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개그는 왜 저씨개그와 다를까
입력 2016.03.08 13:09
수정 2016.03.08 13:12
<김헌식의 문화 꼬기>강요하지 않고 동의를 구하는 겸손함의 매력?
올드한 개그 코드가 전부인듯 했다. 그렇지만 의외로 반응이 괜찮다. 아재 개그는 아저씨들이나 부장님들이나 구사할 개그로 보인다. 부장님개그나 아저씨 개그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썰렁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썰렁개그라고도 불린다. 어떻게 보면 완전 재밌지 않다. 약간의 개그 코드지만, 단순 법칙에 따른다. 예컨대 말장난의 법칙이나 비슷한 단어 연결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두번째는 자신의 개그가 완전 재미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당연히 웃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렇게 웃어야 맞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나름대로 자기 자부심이 있기도 하다. 자신은 딱딱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권위나 위계에 기대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같은 사회적 위계가 서 있는 사회에서는 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회적 위계 상 윗사람이 개그나 농담을 하면 웃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불문율이다. 그런데 한 두번 웃어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부장님 개그나 아저씨 개그는 기피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들에게 눈물겨운 면도 있다. 나름 열심히 노력을 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점 때문이다. 또한 부장이나 아저씨 이상 되는 이들은 애써 이런 개그를 구사할 필요가 없다. 대표나 임원이 이런 개그를 남발할 이유는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중간관리자들이 사람들을 이끌기 위한 노력의 차원에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인내할 수만은 없는 측면이 있겠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장기간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를만큼 자기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구성원들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면 아재개그가 이전의 비슷한 개그들과 어떻게 다른 지 정리를 해볼 차례이다. 우선 아재개그는 이름 자체가 다르다. 아재 개그는 이름 자체가 친근하다. 아재는 아저씨의 사투리지만, 그 사투리가 인간적이고 따뜻 소박한 느낌이 있다. 아저씨가 개저씨로 타락한 상황한 상황은 아저씨라는 말이 이제 한계에 다달아 있음을 이미 짐작하게 했다. 또한 아재 개그는 겸손하다. 오세득 쉐프가 아재개그를 구사할 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썰렁할 수 있다고 말하고, 맞지 않는 웃음 코드일 수 있음을 말한다. 전문 예능인이 아니어서 더 웃음을 유발한다.
만약 연예인들이 이런 개그를 했다면 썰렁함만 더 할 뿐이겠다. 더구나 아재개그는 강요하기 아니라 동의를 구한다. 쉐프는 위계구조의 상위에 있지도 않다. 수평적 대등한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만든다. 선택을 받지 않을 수 있음을 열어둔다. 당연히 이 개그 코드에 대해서 동의를 할 수 있는 이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개그맨들 예컨대 박영진이나 신동엽이 이런 아재개그를 구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때문에 역시 일방적으로 자신의 개그 코드를 강요하는 듯한 부장님 개그나 아저씨 개그와는 달라지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 개그 코드를 일방적으로 구사하지만 이런 방송에 등장하는 아재 개그 구사자들은 오히려 시청자들을 맞춰 주려고 노력을 한다. 자신이 스스로 웃음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자신의 웃음 코드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음을 자기폭로하는 의식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오히려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사는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그를 하는 주변의 부장님이나 아저씨들의 개그와는 태도가 다른 것이다.
더구나 그런 개그가 듣기 싫다면 채널을 돌리거나 다른 영상을 찾아 언제든지 떠나면 된다. 콘텐츠는 선택사항일 뿐 인내심 테스트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거꾸로 이런 미디어속의 아재 개그는 봐줄만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이런 개그가 다시금 유행을 한다면 그렇게 흥미를 유발할수 있을 지 의문인 것은 사실이다. 아재 개그는 어쩌다 한번 볼 때 의외의 재미를 준다.
만약 아재개그가 시도때도없이 스마트폰에서 나온다면 피로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일상 생활에서도 가끔씩 들을 때 부감감이 없을 뿐이다. 그것도 선택할 수 있고, 상대방을 위한 존중의 느낌이 들 때 부장님 개그나 아저씨 개그도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탈권위적이고 배려의 개그코드라면 아무리 썰렁해도 가끔씩은 그 노력이 가상하니 웃어 줄만도 하다. 더구나 겸손한 태도라면 더욱 더 그렇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