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불통과 참모들 감언이 정권 자멸 재촉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입력 2017.03.13 06:30
수정 2017.03.13 13:25
입력 2017.03.13 06:30
수정 2017.03.13 13:25
대통령, 가진 것 지키려 끝까지 버티다 모든 것 잃어
김종인, '빈 배'에 자신 태우면 비문연대 가라앉아
강제적 대통령직 박탈과 자발적 의원직 포기의 명암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당했다. 헌재는 이날 박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을 잃었고 빈손으로 12일 청와대에서 나와야 했다. 연금 혜택이 사라졌고 국립묘지 안장, 업적 기념사업도 불가능하게 됐다. 더 큰 손실은 불명예 퇴진에 있다.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낙인이 찍혀 선친의 명예까지 더럽혔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로서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조금씩 다가오는 박탈(剝奪)의 칼날은 피해갈 수 없었다. 그간 수차례 제기된 자진하야의 기회를 살렸더라면 이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직위를 지키기 위해 억척같이 버텼던 언행은 오히려 탄핵을 정당화하는 악재로 작용했다. 헌재의 선고요지를 보면,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언론에 의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실체가 처음 드러난 이후 박 전 대통령 측이 보여준 대응방식을 비판적으로 지적한 문구다. 대국민담화 등으로 사실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으며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했던 것 등이 적시됐다.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은 정당한 통치행위였으며 최순실 사익추구는 사전에 몰랐다”는 항변으로는 무마할 수 없는 지적사항들이다. 국가공무원의 수장으로서 법치를 솔선수범해야할 대통령이 법을 우습게 알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언행을 보인 것은 헌재 재판관들이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했을 것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이 공격적으로 헌재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헌재의 권위를 깎아내렸고 재판관을 향한 모독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것도 그런 결론에 나름 기여했다고 본다.
본인 불통과 참모들 감언이 정권 자멸 재촉
박 대통령은 탄핵 가능성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삼성동 사저 입주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고 탄핵 이후 바삐 움직인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은 '탄핵 대비' 지시로 참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것이고, 참모들도 구태여 대통령의 방심을 일깨워 본인들의 복지부동, 무사안일을 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의 비극은 최순실에서 청와대 참모들, 대리인단에 이르기까지 ‘용인술 실패’에 크게 기인한다고 할 만하다. 본인은 쓴소리 듣기를 거부하고, 참모들도 직위를 걸고 직언하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사건 초기에 대통령이 스스로 진상을 밝히고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향후 법치를 약속하고 헌재에 선처를 구했더라며 결과가 달리 나왔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선고문에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문구는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검찰·특검 조사를 성실히 받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받아들이고, 헌재 심판에도 성실히 응해야한다'고 충언하는 참모를 두지 못한 본인의 한계가 불행을 자초했다. 본인의 불통과 참모들의 감언이 정권의 자멸을 재촉한 셈이다.
김종인, 후보단일화 위한 용광로 되나
대통령이 가진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애써 버티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어가는 즈음에 정치권에선 가진 것을 미련 없이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탄핵일 이틀 전인 지난 8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가 탈당을 결행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스스로 버렸다. 비록 비례대표이긴 했지만 위상이나 권능 면에서 지역구 의원 이상이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재수는 다반사고 삼수, 사수도 마다않는 세태에 의원직을 스스로 내던졌으니 그 의도에 시선이 집중된다. 그는 탈당 직전(7일)에 국민의당 대권주자인 손학규 전 대표를 만났고 직후에는 바른정당 주자인 유승민 의원(9일), 남경필 경기도지사(10일)를 차례대로 만났다. 정당 차원에서도 9일 민주당 비문의원 6명과 조찬을 같이 했고,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가 김 전 대표의 행보에 뭔가 교감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의 동선을 살펴보면, 왼쪽에 있는 민주당 비문(非文) 진영에서 중도의 국민의당, 바른정당을 거쳐 오른쪽 비박(非朴) 한국당까지 몽땅 아우르는 ‘비문연대’를 연상시킨다. 여론지지도 1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친박(親朴)에 이은 또 다른 패권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나머지 세력들을 모두 규합한다는 구상이다. 1997년 대선 당시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대’처럼 합당이 아닌 후보단일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 명의 주자라도 '단독 플레이'에 나설 경우 18대 대선에서 나타났던 ‘49대 51대’ 구도를 재연하는 데는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독자출마 가능성이 높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까지도 연대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비문연대 성공을 위해선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연대의 기초작업을 위해선 ‘개헌’과 ‘연정’이 고리 역할을 할 것이다. 둘 다 문 전 대표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어젠다여서 반문연대의 성격과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이들이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이 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연대 대상 세력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좌에서 우로 너무 넓게 퍼져 있다. ‘경제민주화(상법 개정안)’, ‘노동 4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파견근로자보호법 개정안)’ 등 민감한 입법 현안에 대해선 찬반 입장이 뒤섞여 있다. ‘정치공학적’ 선거연대로 비춰지면 후보단일화의 흥행성을 잠식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질적인 대권주자들과 다양한 정파들을 상대로 게임룰에 합의점을 도출하고 '특설링'을 만들어 단일후보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용광로 기능이 필요하다. 온갖 잡고철을 한데 녹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 높은 쇳물을 뽑아내는 것과 같다. 이른바 ‘킹메이커’역할이다. 현재로선 의원직을 내던진 김 전 대표가 이를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등도 측면지원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빈자리에 본인 아닌 여타 주자들 태워야
다만, 한가지 걸리는 점은 김 전 대표 본인의 출마 여부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혜훈 바른정당 최고위원 등 주변에서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과거 노태우·김영삼 정권창출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은 ‘빈 배’를 띄웠기 때문에 킹메이커 역할이 가능했다. 본인이 출마 의지를 가졌더라면 배는 일찌감치 가라앉았을 것이다. 김 전 대표도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직하다. 본인이 출마를 강행한다면 용광로에는 불도 댕겨보지 못하고 거사는 틀어질 공산이 높다. 많은 비문(非文) 주자 중 한 사람으로 위상이 오그라들고 치열한 각축전의 당사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의원직을 던지면서 생긴 빈 자리에 자신이 아닌 비문연대의 기치를 실어야한다. 여타 대권주자들을 몽땅 태우고 단일화 고지로 끌고갈 생각을 해야 한다. 안철수 전 대표에서부터 홍준표 도지사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본인에겐 필생의 과업이 될 개헌을 성사시킬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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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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