특권계층이 만들어졌을 뿐 현상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젊은세대에서는 '수저계급' 대신 '가붕개와 천룡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이를 정의하고 있다. 가붕개는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과거발언에서 시작된 말로 일반 서민대중을 지칭한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문장의 개·돼지와도 일맥상통하는 의미다.


'천룡인'은 가붕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등장하는 한 종족으로, 스스로를 창조주의 후예라 칭하며 모든 규범을 우습게 여기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타종족을 하등하게 여기며 노예로 삼는 등 갖은 패악질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도식에서 천룡인은 모든 규범 위에 군림하며 법과 정의, 도덕은 가붕개에게나 적용된다.


'가붕개와 천룡인'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시작으로 윤미향 의원, 추미애 법무부장관,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의 논란을 거치며 등장했다. 일반 서민대중이었다면 당연히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처벌을 받겠지만, 새로운 특권계층인 이들에게는 예외라는 것을 풍자하는 차원이었다. 추 장관 아들의 카톡휴가로 장병 부모들의 카톡휴가 신청이 잇따르자 "미쳐날뛰고 있는 가붕개들"이라는 자조적인 반응이 대표적이다.


수저계급론과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혈통과 DNA라는 요인으로 계급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수저계급론이 적어도 같은 '인간'이라는 전제를 두고 부에 따라 차별을 한다면, 가붕개와 천룡인은 애시당초 '종족'이 다르다. 이전 정부 보다 더욱 퇴행한 계급주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우원식 의원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법'은 민주당 인사들 사이 이 같은 특권의식이 내면화된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국가를 상대로한 배상청구로 끝날 일을 굳이 법으로 만들어 '민주유공자'로 규정하고 나아가 자녀에게 지위를 대물림하려는 것은 '세습특권'과 다름 없다는 점에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민주당 사람들의 문제가 자기들 운동 좀 했다고 자기 자식들이 특혜를 누리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라며 "열심히 민중 민중 떠들었으면 그 시간에 이 나라 경제를 위해 산업현장에서 일하다가 재해를 당해 가정이 망가진 이들이나 돌보라"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구 소련의 특권 관료계층으로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했던 '노멘클라투라'에 비유하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으로 두 번의 옥고를 치른 김철근 국민의힘 서울 강서병 당협위원장은 "80년대 대학생활을 한 대부분의 학생은 민주화를 열망했던 세대이고 또 지식인으로써 민주화가 의무였던 시대"라며 "민주화 운동이 선출직 훈장을 넘어 '부모찬스'로 쓰여진다는 것은 그 시절 민주화 운동 세력이 기득권화 됐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전통적인 기득권 계급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력이 들어오면 평등·정의를 얘기하면서도 결국은 자신들이 기득권을 대체해 향유하는 사건이 비일비재 했다"며 "기존 기득권에 가장 저항했던 586세대가 이제는 주류세력으로 등장해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권과 반칙은 우리만 하는 것이고 나아가 이를 법적·집단적으로 인정 받으려는 것은 이전 기득권 보다 더한 행태"라며 "특히 20대 등 젊은층의 시각에서는 이전과 변한 게 없고 기득권을 유지해 더 많은 것을 누리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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