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생활 일치' 최재형, '추석 차례상'에서 회자될까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0.09.29 05:00
수정 2020.09.29 06:02

6·25 전쟁영웅 부친 이어 3대가 '병역 명문가'

두 아들 입양에 소아마비 친구 업고 등·하교

진영 넘어 국민에 감동 안겨줄 '스토리' 시선

경기고·서울법대 나온 '엘리트'인 점은 '양날'

최재형 감사원장이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공직자의 사표로 주목받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최 원장을 잠재적인 차기 대권주자군의 일원으로 눈여겨봐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최 원장이 추석 '차례상 민심'에서 회자될지 관심이 쏠린다.


28일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에 따르면,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인 몇몇 자리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의 '스토리'가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한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단한 사람이더라"며 "'스토리 있는 인물'로 유명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보다 더욱 스토리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최재형 원장은 현 정권에서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인사검증을 거쳐 임명된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정권 청와대에서 첫 민정수석을 맡았을 때, 감사원장 후보자의 인사검증을 거쳐 '윤성식 카드'를 내세웠다. 그러나 윤성식 후보자는 자녀 이중국적 의혹 등이 제기되며 국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에서 부결됐다. 이 사건은 국정운영을 막 시작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적잖은 타격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에게 감사원장 후보자를 심혈을 다해 인사검증을 할 것을 지시했고, 조 전 수석이 검증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정한 후보자가 최 원장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 정권에 의해 임명됐는데도 '살아있는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감사원장으로서의 본분에 따라 공평무사·불편부당의 자세를 견지하는 게 정치권의 시선을 끄는 계기가 됐다.


최재형 원장은 현 정권 '탈원전 정책'의 핵심인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타당성을 감사하고 있다. 청와대가 김오수 전 법무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하라고 압력을 가했을 때에는 두 차례에 걸쳐 거부하기도 했다. 헌법 제98조 3항에 따라 감사위원 임명 제청권은 감사원장이 행사한다.


최근에는 청와대 비서실에 고강도 감사를 펼쳐, 감사 내용을 공표하고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주의 처분을 하기도 했다.


야권 관계자는 "찍어낼 소재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윤석열 검찰총장처럼 현 정권이 가만 놔두지 않고 이미 집요한 '적폐몰이'와 찍어내기에 돌입했을 것"이라며 "병역을 포함해 털어도 '먼지' 날 게 없었기에 정권으로서도 속수무책인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


최재형 원장의 집안은 '병역 명문가'로 꼽힌다. 최 원장의 부친은 6·25 전쟁의 첫 해전이었던 '대한해협 해전'에 참전한 최영섭 해군 예비역 대령이다. 백두산함의 갑판사관·항해사·포술사를 겸하던 최 대령은 1950년 6월 25일, 600여 명의 해군 육전대를 싣고 부산으로 향하던 북한의 무장 수송함을 격침하는데 기여했다.


최 원장 본인도 사법시험 23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한 뒤, 1983년 12월 육군 법무관으로 임관해 996일간 군복무를 하고 1986년 8월 전역했다. 장남은 조부의 뒤를 이어 2016년 4월 해군에 입대, 2018년 3월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노무현정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으로서 윤성식 후보자의 자녀 이중국적을 간과하고 검증을 마무리했던 만큼, 최 원장의 가족도 현 정권 들어 이뤄진 검증 과정에서 검증의 대상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최 원장은 아무런 결격이 없다. 최 원장은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둘에 아들 둘을 입양해 2남 2녀를 자녀로 두고 있다. 최 원장의 입양에는 부부의 신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연을 소개한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경기고~서울법대~사법연수원을 다니는 과정에서 소아마비를 앓은 후유증이 있는 동기 친구를 업고 다녔다는 등 얼핏 들어서는 믿을 수 없는 미담들이 많다"며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게 숱한 증인들이 있는 사실이라는 점"이라고 놀라워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7일 연방대법관 후보자로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고등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배럿 후보자는 동성애와 낙태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등 보수 성향이 뚜렷한 인물이다.


하지만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배럿 후보자의 자녀들이 동반한 가운데 열린 지명식에서는 진보 성향이 짙은 미국 언론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배럿 후보자의 일곱 자녀 중에는 세습독재와 군사 쿠데타, 지진으로 나라가 파탄난 아이티에서 입양한 흑인 유기 아동 두 명이 포함돼 있다.


또, 막내는 산전검사에서 다운증후군이 발견됐다. 주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낙태를 할 수 있었는데도 배럿 후보자는 평소 신념에 따라 출산을 했다. 신념과 실제 생활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비판적인 CNN조차 "배럿 후보자와 그 자녀들은 진영을 떠나 많은 이들에게 경이로움과 감동을 안겨준다"고 했다.


최재형 원장 또한 신념과 생활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지적이다.


보수 진영의 몰락에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는 등 신념과 생활의 불일치가 큰 영향을 미쳤고, 진보 진영에서도 이와 다를 바 없는 문제들이 무수히 지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 원장의 '스토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분명 감동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이같은 최재형 원장의 감동적인 일화와 현실정치는 별개의 문제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판사로 봉직하다가 감사원장이 됐다는 점에서 이회창 전 총재와 같은 '엘리트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나온 이 전 총재는 두 차례의 대선에서 상고 출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연패했다.


이 관계자는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지만 대권주자로 놓고 이야기한다고 본다면, 상대가 이낙연 대표라면 낫지만 초졸 소년공에 검정고시 출신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된다면 프레임이 어떻게 짜여지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또다른 중진의원도 "후보가 착하다고 표를 주는 유권자가 어디에 있느냐"라며 "선거로 선출직이 돼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라면 모를까, 대권주자로 분류하기에는 무리"라고 평가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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