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기획┃대중문화 속 달라진 北①] '적대적' 존재서 '꽃미남 특수요원' 시대로
입력 2020.04.08 14:39
수정 2020.04.08 14:40
반공영화상도 존재…'쉬리', 분단영화 분기점
최근 들어 북한 소재 콘텐츠 봇물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남북 관계라는 특수성은 그동안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한이라는 소재는 언제나 유효했지만, 언제나 조심스러운 대상이었다. 국민 정서도 고려해야 했고, 정부의 눈치도 봐야했다. 그러나 대중문화 속 북한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음은 확실히 시대의 흐름이다. 미지의 적에서 친근한 이웃으로 그 모습은 점점 형태를 달리해 간다.
과거에는 사상이나 정치적 이념을 다루는 데 중점을 뒀다. 초창기 분단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은 1949년 나온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다. 여순사건(여수·순천사건)을 배경으로 대학 동창이자 처남 매부 사이인 두 주인공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그렸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는 분단 영화의 전성기였다. 전쟁의 비극과 부조리를 보여주면서 인간애를 부각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1955년 개봉한 영화 '피아골'은 휴전 후 지리산에 남은 빨치산의 인간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해 '반공 휴머니즘 영화의 모델'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이 금지됐으나, 마지막 장면에 태극기를 삽입한 후에 극장 개봉이 가능했다.
전쟁 후 한국사회의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적으로 그린 '오발탄'(1961), 전쟁 당시 해병부대의 이야기를 담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월남한 연인을 찾아 전쟁 중 귀순한 북한군 장교의 이야기를 담은 '남과 북'(1965) 등도 연이어 나왔다.
1970년대에는 전방위로 진행된 반공교육이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6년 대종상 영화제에 반공영화상이 등장해 1987년까지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다. 1973년에는 '유신영화법'이라 불린 영화법 4차 개정으로 영화진흥공사가 신설됐다. 시나리오 검열과 영화 완성 후 필름 검열을 실시하는 이중검열 제도를 유지하면서 영화 산업에 대한 강력한 검열을 진행했다.
'증언(1973),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아내들의 행진'(1974), '울지 않으리'(1974), '태백산맥'(1975), '잔류첩자'(1975),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등은 정부가 지원한 국책 영화들이었다.
1978년 개봉한 '똘이장군'은 어린이들의 애국심과 반공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 수령을 돼지로, 군인들을 여우·늑대·박쥐로 그리는 등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똘이장군'은 제3땅굴편(1978)과 '간첩 잡는 똘이장군'(1979) 등 시리즈로 제작됐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엔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 탓에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빛나는 작품은 있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짝코'(1980)와 빨치산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이다.
임 감독의 대표적인 분단영화로 꼽히는 '짝코'는 빨치산 가족을 둔 감독의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다. 한국전쟁에서 빨치산과 토벌대장으로 만난 백공산(김희라 분)과 경찰 송기열(최윤석 분)의 30년에 걸친 악연을 추적해 이념을 넘은 인간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임 감독은 “직접 체험한 전쟁의 상처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며 “당시 난 정부의 경계대상 1호였다. 선을 넘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고 밝혔다.
1990년대 들어 동유럽 공산 정권들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도 붕괴되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시야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분단 영화의 분기점 역할을 한 작품은 1999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쉬리'다. 최초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인 '쉬리'는 국내에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와 대적하는 한국 정보기관 요원의 활약을 다뤘다. 북한을 단순한 악의 축으로 그리지 않고, 인간적인 면모로 그려내는 동시에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을 정면으로 보여줬다. 영화는 무려 600만 관객을 동원해 '대박'을 터뜨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역시 남북 군인들의 우정을 소재로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보통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배경으로 초코파이를 나눠 먹는 남북병사의 모습에 관객은 호응했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석달 후인 9월에 개봉해 5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맞춰 북한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는 영화들이 잇따라 나왔다.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2005)은 남북한 사람들이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 이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 64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탈북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도 잇따라 나왔다. 탈북자 출신 해적과 남한 장교의 대결을 다룬 '태풍'(2005), 탈북을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풀어낸 '국경의 남쪽'(2006), 탈북민을 통해 북한 실상을 전한 '크로싱'(2008) 등이 주목받았다.
2010년 이후에는 간첩 소재 영화가 봇물 터지듯 등장했다. '의형제'(2010), '간첩'(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동창생'(2013), '용의자'(2013)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영화는 간첩을 적대적이고 무자비한 모습이 아닌, 연민이 들게 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뤘다.
특히 북한 특수요원들을 꽃미남 캐릭터로 그린 점이 눈여겨 볼 만하다. '의형제' 강동원은 판타지에 가까웠고,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은 등장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낼 정도의 비주얼이었다. 공유 역시 못 하는 게 없는 북한 최정예 특수요원이었다. 꽃미남 북한 특수요원 캐릭터는 '공조'(2016), '강철비'(2017), '백두산'(2019)으로 이어졌다. 현빈, 정우성, 이병헌은 겉모습에서부터 능력, 그리고 성품까지 완벽한 특수요원으로 활약했다. 반면 이들과 맞서는 남한 캐릭터는 어딘가 허술하고 유약했다.
꽃미남 배우들과 화려한 액션이 더해져 스케일이 커진 분단 영화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의형제'는 540만,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690만, '용의자'는 400만, '강철비'는 440만, '공조'는 780만, '백두산'은 820만을 동원했다.
TV 드라마는 액션보다 남남북녀(南男北女)의 사랑에 집중한다. MBC '더킹투하츠'(2012)는 한민국이 입헌군주제라는 설정 하에 남남북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KBS2 '스파이 명월'(2011)은 남한 최고의 한류스타 강우(에릭 분)와 그를 포섭해 북한으로 데려오라는 지령을 받은 북한의 미녀 스파이 명월(한예슬 분)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다뤘다. '아이리스'(2012)는 북한 최고 공작원 김선화(김소연 분)가 남한 국가안전국 요원 김현준(이병헌 분)을 좋아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탈북민을 주연으로 내세운 드라마도 있었다. SBS '닥터 이방인'(2014)은 천재 탈북 의사를, MBC '불어라 미풍아'(2016)는 탈북녀 미풍이를 전면으로 배치했다.
최근 남북 분단 소재를 다룬 작품들은 북한의 현실을 이전보다 상세하게 반영하려고 애쓴다. '강철비'는 남한 최신음악을 알고 있는 북한 부녀의 이야기를 넣었고, '백두산'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북한 내 퍼진 한류 열풍을 언급한다.
특히 '사랑의 불시착'은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을 속속들이 보여줬다. 박지은 작가는 북한 전방부대 장교·전방부대 사택마을에 거주했던 군관의 아내·보위사령부 간부·장마당 상인·꽃제비·밀수꾼·의사·유학생 출신 피아니스트·영화감독 등 수십 명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군의 탈북인들을 취재했다. 또 탈북인 작가와 북한말 전문가도 작품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