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규제 없는 플랫폼이 만든 무책임한 ‘웹툰’의 탄생
입력 2020.09.23 00:00
수정 2020.09.22 17:47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적절한 ‘규제’의 필요성은 여러 차례 강조되어 왔다. 자체적으로 규율을 마련해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이를 중재할 수 있도록 협회가 마련되어 있다. 지금 미디어에서 이 역할을 하는 곳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인데, 언론·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미디어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 사후심의를 통해 이용자를 보호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등의 권익보호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웹툰에 있어서는 이런 규제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 모양새다. 최근에만 해도 선정성·여성혐오 문제가 수차례 불거지면서 대중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방송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기안84의 웹툰 ‘복학왕’ 속 일부 내용이 성행위와 여성 비하 등을 담고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앞서 기안84는 이전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편한 내용들을 웹툰에 담으면서 여러 차례 온라인상을 시끄럽게 했다.
기안84에 이어 작가 삭이 현재 연재 중인 네이버 웹툰 ‘헬퍼 2: 킬베로스’도 도마에 올랐다. 작품에서는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성폭력과 성 착취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독자들의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노인 여성 캐릭터에게 약물을 투입하고, 고문을 하는 장면도 문제가 됐다.
18세 이상 등급 제한이 있지만 성인이 보기에도 선정성과 유해성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이들은 여느 때처럼 사과하고, 연재를 중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유야무야 논란을 잠재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네이버 웹툰 역시 기안84의 논란이 일자 “서비스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과 시각, 변화하는 흐름 등에 대해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헬퍼2’ 논란에 대해서도 “심각한 수준의 선정성·폭력성이 문제가 되는 부분은 편집부 검토 후 수정하고 있다. 독자들의 반응과 의견은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으며 이를 작가에게도 전달 중”이라고만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는 것과 관련해 “마땅한 규제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웹툰의 경우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국 만화협회 웹툰 자율규제위원회에 규제를 맡겨왔다. 창작물의 특성상 자율규제가 더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한 결과다. 하지만 위원회는 법적으로 아무런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들은 오로지 웹툰을 연재하는 플랫폼 자율에 맡겨진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웹툰이 계속해서 자극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음에도 플랫폼 내부적으로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는 건 트래픽을 취하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웹툰이 트래픽 발생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제 웹툰 시장도 규모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으로 커졌다. 그만큼 영향력이 커졌는데 일부 작가들과 플랫폼의 도덕적 책임감은 여전히 초창기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규제’와 함께 매번 충돌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다. 창작의 영역을 보장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할지 애매하기 때문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만화계성폭력대책위는 “‘웹툰에서 모든 범죄를 묘사하지 말라는 거냐’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지만 만화는 ‘연출’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한다. 연출은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으며 여성을 성폭행하고 폭행하는 장면이 ‘포르노적’으로 묘사되는 건 범죄 자체를 희석시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