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풀고 뒤에선 조이고”…오락가락 정부 대책에 유통업계 ‘속앓이’
입력 2018.07.24 06:00
수정 2018.07.24 06:03
주요 경제부처는 규제 완화로 경제 성장 강조, 공정위는 현장조사로 압박
“공짜 규제 완화는 없다…규제 강화도 완화도 부담은 마찬가지”
정부를 바라보는 유통업계의 시선이 더욱 혼란스러워 지고 있다.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해 정부 한쪽에서는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지난 10일 기획재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과 함께 유통업계 투자 애로사항을 듣는 간담회를 열었다. 3개 부처 담당자들과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SSM 관계자가 참석한 간담회에서 정부 관계자들은 유통업계의 요구사항을 정책에 반영해 투자환경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16일에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12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간담회가 열렸다. 유통업계에서는 황각규 롯데 부회장, 이갑수 이마트 사장, 정찬수 GS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달 들어 두 차례에 걸쳐 4개 정부 부처가 참석한 간담회에서 정부는 유통산업을 고용 창출과 경제 성장의 중요한 한 축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최근 발표된 고용 및 경제 성장 등 각종 지표가 하락세를 기록하면서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선 셈이다. 이에 유통업계에서는 고용과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규제를 완화할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두 차례 간담회 모두 업계의 애로사항을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여서 규제 완화에 대한 업계의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산업부 간담회가 열린 1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가맹점주의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하고 올 하반기 프랜차이즈 등 200개 가맹 본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했다.
이어 다음날인 17일에는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 본사에 인력을 파견하고 조사를 벌였다. 업계에서는 편의점업계 1~2위를 다투는 CU나 GS25가 아니라 대기업이 운영하는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가 타깃이 된 것을 두고 유통 대기업에 대한 압박용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지난 3월 19개 가맹본부, 관련 단체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편의점업계가 내놓은 가맹점 최저수입 보장, 전기료 지원 및 유통 기한 경과 식품 폐기에 따른 손실 보전 등 상생방안이 가맹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정부 부처 내에서도 규제 완화와 강화 움직임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업계는 혼란스럽다는 분위기다. 경제 전반을 담당하는 주요 정부부처에서는 규제 개선을 약속했지만 실질적으로 규제를 실행하는 공정위에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도 부처 별로 규제에 대한 온도 차가 큰 것 같다. 정부 관계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때로는 사업 방향을 결정지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며 “솔직히 요즘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규제 완화라는 카드를 이용해 기업을 길들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규제 완화를 빌미로 기업들에게 더 많은 투자와 고용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들이 규제 때문에 고용을 늘릴 수 없다고 반발했던 만큼 이번 기회에 고용과 성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한다는 의미다.
규제를 놓고 정부 내 엇박자가 이어질수록 혼란스러움과 함께 불안감도 커지는 이유다. 현재에 비해 더욱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부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이면 규제가 완화된다고 해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대가 없는 규제 완화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정부가 요구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증가 등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현안이 많은데 여기에 고민만 한 가지 더 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