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100세 시대③] 담철곤 회장의 승부수 지구촌에 '정(情)' 심다
박지수 기자
입력 2017.01.12 10:58
수정 2017.01.12 11:17
입력 2017.01.12 10:58
수정 2017.01.12 11:17
초코파이 철저한 '현지 맞춤형 전략'으로 해외 60개국 공략
핵심 브랜드가치인 '정(情)' 부각, 현지인 고유한 정서에 어필
"현지에 뼈를 묻어라."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철저한 '현지 맞춤형 전략'은 올해로 출시 43돌을 맞은 초코파이가 자사 최장수 브랜드를 넘어 60여개 국가 효자 수출 상품이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고 이양구 오리온 창업회장은 1956년 7월 25일 당시 국내 2위 제과업체였던 풍국제과를 인수해 오리온의 전신 동양제과를 세웠다. 2001년 동양그룹에서 계열분리하면서 오리온으로 자리 잡았다.
오리온에 따르면 초코파이 개발은 개인이 아니라 파이 개발팀, 회사 전체가 이룬 성과였다. 1970년대 들어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좀 더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과자를 원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오리온 연구원들은 새로운, 복합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개발 의지가 싹텄다.
오리온은 우연한 기회에 초코파이를 만들어냈다. 1970년대 초 식품공업협회(현 식품산업협회) 주관으로 선진국을 돌아보던 오리온 연구원들은 한 카페테리아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를 맛봤다. 초코파이 아이디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귀국한 연구원들은 2년여에 걸쳐 실험을 하면서 수많은 시제품을 만들었다. 수많은 시도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74년 4월 오리온의 독자 기술로 초코파이가 태어났다.
당시 초코파이는 무게 48g, 개당 가격이 50원이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150원으로 첫 선보였을 때만 해도 값이 비싸 많은 어린이들이 쉽게 사 먹지 못하고 군침만 흘렸다고 한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비스킷·마시멜로·초콜릿의 독특한 조합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초코파이는 출시 첫해 1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3년에는 제과업계 단일제품 사상 최초 누적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장수 비결에 대해 "마시멜로를 적용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맛이 히트 비결로 꼽을 수 있다"며 "수시로 바뀌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동안 끊임없이 초코파이 맛이 변화해왔다"고 귀띔했다.
초코파이는 일반 비스킷과 달리 특수한 제조 과정을 거친다. 초코파이가 인기를 끌자 출시 직후부터 모양과 포장 디자인을 베낀 제품들이 쏟아졌지만 오리온 초코파이의 독주를 막지 못한 이유다.
초코파이는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담 회장은 소수의 관리자를 제외한 생산·영업 직원의 99%를 현지인들로 채용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펼쳐 해외 공략에 나섰다. 1992년 8월 국내 기업 최초 중국 베이징에 현지 사무소를 냈다.
1997년 중국 북경에 공장을 세우고 해외에서 생산·판매를 시작했다. 담 회장은 초코파이 이름을 '좋은 친구'라는 뜻이 담긴 '하오리요우(好麗友)'로 바꿨다. 친구 간의 우정을 중시하는 중국인을 겨냥한 것.
오리온은 초코파이 포장지에 한국인의 감성코드이자 초코파이의 핵심 브랜드가치인 '정(情)'을 각 나라 사람들의 고유한 정서에 접목시켰다. 중국에는 인(仁)을, 일본에는 미(美)를, 베트남에선 '정'을 뜻하는 'Tinh'이라는 문구를 포장지에 담았다.
변화를 거듭하는 노력도 장수 비결 중 하나다. 오리온은 지난 2014년 10월 가격 인상 없이 초코파이 개당 무게를 35g에서 39g으로 늘렸다. 초콜릿도 약 13% 늘리고, 식감도 더욱 부드럽게 개선했다.
지난해 3월에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초코파이 첫 자매 제품 '초코파이 정 바나나'를 선보였고, 11월에는 '초코파이 정 말차라떼'를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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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기자
(pjs06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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