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신당 출범에 '주도권' 빼앗긴 천정배

이슬기 기자
입력 2015.12.23 09:36
수정 2015.12.23 09:38

'인물난' 겪던 천정배 신당, 안철수 탈당에는 현역의원 줄이어 동참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한 가운데, 기존의 신당 주도권을 주고 있던 천정배 의원의 입지가 좁아지는 형국이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을 공식선언하고 본격 행보에 나서면서, ‘비(非)새정치민주연합’ 세력의 무게중심이 ‘안철수 신당’으로 단숨에 옮겨가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신당계의 독보적 존재로 입지를 다져오던 천정배 의원은 향후 야권 신당 간의 통합 과정에서도 안철수 의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공산이 커졌다.

당장 신당 합류 속도에서부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호남의 선두 주자로 떠오른 천 의원의 경우, 이미 수개월 전부터 창당 작업에 돌입해 내년 1월과 2월 각각 전북도당 창당대회, 중앙당 창당대회 일정을 굳혔다. 문제는 또다른 신당세력인 박준영 전 전남지사와 박주선 의원 측 외에는 무게감 있는 인물의 합류 선언으로 이어지지 않아 다소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렀다. 인물난이 신당의 추진동력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 13일 안 의원이 탈당한 직후, 모든 이슈는 ‘안철수 신당’에 집중됐다. 일단 안 의원의 탈당 나흘만에 문병호 의원 등 새정치연합 현역 의원 4명이 동반탈당을 감행하며 ‘안철수 신당행’을 선언했고, 곧바로 김한길 전 공동대표와 박지원 의원의 거취문제도 연일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 권은희 의원은 오는 25일경 탈당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밝혔고, 그 외 대다수의 호남 의원들도 신당행을 고민 중이다.

이처럼 호남 신당이 범람하는 속에서 합류를 망설이던 인사들이 ‘안철수 신당’으로 재빠르게 눈을 돌리면서 천 의원이 쥐고 있던 주도권이 안 의원 측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천 의원은 앞서 “새정치연합 공천 탈락자와는 같이 할 수 없다”며 반(反)문재인·호남계 인사들의 합류를 일찍이 거절하는 모양새를 취해왔다. 하지만 세 결집이 절실한 때에 천 의원으로서도 현역 의원들의 대규모 이동을 무시하고만 있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간 안 의원에 러브콜을 보내던 천 의원도 편치 않은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김동철 의원이 탈당 후 안 의원 측에 합류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새정치연합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받아 내년 총선에 나오는 것을 상정하고 새 인물을 모아서 경쟁구도를 만드는 것이 내 의도였고 그렇게 공약했다”며 “그런데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나와 신당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22일 전남도의회 기자회견에선 안 의원의 ‘독주’를 정면 겨냥해 비판을 쏟아놓기도 했다. 천 의원은 이날 "안 의원이 탈당한 후 안 의원과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며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 공동대표 시절 주도한 인재영입과 공천과정에서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상실했다”고 날을 세웠다. 천 의원은 앞서 지난해 7.30 재보선 당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권은희 후보를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하자 이에 반발하며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바 있다.

특히 안철수 신당과의 연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안 의원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사고를 하는지가 앞으로 신당 창당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본다"며 "아직까지 안 의원과 연대에 대한 의견을 나눈 적은 없고, 일단 국민회의 창당을 내년 1월까지 완료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는 독자적인 ‘천정배 신당’을 창당함으로써 쉽사리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선거연대 등 전략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주도권’ 확보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앞서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과 총선 연대는 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해 "지금이야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이 밉고 반감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렇게 가면 되겠느냐"면서 "내년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고 대선에서 이기는 야권은 식물정권이 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안 의원이 주장한 ‘3자 구도 하 총선 승리’와 관련해 “과거에는 지역주의가 강했지만, 지금은 호남성향당이 비호남성향의 1대1 구도가 야권에 유리하다”며 “안철수 의원 지역구(서울 노원병)도 정의당 후보가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노회찬 전 의원이 출마할 경우 안 의원 자신의 당선도 장담할 수 없음을 경고한 셈이다.

한편 두 사람은 ‘연대 가능 세력’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천 의원은 안 의원을 향해 “연대해야 승리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지만, 새정치연합 소속 광주 지역 의원들에 대해선 ‘혁파해야할 대상’으로 규정한 바 있다. 안 의원의 경우, 연대보단 자신의 독자세력화가 우선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지만, 지난 21일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부터 김동철·문병호·유성엽·황주홍 의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즉 천 의원에게 새정치연합 호남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경쟁상대이자 ‘혁파대상’인데, 이들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경우, 연대 명분 자체가 깨져버리는 상황이 된다. 이에 대해 천 의원 측 관계자도 이같은 이유를 들어 “천 의원이 ‘곤혹스럽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라며 천 의원이 향후 연대를 두고 깊이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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