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죄를 지었다”는 말과 ‘프라다’를 신은 발
이선민 기
입력 2016.11.01 18:03
수정 2016.11.01 18:07
입력 2016.11.01 18:03
수정 2016.11.01 18:07
<기자수첩> 국민 앞에 처음 나서는 자리에서도 명품…최순실의 천박함
국민 앞에 처음 나서는 자리에서도 명품…최순실의 무감각함
최순실의 프라다 구두, 토즈 가방, 몽클레어 패딩, 알렉산더 맥퀸 운동화.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이후 연일 최 씨가 착용한 브랜드가 보도되고 있다.
최 씨가 프라다를 신었든 입었든, 가방이 토즈든 지방시든 중요하지 않다. 무슨 옷을 입는지는 그 사람의 자유고, 수천억의 자산이 있다는 사람이 명품 패딩을 입은 것으로 시비를 걸 생각도 없다.
하지만 지난 10월 31일은 국민적 지탄을 받는 대상이 처음으로 국민들 앞에 실체를 드러내는 날이었다. 국민들은 피의자가 검찰에 출두할 때 그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 옷차림, 취재진을 향해 하는 말 등으로 피의자의 심경을 파악한다.
그런 날 평소와 다름없이 프라다 구두를 신고 나왔다는 것으로 우리는 최 씨의 무감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 국민들이 지금 얼마나 분노해 있는지 전혀 몰랐거나,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1일 오후 3시 최순실 씨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부터 구형 에쿠스를 타고 서울시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도착했다. 검은색 모자와 목도리, 뿔테안경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차에서 내렸고 검찰청 내로 들어가는 내내 손으로 입을 막고 울먹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말씀 꼭 해주셔야 한다”는 취재진의 말에 최 씨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거듭 말하며 “국민 여러분, 용서해주십시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떤 법을 위반했는지 시비를 가리기 이전에 최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크고 작은 비리를 저질러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국민들은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는 대한민국이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라고 희망을 준 것과 달리 대통령의 측근이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것에 분노하고 있다.
지난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결코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에게 ‘자기비하 하지말라’ 말하고, 청년실업률이 최고치에 달하자 ‘중동으로 가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곁에 있던 정유라 씨는 어떤 생활을 했나.
처음에는 이화여자대학교 특례입학과 학사편의 의혹으로 시작했다. 이후에는 청담고등학교 특례입학 의혹, 출결 편의 의혹이 대두됐고 지금은 선화예술중학교에서도 3학년 수업일수 205일 가운데 86일만 출석했다는 자료가 나왔다. 모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정 씨는 일생의 반을 비리로 살아온 셈이다.
2016년 9월 28일 일명 김영란 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한 경찰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직접 담근 복분자주를 택배로 보냈다가 금품수수로 신고를 당했다. 한 70대 노인은 경찰에 감사 표시로 1만원을 건넸다가 과태료 처분 대상에 올랐다.
포상금을 노린 란파라치들이 식당 종업원, 택배기사로 위장취업을 하고, 국민들은 동창들끼리 만나는 술자리에서 진심이든 농담이든 친구사이에 ‘직업이 뭐냐, 우리가 직무연관성이 있느냐, 법에 걸리느냐’는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정부에서 초기의 혼란을 감수하고서도 공정한 사회를 위한 국민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김영란 법을 추진·시행했지만, 최순실 씨는 대통령의 이름을 이용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들로부터 800억 에 가까운 금액을 모으도록 주도했다.
국민들은 80억 원, 200억 원 등 최 씨가 의혹을 받고 있는 각종 사건들의 금액 규모에 SNS를 통해 그동안 누리과정, 무상급식, 생리대 지원 사업 등의 금액으로 왈가왈부해온 것이 허무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 씨가 엘리베이터에서 흐느끼며 말한 것처럼 정말로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처음으로 국민들 앞에 실체를 드러내는 자리에서 이렇게 무감각하게 명품 구두와 가방으로 치장하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수수하게 입으려고 해도 명품밖에 없었을 것’이라거나 ‘검찰에 출석한다고 5만 원짜리 구두를 사 신는 것이 더 가증스럽다’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국민여러분 용서해주세요”라는 말이 진심이었다면, 국민 앞에 나오는 자리에서 그 정도 성의표시는 했어야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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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민 기자
(yeats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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