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종 테러하고 홍성담 미화하고 미술관 멍석 깔고

박진여 기자
입력 2015.09.09 10:07 수정 2015.09.09 10:15

해당 전시회 총감독 "불편함 느껴 철거" 문화계 "시립미술관이 공공성 훼손"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 ‘김기종의 칼질’이라는 제목으로 김기종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소개돼 ‘또 한 번의 국가적 망신’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합뉴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 ‘김기종의 칼질’이라는 제목으로 김기종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소개돼 ‘또 한 번의 국가적 망신’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기종의 칼질’은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해 풍자한 그림으로 논란이 된 홍성담 작가가 김기종에 피습 당하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그린 그림이다. 특히 공공기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이 이 그림을 ‘작품’으로 출품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해당 그림은 지난 4일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이 진행한 ‘2015 SeMA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 공허한 제국’에 출품된 이후 논란이 되자 나흘 만인 8일 철수됐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에서는 김기종 씨의 테러행위를 미화하는 듯한 작품을 공공기관에 전시했다는 점에서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부대표는 8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국가적 망신을 공공연하게 작품으로 소개해 올렸다는 사실이 심히 우려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백경훈 부대표는 “전에 한차례 논란이 됐던 작가의 작품을, 심지어 국가적 망신이라고 할 수 있는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을 그린 그림을 공공기관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곳에 버젓이 올렸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이는 대한민국사회의 또 다른 분란을 만드는 좋지 않은 사례”라고 비난했다.

백 부대표는 “아무리 총감독에 권한을 따로 줬다고 해도 해당 감독을 선임한 건 미술관 측”이라며 “작품을 싣는 미술관에서 어떤 작품이 출품됐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이냐”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내린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더 요구하기는 어렵겠지만, 미술관에서 공공성을 생각지 않고 해당 작품을 버젓이 허락한 것은 지적할만한 사항”이라며 “총 감독이 따로 있다고 미술관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공재 (독립영화) 감독은 같은 날 본보에 “작가 개인이 어떤 것을 그리든 작품 활동을 하는 것에 문제 삼을 수는 없다”면서도 해당 그림을 출품한 미술관에 대해서는 “공공성을 훼손한 처사”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최 감독은 “홍 작가가 해당 그림을 개인 자비로 전시회를 열어 공개하는 것은 비난할 수 없지만, 공공성을 대표하는 시립미술관에서 해당 그림을 출품한 것은 시민들에 안 좋은 이미지를 주는 등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감독은 “개인미술관도 아닌 시립미술관에서 한 작가의 정치적 이념이 담긴 그림을 다수 시민을 상대로 공개한 것은 공공성을 훼손한 것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최 감독은 또 한 번 도마 위에 오른 홍 작가에 대해 논란이 되는 그림을 발표하면서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는 것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 감독은 “홍 작가의 그림은 과거 광주비엔날레, 최근 서울시립미술관 등 이슈를 전달하는 큰 무대에서 논란이 됐다”며 “이런 경우 이슈몰이가 돼 오히려 작가가 유명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품을 팔기 위해 일부러 이런 식으로 논란을 일으켜 유명세를 타려는 작가들이 많다”고 고발했다.

비난이 확대되자 논란의 대상이 된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같은 날 본보에 “미술관이 기획했던 행사취지 자체는 상업적 작가들이 아닌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며 “작품선정에 관한 것은 아트페어를 위해 초빙한 홍경한 총감독에 모든 권한이 있다”고 해명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아트페어 주제인 ‘길드’라는 자체가 협동조합이어서 작가 개개인이 자생적인 판 안에서 놀아볼 기회를 얻게끔 하려고 했는데, 이 작가들의 구심점이 되어 줄 역할이 필요해 홍경한 총감독을 선정하게 됐다”며 “홍 총감독이 전시주제, 기획, 작가, 작품선정 모든 것을 다 진행했다”고 전했다.

또 관계자는 ‘공공성이 훼손됐다’는 비난을 받은 것과 관련 “소외된 작가들에 기회를 주기 위해 좋은 목적으로 지원한 사업인데 어떤 측면에서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해당 아트페어의 총감독을 맡은 홍 감독은 해당 그림을 철수한 이유에 대해 “작품 한 점이 본전시회의 본질과 다르게 정치이슈화가 돼, 전시가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자생성 문제, 시대적 재고찰 문제가 진영논리나 이데올로기화돼 불편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홍 감독은 “아트페어에 참여한 스물네 명의 작가들 중 다른 참여 작가들의 작품들을 이런 문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해당 작품을 내리기로 최종결정했다”고 말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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