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들이 있는 두만강 너머에 절을 하고 또 했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5.09.28 08:53
수정 2015.09.28 08:55

<추석 특집 단편소설-가족②>아들 탈북시키려다...

"아버진 당과 조국을 배반" "차라리 에비에게 욕을 했으면"

4

한반도의 북단과 맞닿은 곳인데 한낮의 땡볕은 서울과 마찬가지다. 오래된 민 교수의 승용차는 차라리 창문을 열고 달리는 게 나을 정도로 에어컨이 시원찮다. 북한 회령으로 건너가는 삼합의 두만강 교두 부근에 이르자 민 교수가 브레이크를 밟는다. 파란 페인트를 칠한 시멘트블록 담장 옆이다. 예전과 다름없이 담장은 파란색보다는 하얀색이 더 많을 만큼 퇴색돼 있다. 한국 시골이라면 옛날 새마을운동의 흔적이라고 단정할 것이다.

“삼합 개들이 형을 보더니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네요.”

시동을 끄지 않고 혼자 차에서 내린 민 교수가 지나가는 누런 개를 보면서 성재에게 말을 건넨다. 성재는 한 뼘 남짓 차창을 내리고 개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 개가 힐끗 쳐다보고는 담장 옆 골목 안으로 달아난다.

“가둬 기른 서울 개는 안 먹어. 개고기 맛은 역시 삼합 똥개가 일품이야.”

성재는 담장 안의 주택으로 걸음을 옮기는 민 교수에게 대꾸한다. 대문이 없는 주택의 마당 한편에는 일정하게 자르고 쪼갠 자작나무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장작 더미 옆 텃밭에서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쓰고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민 교수가 다가가 뭐라 말을 건다. 벼르던 대로 특별한 점심을 준비시키는 모양이다.

민 교수는 옛날 오랑캐령이라고 부르던 강변의 야산으로 다시 차를 몬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하늘 아래로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 사이를 줄로 이은 것처럼 높낮이가 크지 않은 산맥이 모습을 드러낸다. 연이어 청색 지붕을 한 빌딩들이 드문드문 박힌 회령 시가지가 산 앞으로 솟아오른다. 몇 년 전만 해도 건물들이 거무칙칙했는데, 최근에 일률적으로 페인트칠을 했는가 보다. 산과 시가지를 지나온 하천 양 옆으로 누른 색을 띠기 시작한 논밭이 펼쳐졌고, 하천의 북단에 중국 쪽 산이 비친 두만강이 흐른다. 두만강 교두에는 시내 빌딩들과 마찬가지로 청색 지붕을 한 북한세관이 보인다. 중국에서 북송된 탈북자들은 저 세관 앞에서 중국 공안에 의해 북한에 인계되곤 했다. 그들은 세관서 시내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줄지어 걸어가면서 북한 보안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성재는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사진기자와 함께 이 산 소나무 숲에 잠복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안내를 맡은 민 교수가 한사코 망원렌즈 앞을 막아서는 통해 촬영에 실패했다.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 중국 안전부가 자신을 가만 놔두겠느냐고 정색하고 투덜댔다. 정상에서 차에서 내린다. 강바람이 얼굴이며 목을 시원하게 간질이며 지나간다.

“형이 여기로 건넜어? 그래서 오자고 한 거야?”

성재가 형호의 소원이라도 들어 준 것처럼 형호에게 묻는다.

“아니. 저 상류 쪽 남평이란 데로.”

형호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가슴에 박힌 옹이를 토해내려는 듯 한숨이 깊다. 그리고는 심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해도 그리 되지 않으니 어쩌겠느냐는 듯 멋쩍게 입 꼬리에 웃음을 매단다. 세 사람은 정상에 있는 망강각(望江閣)이란 석비 옆의 정자 안으로 들어가 벤치에 앉는다. 단독무장을 한 변방대 병사 둘이 정자 옆 소나무 그늘 속에서 불쑥 나타나 몸에 밴 경계의 눈초리로 그들을 살핀다.

“그럼?”

되묻는 성재에게 형호가 입을 열려다가 병사들을 흘끔 훔쳐본다. 병사들은 원래 그러고 있었다는 듯 소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꺼내 물고 있다.

“저 쪽…….”

형호가 또 한숨을 내쉰다. 성재는 그가 가리키는 회령시내를 둘러싼 산의 서쪽 기슭으로 눈길을 옮긴다.

“아들이, 부모님이 저 하늘 밑에 있대. 유선탄광이라고. 지도를 보니까 여기서 10킬로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성재가 눈동자를 키운다.

“저 하늘 밑에 우리 가족이 있다고.”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다 하늘 아래 있어.”

핀잔을 섞어 성재가 말을 받는다. 형호가 연변에 오자고 한 목적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짐작하면서. 말은 까칠하게 했어도 성재는 가슴이 찌르르 아려온다. 아무리 시도해도 가족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끝으로 그가 가족에 대해 입을 다문 게 그러고 보니 벌써 두어 해가 흘렀다. 그 사이 그는 병원을 들락거리며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했다. 성재의 관심이 거기에 쏠린 틈에 성재가 모르는 큰 변화가 있었던가 보다. 그가 나약해지는 게 싫어 의도적으로 가족 이야기를 피했지만, 그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해진다. 천천히 이어지는 그의 말에 성재는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인다. 민 교수는 자신이 들으면 정보기관에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는지 슬금슬금 차로 도망친다. 운전석에 앉아 의자를 뒤로 눕히더니 이내 음악소리가 새어 나온다. 군가 같은 북한노래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올해 봄 형호는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드디어 아들과 연락이 닿았단다. 아들은 휴전선 인근지역에서 군사복무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가 평양을 탈출하기 직전 그와 이혼을 했고,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혼하지 않으면 남편을 따라 당신도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보위원이 이혼서류를 내밀었을 때, 이악스럽게 풍진세월을 견뎌온 아내는 가야 할 곳이 적어도 편벽한 추방골인 줄 즉각 눈치챘을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공개 비판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남은 가족을 위해서는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누군가는 감시망 밖에서 가족을 위해 힘을 써 줘야 한다는 점을 아내는 똑똑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브로커는 아들과 닿는 줄에 있는 모든 간부들에게 돈을 쥐어 주고 아들을 중국으로 빼냈다.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듯 여기까지는 행운이 피해가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 선양에 도착한 아들이 고장 난 자동차처럼 더는 꼼짝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야만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겠다고 떼를 썼다. 어느 정도 위험을 벗어나니까 가슴에 사무쳤던 아버지에 대한 은원과 애증이 드러났을까? 아들의 고집을 형호는 응당한 일로 받아들였다. 부자지간의 확인 같아서 도리어 기뻤다. 하지만 브로커는 신속히 제3국으로 이동해서 위험을 벗어나야 한다며 안 오는 게 좋겠다고 만류했다. 형호는 기쁨의 한편에서 숲에서 스며 나오는 서늘한 냉기처럼 몸을 감싸는 소름이 느꼈다. 하지만 선양으로 갔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혼허강 다리를 건너 도심 속으로 들어갈 때 브로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울려 나왔다.

“오지 말라요. 빨리 다른 도시로 도망치라요.”

“왜요?”

“집 주위에 북한 남자들이 와 있어요. 선생님을 잡으려고 하는 게 틀림없슴다.”

몸에 남아 있던 냉기가 일시에 빙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서울을 떠날 때 오래 전 형호를 담당하던 경찰관의 당부대로 선양 주재 한국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황급히 달려온 영사와 함께 아들이 은신했다는 따둥취라는 지역의 어느 아파트 주변으로 갔다.
백화점 앞 인파 속에 몸을 숨기고 대로 건너편의 아파트를 살폈다. 푸릇푸릇 막 봄빛이 오른 버드나무와 햇볕을 튕기는 유리창, 베란다에 걸린 녹슨 위성안테나, 빨래 따위가 보였다. 그곳으로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영사가 버드나무 쪽을 향해 눈짓을 했다. 버드나무 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아파트 외부에 설치된 비상계단에 젊은 사내들이 세 명이나 앉아 있었다. 긴장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곧장 영사관으로 오라는 영사의 권유를 뿌리친 터였다. 이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영사관에서 아들과 통화를 했다. 아들은 보고 싶다고 했다. 어서 오라고 했다. 그 두 마디만을 반복하며 울었다. 그러다가 당신은 조국과 당의 배신자라고 소리쳤다. 가정을 박살낸 악마라고 욕을 퍼부었다. 이제라도 조국에 용서를 빌고 같이 살자고 사정했다. 지척에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상태에서의 대화는 형호의 밭은 숨소리로 끝이 났다.

습기를 품은 바람이 정자 옆의 소나무 가지를 흔든다. 두만강을 건너온 산비둘기 한 마리가 소나무 꼭대기에 위태하게 앉는다. 서울에 때늦은 태풍이 올라올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영향을 미치나? 성재가 산비둘기에 시선을 주자 형호는 성재가 자기 이야기에 지루함을 보이는지 살피려는 듯 흘깃 쳐다본다. 눈에 어룽어룽 눈물이 고였다.

“그런데 왜 형네 가족이 저기에 있어?”

형호가 무색해 하지 않도록 성재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내색을 한다. 마음속으로는 형호가 흐물흐물 무너지는 걸 못내 못마땅해 하면서. 사장이 딱할수록 더욱 정신을 굳세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걸 참으면서.

“훗날 브로커가 자세한 경위를 알아냈어. 아들은 애초부터 군인이 아니었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평양에서 추방돼 7년째 저기 유선노동자구 유선탄광 탄부로 생활하고 있다는 거야. 보위부가 군인으로 위장시켜서 중국에 내보내고 줄곧 미행했다는 거야.”

“형수는?”

“아들이 알 텐데, 그 녀석을 못 만났으니…….”

“개새끼들!”

성재가 욕설을 내뱉는다. 형호에게 분노의 힘이라도 좋으니 힘이 실리기를 바란다.

“이 바람이 저 곳을 거쳐서 올까?”

긴 이야기를 마무리한 형호가 회령 뒷산으로 시선을 돌리며 묻는다. 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모멸감이 얼굴에 진하게 번져 있다.

“곧 북풍이 불기 시작하면 아들 냄새가 서울에까지 번질 거야.”

감정의 골에서 형도 어서 빠져 나오라는 듯 성재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고 보니 평양 집에 가족이 모여 추석 송편을 먹은 게 10년이 넘었네. 아들이 가정을 박살낸 악마라고 욕하던 게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한 말이 아니고 아들의 가슴에 고여 있던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말이 지금 날 마구 괴롭혀, 라는 말까지 성재는 들은 듯하다. 그때 깜박 잊었던 정희와 정민이 성재의 머릿속을 다시 차지한다. 자신도 모르게 성재는 벤치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화가 난 건 아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울컥 치밀었다. 추석날은 차례를 같이 지내야 하는데, 그 전에 화해하긴 글렀지?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실제로 화가 나서 머리칼이 쭈뼛 선다. 형호는 자신이 겪은 비극적 상황을 개탄해서 그러는 줄 아는지 가만히 있다. 성재는 아들한테 욕을 얻어먹은 일을 형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길 왜 털어놓았는지 모르겠다고 즉시 후회했고, 이미 주어 담을 수 없는 일이 된 걸 안 뒤에는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그 말고 누가 있겠느냐고 자위했다. 아마 술기운에 가슴이 부풀대로 부풀어 맹꽁이 배 터지듯 퍽 터졌을 것이다. 그날 성재는 정희와 정민이 오랜 세월 가슴에 고였던 말을 자신에게 내뱉은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 성재와 똑같은 말을 하는 형호가 성재의 그날 이야기를 상기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산색이 차츰 검게 변해 간다. 바람이 세졌다. 느닷없이 산 위에 얹힌 먹구름이 산의 형체를 위로부터 빠르게 지우고 있다.

“형, 비가 오려는가 본데 얼른 내려갑시다. 고기가 다 익었겠어요.”

민 교수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친다. 벌써 빗낱이 정자의 기와지붕에 둑둑 든다. 소나무 밑에 앉은 병사들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5

푸른 담장을 따라 두 이랑으로 이어진 텃밭에서는 해바라기와 귀리, 고추, 토마토 따위가 익어가고 있다. 해바라기들은 이젠 해를 바라보기가 지겨운 듯 고개를 푹 꺾었다. 세 사람은 푸른 담장 집 마당 한편에 차양을 치고 들여 놓은 평상 위에 둘러앉았다. 가운데에는 매화 가지에 앉은 파랑새가 그려진 빨간 호마이카 상이 놓였다. 뜨거운 것에 데였는지 수명이 다 되었는지 호마이카가 돌멩이에 맞은 유리창처럼 쩍쩍 갈라졌다.

오십 대 중반은 돼 보이는 집 주인아주머니가 김이 솟는 큰 양푼을 가슴께에 바쳐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온다. 빗방울인지 땀방울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물방울이 얼굴에 송골송골 맺혔다. 상 위에 올려 놓은 양푼에는 손으로 찢거나 분지른 개의 다리며 갈비 부위들이 수북이 담겼다. 아주머니는 성재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성재가 기자시절 몇 번 왔던 집이다. 이렇게 싸고 푸짐하게 주는 집이 서울 변두리에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드나들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오늘 밤엔 놀자고요. 이거 먹고 회춘해 봐요. 여행엔 그런 맛이 있어야지.”

성재가 고기가 너덜너덜 붙은 뼈 하나를 맨손으로 집어 형호에게 디민다. 식욕이 돋는지 그도 맨손으로 고기를 받는다. 위가 없어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이지만. 암을 발견하기 전엔 냉면 못지 않게 개고기를 좋아했다. 항생제를 과다 투여하여 사육한 개라고 성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도 별걸 다 따진다는 듯 먹곤 했다. 입에 고기를 대면서 그는 성재를 빤히 바라본다. 넌 태평하구나, 라고 말하는 듯하다. 성재의 기분은 무시한 채 자기만 주책을 부렸다는 것처럼 살짝 웃음기를 비친다. 나도 두통이 천근만근이야. 하지만 내가 형과 부화뇌동하면 어찌 되겠어? 성재는 속으로 대꾸한다.

“이래봬도 나, 생산능력이 있어.”

형호가 뜻밖에 기분을 추슬러야겠다는 듯 성재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는다.

“또 낳아서 어쩌려고요?”

민 교수 역시 뼈 하나를 손에 쥐고 말한다. 세 사람은 고춧가루를 듬뿍 푼 양념 간장에 고기를 찍어먹으며 하하하, 공허한 웃음을 날린다.

“강 건너에 있는 아들 이야길 하시던가 보던데, 안 됐어요. 저도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어요.”

한참 뒤에 민 교수가 덧붙인다. 인사치레라고 여기는데, 가만 생각하니 그도 딸 인애 때문에 있는 속 없는 속 다 태우고 있다. 형호가 민 교수 말의 의미를 되새기듯 고개를 끄떡인다.

“형이 제일 부러워.”

민 교수가 성재를 넌지시 바라본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성재는 친구들과 앉은 자리에서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정희와 정민이 자랑을 슬쩍 끼워 넣었다. 전혀 겸손하지 않은 태도였지만, 겸손한 표정을 지으려 애를 쓰면서. 그때 성재는 한없이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연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나가 돈벌이에 나서자 지식인들조차 막노동일꾼 대열에 끼어 한국에 많이 왔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출 수 없던 민 교수는 성재에게 교환교수 자리를 찾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8년 전쯤의 일이다. 친분이 있는 서울의 몇몇 교수가 큰소리치며 이미 약속한 바 있는데,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자신과 무관한 분야라서 성재는 딱 잘라 거절했다. 서울에 돌아오니 그게 마음에 켕겼다. 노력이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민 교수와 전공이 같은 지방 국립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에게 청을 넣었다. 마침 그가 국책프로젝트를 착수하는 중이었다. 그는 다른 대학에 비해 훨씬 긴 2년의 임용기간과 방 2칸짜리 아파트까지 보장해 줬다.

민 교수는 아내도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식당에 취업시켜 벌 때 벌자는 속셈이었다. 아내는 출국수속에 필요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간암 말기였다. 아무런 전조증상이 없었다고 했다. 상해의 유명 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원에서 더는 조치할 일이 없다고 한다며 이내 퇴원했다는 소식이 성재에게 들려왔다. 성재가 연길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아내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3개월 남겨 놓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그녀는 누구나 풍덩 빠뜨릴 것처럼 깊게 빛나던 눈을 훵하게 꺼뜨린 채였다. 포기해야 할 것들을 헤아리다 지친, 누구에게도 가 닿지 못하는 눈동자로 성재를 모르는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단란한 가정이 깨진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이 성재에게 엄습했다. 그녀가 저세상으로 떠난 뒤 딸 인애는 외할머니에게 보내졌다. 민 교수는 한국에 복귀했다.

교환교수 생활 2년을 보낸 뒤 귀국한 민 교수는 대학시절 첫사랑을 나누던 여자와 다시 만나 재혼했다. 좀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은 야속했다. 새 아내가 데리고 온 사내 아이가 공교롭게 인애와 동갑이었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갈구하던 인애의 저돌적인 반항과 방황이 시작됐다.

“부모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던 아이가 가지 말라는 길만 골라서 질주하는 야생마로 돌변했어요.”

그 즈음 민 교수는 한탄했다. 인애는 대학에 들어갈 실력이 되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길 원하지도 않았다. 얼마 전에는 보란 듯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는 아이와 함께 외할머니 곁을 떠났다.

차양을 우두우둑 두드리던 빗소리가 실로폰 소리에서 큰북소리로 바뀌었다. 폭우가 쏟아진다. 이따금 보랏빛 섬광이 하늘을 찢는다. 크릉크릉 하늘이 우는 소리가 누리에 진동한다. 세 사람은 아무 일 없는 듯 껄껄 웃고, 눙치고,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신다. 형호는 배설을 입으로 하느라 두 번쯤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럼에도 성재의 눈총을 무시하고 어젯밤처럼 홀짝홀짝 술을 마신다. 민 교수는 운전을 탓하며 술을 자제하고 있지만, 그래도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모두 피득피득 생기가 돋았다. 멀리 도망친 혈육에 대한 속절없는 그리움을 이기려는 의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자기 혼자만 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어줍잖은 위안도 한몫 거들 것이다.

두어 시간 뒤 세 사람은 상을 옆으로 밀고 평상에 아무렇게나 드러눕는다. 민 교수처럼 아는 이나 손님으로 찾아오는 집이어서 아주머니는 목침까지 하나씩 가져다 준다.

“정희가 결혼한댔지요? 수재 효녀를 남에게 주자니 상실감이 크겠어요? 아들 하나 새로 얻었다 생각해요.”

민 교수가 성재에게 속삭인다.

“서운하긴. 만혼인걸.”

“저는 결혼식에 못 가요.”

“부조금이나 보내. 비행기삯만큼. 인앤 찾았어?”

“그 애 얘긴 하지 말아요. 지긋지긋해요.”

성재를 바라보던 민 교수가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곧 방황이 끝날 거야.”

“다음에 오실 땐 인애 티셔츠라도 하나 사 와요. 한국 옷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민 교수는 더는 말하지 않고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인애를 생각하는지, 폭우로 흐릿해진 시골풍경을 더듬는지, 잠이 들었는지……. 형호 역시 말이 없다. 성재는 성재대로 정희, 정민에게 사랑 이외의 마음으로 대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 속을 헤맨다. 내 시야 밖에서 그 놈들이 씩씩거리며 나를 꼬나보고 있었던 걸 왜 몰랐을까?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면? 만약 답을 찾았대도 그들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아 성재는 머릿속이 몹시 어지럽다. 그 틈으로 형호에 대한 근심까지 간간히 끼어든다. 형은 왜 여기 오자고 했을까? 회령 뒷산을 바라보고 가족 이야기를 꺼낸 게 끝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속절없이 파고든다.

7

유선노동자구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형호의 요청으로 차는 오던 길과 달리 두만강을 왼편에 끼고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백금을 거쳐 연길로 돌아가는 우회로다. 폭우는 멈추지 않는다. 와이퍼가 가장 빠른 속도로 작동하는데도 번갯불 비치듯 앞이 순식간에 드러났다 사라지곤 한다. 강 건너 회령은 먹물 빛의 장막에 가려졌다. 산의 형상만 어렴풋하다. 오른편의 중국 산은 군데군데 자리잡은 활엽수 군락지에서 나뭇잎들이 비바람에 뒤집혀 뭇매를 맞는 이의 얼굴처럼 하얗게 질려 있다.

삼합을 출발한 지 20분이나 지났을까? 차가 천천히 비탈길을 오르는 중이다.

“잠깐 차 좀 세워 줘요.”

두만강 쪽에 시선을 주던 형호가 민 교수에게 부탁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성재가 대꾸한다.

“토하려고.”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비탈길을 지나 풀숲 위에 차가 멈춘다. 형호가 푸른 담장 집 아주머니가 준비해 준 우산을 받쳐들고 밖으로 나간다. 앞에서 차가 하나 뒤뚱뒤뚱 다가온다. 군용 짚이다. 국경순찰을 도는 변방대 군인들의 것이다. 짚에 탄 사람들에게 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지 형호가 강 쪽의 왕버들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짚이 멈추는 듯하자 민 교수가 운전석 유리문을 반쯤 내려 얼굴을 보여 준다. 짚은 멈추지 않고 민 교수의 차를 지나쳐간다.

한참이 지났다. 민 교수와 성재는 창문을 살짝 열고 담배를 한 대씩 피운다. 꽁초를 창밖에 내던지고 다시 한참이 지난다. 형호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혹시 저 강 너머로 간 거 아냐요?”

민 교수가 근심스럽게 묻는다.

“그럴 리가.”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성재 역시 그런 근심에 사로잡혀 있는 중이다.

“사고 친 것 같아요. 이번엔 제가 제대로 곤욕을 치를 모양이네요.”

성재를 바라보는 민 교수의 얼굴에 겁이 서렸다. 성재는 대답하지 못하고 우산을 펴서 밖으로 나간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형! 형호 형! 어딨어?”

왕버들나무 숲에 대고 목청껏 외친다. 목소리는 빗소리에 막혀 멀리 퍼져나가지 못한다. 숲 안으로 들어간다. 넘어진 풀들이 형호의 자취를 보여 준다. 다리에 휘감기는 풀들을 헤치며 따라간다. 구멍 난 철조망을 넘는다. 강변의 자갈밭이 나온다. 자갈밭 끝은 누런 강물이다.

“형! 어딨어?”

두만강 줄기가 여기서 급하게 휘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저쪽 대안이 유선노동자구일 것이다. 강 속에 군데군데 바위가 돌출된 걸 보면 깊지는 않다. 성재는 자갈밭과 강, 다시 자갈밭 위쪽의 왕버들나무 숲을 살핀다. 사고 친 것 같아요. 민 교수의 말이 귓가에 웽웽 맴돈다.

그때 저만큼 떨어진, 왕버들나무 가지가 늘어진 자갈밭 위에 조금씩 들썩이는 시커먼 물체가 보인다. 검은 우산에 가린 사람이다. 다가가 우산 안을 들여다본다. 형호가 무릎을 꿇고 강 저쪽을 향하여 연거푸 허리를 굽히고 있다. 절을 하는 모양이다. 얼굴은 빗물인지 눈물인지, 아마도 그것들이 범벅된 것에 흠뻑 젖었다. 뺨을 타고 물이 줄줄 흐른다. 재킷 등과 바지 가랑이도 마찬가지다. 비에 이미 씻겼는지 토한 자국은 없다. 성재는 그를 지켜보다가 정신을 차리라는 듯 그의 등을 두드린다.

“밤에 힘을 빼라 했더니 벌써 왜 이래.”

형호가 절을 멈추고 돌아본다. 손으로 얼굴을 훔친다. 붉게 충혈된 눈이 드러난다.

“나는 자식이 내게 마구 욕을 퍼부어 줬으면 좋겠어.”

성재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형호가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리라. 말 같은 소릴 하세요, 라고 힐난하려다가 성재는 번뜩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를 잡아낸다. 그래. 부조화는 조화의 한 과정이야.

“그 일 때문에 아우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처럼 애들도 괴로워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 먼저 전화해. 추석날 오라고.”

형호가 이어서 말한다.

“알았어, 형.”

성재는 형호의 어깨를 우산을 들지 않은 쪽 팔로 감싸 안는다. <끝>

글/이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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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 작가는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민족문화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 역임했으며 2010년 '계간문예' 등단 이후 북한과 북한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장편소설 '국경'(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등 작품 다수.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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