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천우희 "'나만 왜 이럴까' 비관하지 말아요"
부수정 기자
입력 2019.10.17 09:06
수정 2019.10.19 11:22
입력 2019.10.17 09:06
수정 2019.10.19 11:22
영화 '버티고'서 주인공 서영 역
"섬세한 감정 유지하려 노력"
영화 '버티고'서 주인공 서영 역
"섬세한 감정 유지하려 노력"
"매일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남들이 괜찮다고 해도 스스로 위축되죠."
'버티고'(감독 전계수·10월 17일 개봉)에서 위태로운 30대 직장인 서영 역을 맡은 천우희가 고백했다. 오르락 내리락이 심한 배우이기에 감정 기복은 더 심할 터다.
언제나 매끄러운 연기를 펼치는 그가 극한의 감정 연기를 보여준다.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이 창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내용의 감성 영화다.
주인공 서영의 감정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인 만큼 서영의 표정, 눈빛, 흔들림 하나하나가 스크린에 담겼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천우희를 만났다.
극 중 계약직 직원 서영의 일상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가족의 울타리는 무너진 지 오래고, 회사에서는 재계약 시즌 탓에 불안하다.
얼마 전부터는 고층 건물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서면 이명과 현기증이 심해지는 증상까지 생겼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그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사람은 몰래 사내 연애 중인 진수(유태오). 하지만 진수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를 지탱하던 모든 끈은 끊어져 버린다.
천우희는 서영의 힘든 일상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배우는 "인물의 전사가 풍부해서 감정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 비교적 수월했다. 서영이의 불안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강조했다.
최근 종영한 JTBC '멜로가 체질' 속 밝은 진주와는 전혀 다른 역할이다. 그는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을 느껴봐서 내겐 특별한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영화를 찍기 전 그는 "나름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었구나 싶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고 난 후 생각은 바뀌었다. "힘든 시간을 홀로 인내하는 건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느꼈어요.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려고 해요. 영화를 보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으셨으면 바랍니다."
'버티고'를 하기 전 많이 지쳤고, 연기에 대한 의욕 자체를 잃었다. 의기소침하고 두려워하던 그는 영화 속 관우(정재광)이 던진 "떨어지지 않아요. 괜찮아요"라는 대사에 꽂혀 힘을 얻고 용기를 냈다.
이 영화는 접근 방법이 달랐다. 예전에는 작품과 캐릭터의 완성도가 높았으면 바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작품이 연기적인 의욕을 가져다준 작품'이라는 마음에 스스로 부족한 부분도 보듬어줬다.
"제가 느낀 만큼 진심으로 연기하고,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고요. 이전엔 스스로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다음 작품을 선택할 때 조금은 편안해졌어요. 예전에는 장면마다 다른 방식의 연기를 보여주려고 했죠. 이번에는 강도의 차이를 줬습니다."
'버티고'를 통해 잘 떨어지는 방법을 터득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단다. "남들이 괜찮다고 해도 스스로 떨어진다고 느낀다.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해요. 바닥에 가라앉았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대신 '나 혼자만 왜 이럴까'라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멜로가 체질'에 이어 또 30대 직장인이다. 이전까진 힘든 캐릭터를 해온 그가 도전한 평범한 캐릭터였다. "내가 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는데 언제부턴가 일상적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어요.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자인데도, 전혀 다른 모습을 연기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죠."
클로즈업신도 자주 나왔다.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물음에 "큰 부담은 없었다. 내 모습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간 감정을 분출하는 연기를 해온 그는 이번엔 감정을 응축해야 했다. 천우희는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어느 연기가 더 어렵냐는 질문에는 "연기는 다 어렵다"는 말로 대신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서영이가 택한 선택지에 대해선 100% 공감했다. 천우희는 "일상에서도 영화보다 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며 "여러 상황이 서영을 코너로 몰고간다. 힘든 공기를 버티면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전했다. "서영인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을 거예요. 모든 사람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능숙하진 않잖아요. 이게 꼭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본인이 겪어보지 않은 이상 모르는 거니까."
전 감독과 호흡을 묻자 "감각적인 느낌과 내 연기가 잘 맞아떨어지는 게 관건이었다"며 "감정과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고 설명했다.
인물의 감정선으로 끌고 가고, 분위기 자체가 어두워서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법하다. "상영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있죠. 임팩트 있게 짧았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예술 작품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마다 느끼는 부분이 달라야 되죠. 어떤 관객은 내 얘기처럼 받아들이지만, 또 어떤 관객은 답답하게 느낄 수 있어요."
'멜로가 체질' 이야기도 나왔다. 이 드라마를 통해선 인간 천우희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는 설렘과 이질감을 느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서 오는 부담감이 동시에 왔다. "천우희가 한꺼풀 벗겨진 느낌이라 정말 재밌었어요. 제작진, 출연진과 협업이 좋았죠. '멜로가 체질' 같은 가벼운 작품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올해 '우상', '메기'(목소리 연기), '마왕의 딸 이리샤'(더빙 연기), '멜로가 체질'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드라마에서는 OST에도 도전했다.
지난해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시기에 주변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연기 외적인 것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려 해서 도전했다.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어요. 재미나 흥미를 찾을 수 있는 분야를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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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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