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집안꼴, 대권주자-집권의지 없는 당의 말로
고수정 기자
입력 2016.05.17 23:46
수정 2016.05.18 06:28
입력 2016.05.17 23:46
수정 2016.05.18 06:28
친박계, 전국위 집단 불참…비대위·혁신위 출범 무산
정진석 리더십 타격…비박계 탈당·분당 가능성 솔솔
새누리당이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좌초와 김용태 혁신위원장의 사퇴로 혼돈의 상태에 빠졌다.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비대위는 물론 당의 혁신을 이끌 수장까지 비박계로 채워지자 친박계는 전국위원회에 불참하는 ‘초강수’를 뒀다. 총선 이후 국민 중심의 정치를 하겠다던 새누리당이 결국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계파 갈등’으로 낭떠러지에서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총선 이전부터 피어난 ‘분당’ 가능성도 힘을 얻고 있다.
새누리당은 17일 오후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원장 혁신위 구성을 위한 당헌개정안을 심의하고, 이어질 전국위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원장 선출안을 의결하려 했다. 하지만 상임전국위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면서 전국위도 자동으로 무산됐다. 홍문표 사무총장 권한대행은 상임전국위 무산을 선언하면서 “성원이 되지 않아 회의를 못하는 이 참담한 오늘의 현실을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가 없다”며 “헌정사상 이런 일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날 일정 무산은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친박계가 집단 보이콧을 한 결과로 해석된다. 친박계 일부 의원들은 측근에게 연락을 취해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불참을 종용했다는 말도 돌았다. 앞서 친박계 의원들은 비대위 인선과 혁신위원장 내정에 집단으로 불만을 표했다. 정 원내대표를 포함한 10명의 비대위원 중 7명이 비박계 인사에다가 혁신위원장마저 대표적인 비박계의 입으로 꼽히는 김 위원장이 내정됐기 때문이다. 중진 의원들은 물론 초·재선 의원까지 나서 “비대위와 혁신위 인선은 계파를 초월하라는 시대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우물안 개구리식 인선으로는 우물안 개구리식 혁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원점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 때문에 정진석 비대위 체제와 김용태 혁신위 체제가 시작도 전에 좌초할 것이라는 우려가 비박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당 비대위원에 임명된 이혜훈 당선자는 이날 오전 YTN 라디오 방송에서 “비대위·혁신위 임명안을 친박이 전국위서 부결시킨다면 당은 정말 미래가 없는 것”이라고 했고, 김영우 의원도 BBS 라디오에서 “지금 비상상황이라 혁신이 중요한데 아직까지도 계파의 망령에 사로잡혀서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며 안 된다”고 꼬집었다.
결국 비대위-혁신위 투트랙으로 총선 참패 이후 당 지도부를 재건하려 했던 정 원내대표의 구상에도 차질이 생겼다. 당장 김 위원장은 “국민에게 무릎을 꿇을지언정 그들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며 사퇴했다. 그는 “지난 이틀간 당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가졌다”며 “그러나 오늘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고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정 원내대표도 전국위 무산 분위기가 감지되자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국회를 떠나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 원내대표 측근은 일부 언론에 “친박의 자폭테러로 새누리당이 공중분해됐다”고 비난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결국 새누리당이 사당(私黨)임을 천명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친박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고, 극심한 계파 갈등을 불러 일으켜 자신들의 뜻대로 관철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총선 패배 이후 긴 시간 동안 ‘한 것 없다’는 비판을 받아온 새누리당이 한층 더 수렁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비박계의 대거 탈당과 함께 분당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피어오른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새누리당은 마비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친박계의 주장대로 비대위-혁신위 투트랙으로 가기로 한 상황에서 단지 인적 구성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날 일정을 무산시켰다면 심각한 문제다. 분당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도 “사실상 카오스”라며 “이렇게 계파 갈등이 지속된다면 새누리당이 정치적으로 사망선고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계파청산 하자고 해놓고 계파 갈등을 한 꼴이 됐다. 당 수습하라고 비대위 출범시켰는데 당 분란만 키웠다”고 지적했다.
총선 참패 이후 뚜렷한 대권 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신 교수는 “박근혜 정부 초기도 아니고 정권 말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뚜렷한 대권 주자가 없기 때문”이라며 “미래 권력이 있다면 그 쪽으로 힘을 합하고 모이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 원내대표의 리더십에도 큰 상처가 됐다. 범친박으로 불리는 정 원내대표가 친박계는 물론 소통을 중시하는 성격으로 비박계까지 다독이며 당을 재건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날 상황으로 인해 임기를 제대로 시작하기 전부터 흔들리고 있다. 오는 8월 말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항로 고비마다 친박계가 정 원내대표 체제를 흔들 여지가 농후해졌다. 황 평론가는 “친박계가 정 원내대표를 향한 일종의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며 “정 원내대표의 상황은 ‘셀프 공천’ 논란으로 지난 3월 20일 중앙위가 무산되면서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엄 소장도 “정 원내대표 체제는 시작도 하기 전에 힘이 빠져버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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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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