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부가 관리하는 사막에선 모래가 바닥난다
부광우 기자
입력 2019.10.18 07:00
수정 2019.10.18 04:54
입력 2019.10.18 07:00
수정 2019.10.18 04:54
시장 원리에 어긋난 정책 대출…부담 전가에 억울한 은행들
가계 빚 정책 실패에도 반성 없는 정부…자신부터 돌아봐야
시장 원리에 어긋난 정책 대출…부담 전가에 억울한 은행들
가계 빚 정책 실패에도 반성 없는 정부…자신부터 돌아봐야
"가계 빚이 늘어난 게 은행 잘못입니까"
정부가 내놓은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에 시중은행 관계자가 내뱉은 볼멘소리다.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꿔주면서 이자율을 2% 안팎까지 낮춰주는 금융 상품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불만을 토로하는 은행원들이 너무 야박하다는 말이 나올 법 하다. 서민들과 같이 좀 먹고 살자는 게 그리 억울하냐는 비난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다. 결국 정부가 가계부채 정책 실패의 부담을 은행들에게 떠넘기는 구조여서다. 이 때문에 안심전환대출은 시장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등장할 수 없는 상품이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 있다는 얘기다.
안심전환대출은 가계대출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고객에겐 가계대출이지만, 은행에겐 그렇지 않아서다. 굴러가는 방식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은행은 안심전환대출 고객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대신 주택금융공사에 대출을 넘겨야 한다. 그리고 주금공이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이란 이름의 채권을 받아오게 된다.
이러면 은행 입장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이듯 이자 수익을 뺏기게 된다. MBS 금리가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이자율보다 낮아서다. 금융권에서는 그 차이가 약 1.80%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은행들이 지난 달 취급한 가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평균 2.47%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니다.
은행들이 정말 손해나는 장사를 하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이유는 금융위원회의 존재다. 안심전환대출을 이끌어 온 금융위는 은행들이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대상이다.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금융당국의 요구에 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뿐이다.
어려운 금융 상품의 내용과 정치 공학적인 분석을 차치하더라도 안심전환대출은 여러모로 이상한 상품이다. 서민형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적어도 집 한 채는 가지고 있어야 넘볼 수 있는 대출이기 때문이다. 집이 없어 전월세로 사는 이들이 아닌, 이미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이 서민으로 분류되는 형태는 어떻게 봐도 납득이 힘들다.
은행이 돈을 빌려줬다고 해서 가계 빚을 불린 주범은 아니다. 시장은 낮아진 금리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맞춰 반응했을 따름이다. 라면 값이 올랐다고 편의점 주인이 모든 원망을 받아선 안 된다.
시장을 통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역설하며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튼 프리드먼은 '어떤 정책에 대한 판단은 그것이 가져온 결과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우리 정부가 가계대출을 옥죌 때마다 그 결과는 기형적인 풍선효과로 이어졌다. 정부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가계 빚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자 한다면 스스로 반성문을 쓰면 될 일이다. 밀튼 프리드먼이 남긴 또 다른 문장으로 글을 맺는다.
'정부에게 사하라 사막의 관리를 맡겨보라. 5년 안에 모래가 바닥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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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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